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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선: 오늘의 인용-문학적인 철학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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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철학이 더 재미없는 것이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하이젠[베르크](W. K. Heisenberg)나 아인슈타인(A. Einstein)의 물리학적인 업적에 자극을 받은 일련의 철학자들은 철학이 더 이상 모호한 문학작품 같은 형태로 쓰여서는 안 되며 소위 엄밀한 과학적인 철학이 성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분석철학자들이 처음에 착수한 작업은 철학의 영역에서 무의미한 언어들을 배제시키는 것이었다. 이제 철학자들은 모든 문학적인 수사에서 등을 돌리고 기호논리학과 자연과학적인 언명들만을 가지고 철학을 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분석철학은 철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에게는 재앙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철학자들이 말하는 추상 수준이 너무 높아서 자신의 삶에 어떻게 관련을 지어야 할지 난감해 하는 사람들에게 기호논리학을 익히지 않으면 철학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마라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일반 독자를 무시하는 대가를 치루면서 철학은 지난 반세기 동안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객관성, 보편성, 합리성 등의 가치에 대해 어떤 성과를 얻어 냈을까?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예를 들어 과학철학의 수많은 논의들은 몇몇의 철학적인 사유를 하는 과학자들을 낳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과학적인 작업에 도움을 준 바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과학적인 철학을 표방함으로써 철학이 많은 독자를 상실하고 별다른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면, 철학은 글쓰기의 방식에 대해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해결책이란 매우 간단하다. 반대의 길로 가는 것, 즉 문학적인 철학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학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철학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다고 한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보편성에 대해서 알고 있고, 객관적인 진리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해야 한다는 철학자들의 강박증은 별로 유익한 결과를 낳지 않을뿐더러 철학적으로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독일의 철학적 해석학자 가다머(H. G. Gadamer)는 모든 해석은 일면적이며, 선입견에서 벗어난 해석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철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지적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철학은 삶의 구체적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궁극적인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편성, 합리성, 객관성에 집착하기보다는 삶의 우연성, 구체성, 유한성을 기꺼이 감수하고 거기서 나름대로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문학은 그런 일들을 잘 해 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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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선,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우연적 삶에 관한 문학과 철학의 대화>>(라티오, 2008)의 서문에서 옮김(pp.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