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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칼리슬: 오늘의 에세이-스피노자 5

 

 

스피노자, 5부: 인간 본성에 관하여

Spinoza, part 5: on human nature

 

―― 클레어 칼리슬(Clare Carlisle)

 

우리는 자율적인 개체들이 아니라 더 큰 전체의 일부이고, 인간의 자유의지 같은 것은 없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지난 주에 우리는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을 검토했는데, 실체, 속성, 그리고 양태라는 철학적 술어에 대한 그의 급진적 재해석이 어떻게 새로운 실재관을 제공하는지 살펴보았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만이 실체―말하자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존재자―로 불릴 수 있고 다른 모든 것은 단일한 이 실체의 양태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철학의 중심적인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더 개인적인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제 예상할 수 있듯이, 인간에 대한 스피노자의 견해는 지배적인 철학적 관념과 종교적 관념뿐 아니라 상식적인 견해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다른 존재자들과 별개인 독자적인 개체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세계 속의 인간들 및 객체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자신들을 자율적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널리 고수되는 믿음에 반영되어 있는 견해이다. 인간 조건에 대한 이런 통속적인 이해는 인간들을 실체들로 간주하는 데카르트의 철학에 반영되어 있다. 사실상, 데카르트는 인간들이 두 개의 개별적 실체들―정신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스피노자의 경우에, 인간들은 실체들이 아니라 유한한 양태들이다. (지난 주에 나는 양태란 바다 위의 파도와 같은 것, 즉 훨씬 더 큰 전체에 의존하는 일시적인 일부라고 시사했다.) 이 양태는 두 가지 측면 또는 속성―연장 또는 물리적 육화와 사유 또는 생각―을 지닌다. 결정적으로, 스피노자는 이런 속성들을 사이에 어떤 인과적 또는 논리적 관계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한다. 그 대신에 그는, 각 속성은 어떤 식으로 실재를 완전히 표현하는 하나의 인과적이고 논리적인 질서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의 육체는 연장이라는 속성 아래 그 특수한 존재자의 본질을 표현하는 물리적 유기체이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은 사유라는 속성 아래 이 동일한 본질을 표현하는 지성적 전체이다.

 

그런데 이것은 정신과 육체가 별개의 존재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닌데, 이것은 정신과 육체가 실체들이라는 데카르트적 견해로 되돌아가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스피노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정신과 육체는 단일한 실재의 두 측면이라고 말한다. "정신과 육체란 이제는 사유라는 속성에 따라 이해되고, 이제는 연장이라는 속성에 따라 이해되는 동일한 개별자"라고 그는 <<윤리학>>의 2부에서 적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그것들 사이에는 정확한 대응이 존재한다. "관념들의 질서와 연결은 사물들의 질서와 연결과 동일하다." 사실상, 인간의 각 정신은 인간 육체에 대한 의식을 포함한다.

 

이런 사유 방식은 몇 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가장 명백한 것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인간에 대한 이원론적이고 환원주의적인 설명의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데카르트의 정신-육체 이원론은,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유하는 존재자들이라는 주장, 즉 지성적인 것들이 물리적인 것들에 우선하는, 이성이 육체에 우선하는 특권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포함한다. 역으로, 근대 과학은 흔히 인간을 일차적으로 물리적 존재자로 간주하며, 정신적 활동을 물리적 과정으로 환원시키려고 한다. 그렇지만, 스피노자의 견해에 따르면, 정신적인 것들을 물리적인 것들로 또는 물리적인 것들을 정신적인 것들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정합적이지 않는데, 사유와 연장은 별개의 설명적 질서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세계와 우리 자신들을 서술하고 이해하는, 똑같이 완전하고 똑같이 정당한 두 가지 대안적인 방법이다.

 

인간에 대한 스피노자의 설명의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는 자유의지에 대한 부정이다. 우리가 실체들이라기보다 양태들이라면, 우리는 자결적일 수가 없다. 인간 육체는 물리적 인과관계들의 연결망의 일부이고, 인간 정신은 논리적 관계들의 연결망의 일부이다. 달리 말해서, 우리의 신체적 운동과 사유 둘 다 어떤 법칙의 제약을 받는다. 우리가 중력 법칙을 무너뜨릴 수 없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는 2+2=5라고 생각할 수 없으며, 또는 삼각형은 네 개의 변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통속적인 믿음에 대한 스피노자의 비판은 몇 주 전에 살펴보았던, 그가 <<신학정치론>>에서 전개한 기적에 대한 믿음의 분석과 꽤 비슷하다. 우리는, 거기서 그가 사람들이 사건들의 자연적 원인들을 모를 때 그것들을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들로 간주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행위들의 원인들을 모를 때 그것들은 자유의지에 귀속된다. "모든 인간들이 소유하고 있음을 자랑하는 인간의 자유는...오로지 인간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의식하지만 그것들을 결정하는 원인들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스피노자의 경우에,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은 기적에 대한 믿음이 신의 개입으로 작동하는 것만큼이나 무지와 미신의 징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