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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라투르: 오늘의 인용-진정한 자연과학자 윅스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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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대단히 중요한 이 말[움벨트(Umwelt, 환경세계)]는 완전히 독창적인 사상가 야콥 폰 윅스킬[1864-1944]이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마르틴 하이데거, 질 들뢰즈,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물론, 민족지학자들의 전통 전체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표면적으로 폰 윅스퀼은 전혀 다윈주의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두 자연학자들은 그들이 연구하는 존재들을 '인위적 연속성'으로 환원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다윈과 폰 윅스퀼은 모두 [...] 하나의 선행현상과 그 이후의 현상들 사이의 수많은 불연속성을 강조합니다. 다윈은 생명체들을 이끄는 상위의 의미 없이, 그저 단독적인 사소한 발명이 생명체들의 적응과 변이를 가능케 한다고 봅니다. 폰 윅스퀼의 경우, '움벨트' 관념은 인간이 순전히 편의에 따라 모든 생명체를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하는 보편적 층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추상적 개념 '주위'와 대립됩니다. 그런데 폰 윅스퀼은 오히려 '각각의 동물'이 [...] 자기 주위에 일종의 거품을 형성한다고 보았습니다. 그 거품은 주위에서 몇 가지 적절한 기호들을 추출해낼 것입니다. 그 기호들은 분명히 '주관적인' 것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살아 있는 자연에는 대상들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고 [...] 그저 '의미작용을 담지하는 주체들'만 있다는 뜻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 주체들은 동물이 거하는 이 세계 내에 있다는 뜻에서 객관적입니다. [...] 진드기의 세계가(우리에게) 아무리 보잘것없다 해도 그 세계는 우리의 세계, 혹은 코끼리의 세계 못지않게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끝없는 대립을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폰 윅스퀼이 살아 있는 세계에는 주체들밖에 없고 그 주체들끼리[...] 의미작용의 관계를 맺는다고 말했을 때, 그는 결코 유물론, 실험에 반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그는 다만 우리에게 '모든' 생명체들의 공통의 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보라고 할 뿐입니다. 그 공통의 장은 그 자체에 모든 의미작용이 '결여되어' 있다는 특이한 속성을 지닐 테니까요. 그 장을 '자연'이라고 부를까요?

 

[...] 폰 윅스퀼에게 '모든 생명체들'을 대번에 포괄할 수 있는 '메타-수프라-슈퍼-움벨트' 따위란 없습니다. "주체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공간은 없다." [...] 상상된 공간과 움벨트들의 현실적인 교차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아니, 차라리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멀티버스 안에서 그 둘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야겠군요. 다시 말해, 우주[universe]는 일종의 특수한 경우로서, 역사적으로 진기한 경우로서, 정치 혹은 정치적 인식론의 지나간 형식으로서 멀티버스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과학인문학 편지>>(이세진 옮김, 사월의책, 2012), pp. 2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