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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슬로터다이크: 오늘의 인용-시대는 냉소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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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경 좌파의 급진 진영은 우파의 주인냉소주의를 따라잡았다. 구권력자의 냉소적이고 방어적인 의식과 신흥 권력자의 유토피아적이고 공격적인 의식이 벌인 경쟁은 20세기의 정치적·도덕적 드라마를 연출했다. 엄격한 사실에 대한 가장 엄격한 인식을 얻기 위해 경쟁하면서 악마와 귀신 왕은 서로를 훈련한다. 의식의 경쟁으로부터 현재의 특징인 불투명성이 생겨난다. 그 불투명성은 이데올로기의 상호 밀탐, 대립의 상호 동화, 사기 행각의 현대화 등에서 보인다. 간략히 말해 이것은 철학자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상황,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쟁이를 거짓말쟁이라 부르는 상황이다.

 

최초의 파시스트적 니체 붐이 가라앉은 이후, 지금 다시 도처에 두번째 니체 붐이 일고 있음을 느낀다. 다시금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서구 문명이 기독교적 의상을 벗어던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재건의 세월 그리고 유토피아와 '대안들'의 세월이 수십 년 흐른 후, 마치 순박한 열정이 갑자기 사라진 것과도 같다. 이제 모두 파멸이 다가오고 있다고 두려워하는 가운데 새로운 가치가 만병통치약처럼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시대는 냉소적이 되었고, 이 새로운 가치도 단명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구나 당사자가 될지 모른다는 당혹감, 시민 가까이 숨쉬는 것, 평화 보장, 삶의 질, 책임 의식, 환경 친화, 이 모든 것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적절한 때를 기다릴 수는 있다. 냉소주의는 그런 우리 뒤에서 장황한 회담이 끝나고 사턔가 진행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맥빠진 근대성도 '역사적으로 사유할' 줄 알지만, 우리 자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의미 있는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있다. 즉, "세계사에 대한 수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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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 <<냉소적 이성 비판 1>>(이진우, 박미애 옮김, 에코리브르, 2005), pp. 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