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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지식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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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학적 정향은 이산적인 개별적 존재자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의존성, 되먹임 고리들, 그리고 생태계 내에서 지배적인 것과 종속적인 것 사이의 위계적 관계들로 규정되는, 다른 존재자들과 맺는 관계들의 연결망에서 이런 존재자들의 현존을 살펴보는 것이다. [...]

 

어떤 생태계나 개체군 내에서도 항상 아웃라이어들과 예외적인 것들이 존재할 것이다. 생물학의 세계에서 내가 선호하는 예는 산업혁명 이전 맨체스터의 검정색 나방이다. 검정색 나방들과 회색 나방들은 개체군 내에서 동일한 종에 속했지만, 맨체스터의 생태계 때문에 산업혁명 이전에는 검정색 나방들의 수가 훨씬 적었다. [...]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는, 맨체스터에서 회색 나방들이 지배적인 개체군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전적으로 수용 가능하다. 검정색 나방들은 규칙이라기보다 예외였다.

 

산업혁명의 등장과 함께 이 모든 것은 바뀌었다. 공장을 돌렸던 증기 기관에 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석탄 연소의 결과로서 건물들과 나무들이 검댕으로 뒤덮이게 되었다. 이제 [...] 검정색 나방들이 이점을 누렸던 반면에, 회색 나방들은 눈에 잘 띄었다. 그 결과, 검정색 나방 개체수가 증가했다[...].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은 어떤 생태계도 필연적이지 않으며 개체군의 어떤 구성원도 필연적으로 위계적 특권을 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

 

다른 어떤 것과도 마찬가지로, 지성적 세계도 하나의 생태계이다. 그것은 관념들과 텍스트들의 생태계이다. 이 생태계 안에서는 "대륙적 이론가들"과 "영미적 이론가들" 같은 다양한 종들이 있으며, 이 종들 안에는 다양한 정향들 또는 검정색 나방과 회색 나방 같은 아종들이 있다. 대륙적 이론의 세계에서는 현상학자들, 해체주의자들, 사회구성주의자들, 신유물론적 페미니스트들, 사변적 실재론자들, 마르크스주의자들, 기타 등등이 있다. [...] 어떤 생태계와도 마찬가지로, 이 종들 가운데 일부가 지배적이며 지식 생태계 안에서 특권을 누리는 반면에, 다른 종들은 도대체 거의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지식 생태계 안에서는 영미 철학이 두드러진 지위를 누리는 반면에, 대륙 철학은 희미하게 존재할 뿐이다. [...]

 

이런 위계적 관계들은 다양한 철학적 입장들의 내용에 무관한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유지된다. 그것들은 학과들이 어떻게 조직되는지, 고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교수진이 어떤 학위주제들을 지도하는 데 동의하는지, 어떤 강좌들이 개설되는지, 학술회의들이 어떻게 조직되는지, 편집진이 출판될 논문들과 서적들을 어떻게 선택하는지, 다양한 서적들과 저널들을 어떻게 입수할 수 있는지 등에 의해 유지된다. 여기에 어떤 공모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 교육 과정 자체가 특수한 지식 생태계(즉, 특수한 연구 패러다임에 계속 기여하는 연구자들, 즉 "종들")을 재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일종의 주체화이며, 다른 "종들"을 배제하고 특수한 생태학적 관계들을 강화하기 위한 기능으로 사실상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매우 작은 결정들이 내려진다. 이것이 필연적으로 나쁜 것도 아닌데, 재생산되는 "종들"이 일반적으로 뛰어난 연구를 수행하는 강한 경력을 지니고 있고 많은 대체 "종들"(아웃사이더 정향들)이 기발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륙적 사유에서도 상황은 동일하다. 확실히, 대륙적 사유는 반유물론적 정향과 반자연주의적 정향이 지배적이었다는 테제에 대한 예외적인 것들이 있다. [...] 그렇지만 이것이 대륙적 사유의 지식 생태계에서 현상학, 해체, 그리고 사회구성주의가 지배적이었다는 사실과 이런 정향들이 지식의 내용 및 조직화된 제도적 구조의 층위에서 유물론적 정향과 자연주의적 정향이 많이 존재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생태계는 항상 대체물들이 형성되기 어렵게 만드는 관성을 행사하지만,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신유물론적 페미니즘의 등장, [...] 들뢰즈와 가타리의 르네상스, [...] 생물학, 복잡계 이론, 그리고 혼돈 이론에 대한 관심의 증가, 사변적 실재론의 등장과 함께 우리는 이미 중요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상황의 일부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들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오늘날 우리는 물질성과 과학에 더 큰 관심을 초래한 기후변화 같은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다. 맨체스터에서 변화된 나방의 환경이 검정색 나방들을 두드러지게 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오늘날 변화된 사유의 환경은 새로운 이론적 구성들을 요청하고 새로운 의문들을 제기했다.

 

[...] 진화가 항상 이전의 육체적 구조들 위에 이루어지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에 선행하는 역사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 우리는 그런 전통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을 자연주의적 노선과 유물론적 노선에 따라 재구성해야 한다. [...]

 

지식 생태계에서 모든 변화는 선행하는 것들에 대한 수정, 선행하는 것들의 지양, 그리고 선행하는 것들의 어떤 특징들의 폐기를 필요로 한다. [...] 문제는 우리가 선행하는 전통 또는 사유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관한 것이다. 현대의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신경학, 수학, 그리고 기술에 의해 조장된 당대의 사회적 전환들이 일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머리를 모래에 처박고 계속 그런 전통에 의존하여 세계에 관해 다시 생각하기를 전혀 요구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이런 전환들의 견지에서 그런 전통과 관계를 맺고, 이런 전환들에 비추어 그런 전통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다시 생각할지를 결정하려고 노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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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