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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강단 좌파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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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한 녹색 소비주의, 보존, 자원 관리, 그리고 탄소거래 같은 것들은 실제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활동에 연루되어 있다. [...] [한 강단 좌파의 글에 따르면,] 그것들은 여전히 [...] 자본주의적 생산 모형에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개입 활동들을 모두 거부해야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것은, 우리가 이런 것들을 지지하면 우리의 손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것들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내가 이해하는 문제는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가장 나쁜 종류의 추상화와 소망적 사고라는 것이다. 마르크스-헤겔주의적 맥락에서 어떤 사유가 한 사물이 묻어 들어가 있는 모든 매개물들을 무시할 때 그 사유는 추상적이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떤 튼튼한 나무의 강인함을 그것이 토양, 공기, 햇빛, 강우 등과 맺은 복잡한 관계들을 무시한 채, 이른바 그것의 유전학에만 귀속시킬 때, 나는 그 튼튼한 나무를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신자유주의자들에게 항상 가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비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추상적 사유가들이다. 개인들은 스스로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으며, 혼자 힘으로 스스로를 향상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완전히 형성한다는 그들의 억견에 따라, 신자유주의자들은 인간들의 삶의 벡터를 결정하는 데 역할을 수행하는, 그 속에서 인간들이 발달하는 사회적 및 물질적 맥락에 속하는 모든 매개물들을 무시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조지 W. 부시가 사업과 통치의 세계와 강하게 연결된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구체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환경에 따른 이런 매개물들의 지도학, 이런 연결망들의 지도 그리기(내가 "존재지도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여하는 것이다. [...]

 

불행하게도, 강단 좌파는 자체의 추상화 형식의 먹이가 된다. 강단 좌파는 다양한 사회 구성체들을 비난하는 비판을 수행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어떤 종류이든 현실적인 대안적 구성물들을 제안하는 데는 매우 서툴다. 이것은, 강단 좌파가 작동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연결망들, 조립체들, 구조들, 또는 끌림의 체계들이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할 것인지를 무시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추상적으로 사유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슬프게도 이것이 흔히 강단 좌파와 관련된 계획이다. [...]

 

1단계: 초급진적인 비판

2단계: ?

3단계: 혁명과 완전한 사회적 전환!

 

강단 좌파의 문제는 2단계에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결코 설명하지 않은 채 1단계에 영원히 갇혀 있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흔히 1단계에서 표명되는 비판들은 옳지만, 그럼에도 그런 비판들과 관련하여 모든 종류의 문제들이 있다. 3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새로운 집합체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집합체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사람들은 1단계에서 전개된 비판들을 듣고 이해할 수 있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런 비판들이 흔히 옳더라도, 강단 좌파는 비판 이론과 후기구조주의 이론에서 박사학위를 지닌 강단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표현한다. 이것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강단 좌파는 항상 이런 것들은 무시하고 그 업계의 나오미 클라인과 데이비드 그래버를 경멸의 눈초리로 본다. [...] 강단 좌파는 자신의 작업을 [...] 대학들만 감당할 수 있는 값비싼 학술 저널들에 출판하고, 다른 강단인들만이 참가하는 [...] 학술회의에서 발표한다. 또 다시, 이것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매우 많은 실천주의자들이 이런 것들을 경멸하며 보지 않으면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강단 산업과 종신재직권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우연인가? 숲에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고 그곳에 그 소리를 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은 것이다. 진지하게, 젠체하는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리고 최악으로, [강단 좌파들]은 너무나 흔히 바보처럼 행동한다. 강단 좌파들은 자신이 관여하기를 원하는 의문들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서로 비난하고, 서로 책망하고, 서로 꾸짖으며, 누군가가 자신이 지지하는 억견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때 그를 비방한다. 강단 좌파는 어느 모로 보나 근본주의적 목사나 종교재판의 신부만큼 불쾌하고 반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런 유형의 '혁명가'는 반동가들과 자본가들의 가장 중요한 친구인데, 그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기반을 약화시키기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지배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도록 추동하는 데 더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

 

[...] 강단 좌파의 심각한 결점들은 2단계에서 발견될 것이다. 강단 좌파는 사물들이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지, 어떤 새로운 물질적 하부구조와 기호학적 장들이 산출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들을 거의 결코 제시하지 않으며,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비판에 중독된 냉소주의자들과 회의주의자들은 이런 것들이 더러운 비밀들, 추악한 동기들을 포함하고 있고, 그래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모든 방식들에 대한 분석으로 즉시 뛰어든다. [...] 우리는 60억 명의 인간들이 거주하는 행성에서 살고 있다. 이 60억 명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과 분배의 어떤 연결망에 의존하고 있다. [...]

 

[...] 비판 이론가들 사이에서 누가 계획경제의 문제점들을 피하면서 전 지구적 소비 욕구에 대해 호응하는 분배와 생산 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누가 정당 체계 때문에 일어나는 미시 파시즘의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는가[...]? 최소한 생태주의자들은 생태학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에 관해 생각하고 있다. 슬프게도 우리는 더 이상의 것, 즉 생태주의자들, 마르크스주의자들,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의 혼성물이 필요하다. [...]

 

[...] 실제 계획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면 어느 누가 왜 귀찮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

 

[...] 강단 좌파에게 비판이 덜 필요한 까닭은 비판이 중요하지 않거나 불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강단 좌파는 비판들을 알고 있고, 문제점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은 쉽고 안전하기 때문에 강단 좌파는 비판에 중독되어 있다. 강단 좌파는 비판으로 모든 적을 패배시킨다. 강단 좌파는 비판으로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강단 좌파는 비판으로 정말 무슨 일을 하는가? 오늘날, 어느 때보다 더, 강단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구성 또는 공작이다. 모든 사람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이 체계가 파괴적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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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