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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칼리슬: 오늘의 에세이-스피노자 2

 

 

 

스피노자, 2부: 기적과 신의 의지

Spinoza, part 2: Miracles and God's will

 

―― 클레어 칼리슬(Clare Carlisle)

 

기적은 자연의 설명되지 않은 행위이지 신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는 스피노자의 믿음은 위험하고 논란이 많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바루흐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에는 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관한 전통적인 유대-기독교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있다. 히브리 성서와 기독교 성서가 자연 세계의 창조자이자 인간 역사의 책임자로서의 신이라는 개념을 공유하는 반면에, 스피노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성한 자연에 관한 무언가를 표현하는 신의 한 측면이라고 주장한다. 신은 세계와 분리될 수 없다는 이 관념은 스피노자의 최고 저작인 <<윤리학>>에서 체계적으로 상술된다. 그렇지만, 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관한 스피노자의 견해에 대한 더 이해하기 쉬운 소개는 더 이전의 저작인 <<신학정치>>에서 전개되는 기적에 관한 그의 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저작은 진리의 원천으로서의 권위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성서에 대한 혁신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예언, 기적, 그리고 신의 법칙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신학정치론>>의 제6장에서 스피노자는 기적의 주체에 관한 "일반 민중의 혼란스러운 생각"을 다룬다. 보통 사람들은 외견상 기적과 같은 사건들―자연의 일상적 질서를 교란하고 그것과 충돌하는 듯 보이는 현상들―을 신의 존재와 활동의 증거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실상 이런 견해를 지니고 있는 것은 "일반 민중"만이 아니다. 역사 전체를 통해 신학자들은 종교적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적에 호소했으며, 오늘날에도 계속 그렇게 행하는 신학자들이 있다.

 

그렇지만 스피노자에게 기적에 관한 이야기는 신의 권능이 아니라 인간의 무지에 대한 증거이다. 자연의 법칙들을 위반하는 듯 보이는 사건은 그것에 대한 원인이 아직 파악되지 않은 자연적 사건일 뿐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런 견해의 근저에 놓인 것은, 신이 자연의 법칙을 일시 정지시키고 자연의 정상적인 작동에 개입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자가 아니라는 관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의 섭리는 자연의 행로와 동일하다." 자연은 위반할 수 없는 고정된 영원한 질서가 있다고 스피노자는 주장한다. 오도된 인간형상론에 의해 일반적으로 신의 의지로 불리는 것은 사실상 이런 불변하는 자연적 질서일 뿐이다.

 

이것으로부터 신의 존재와 특질은 외견상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자연 자체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스피노자 서술하듯이, "신의 본성과 현존, 그리고 결국 신의 섭리는 기적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불변의 자연 질서로부터 훨씬 더 잘 지각할 수 있다."

 

물론 이 견해는 성서 해석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데,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둘 다 기적적인 사건들에 관한 많은 서술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성경의 이런 서사들을 단순히 일축할 뿐 아니라, 현대의 교양 있는 독자들은 기적을 목격하고 기록했던 사람들의 의견 및 관습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대에 널리 퍼져있던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스피노자는 "사실상 상징적이고 가상적이었을 뿐인 많은 것들이 성경에서 실제적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고, 실제적인 것으로 믿어졌다"고 단언한다.

 

이것은 현대의 많은 종교 신자들에게 충분히 합당한 듯 보이지만, 성경에 대한 스피노자의 태도는 시대를 훨씬 앞선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어느 정도의 문화 상대주의를 당연히 여기며, 우리 대부분은 옛 사람들이 세계를 우리와 다르게 이해했고, 그래서 자연적 인과관계와 신성한 인과관계에 관해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쉽게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1670년에 처음 출판되었을 때 <<신학정치론>>은 광범위한 저항과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상, 더 이상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스피노자로 하여금 <<윤리학>>의 출판을 자신의 사후까지 연기하기로 결심하게 만든 것은 이런 반응이었다.

 

그런데 신의 의지와 자연 법칙은 동일한 것이라는 스피노자의 주장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관념을 해석하는 상이한 방식들이 있는데,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종교적 신앙에 더 도움이 된다. 한편으로, 신과 자연이 동일하다면, 신이라는 개념은 필요 없을 것이다. 신이라는 관념을 그냥 완전히 버리고, 과학적 탐구를 통해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개선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어떤가? 다른 한편으로 스피노자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신의 역할이 신의 활동의 표징으로서 기적과 같은 예외적인 사건들에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보다 더 일정하고, 즉각적이며, 직접적이라고 시사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물론, 자연 질서가 신의 현존과 본질을 드러낸다는 관념은 곧장 자연은 신성하고, 그래서 그 자체로 높이 평가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견해를 낳는다. 이렇게 해서 스피노자는 19세기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사실상 스피노자의 철학은 우리에게 자연 세계를 사랑할 이유와 자연의 법칙들에 대한 이해를 개선할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낭만주의적 세계관과 과학적 세계관을 합쳐놓은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