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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오늘의 인용-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이란 대체로 (a) 화학이나 물리학 등과 같은 정밀과학, 혹은 (b) 관찰한 사실을 논리적으로 따짐으로써 참된 결론에 이르는 사고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모든 과학자들이, 혹은 대부분의 교육 받은 사람들이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b)에 근접하는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말로든 글로든 '과학'이라고 할 때에는 (a)를 뜻한다. [...] 자라나는 세대에게 과학교육을 더 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더 정확히 생각하는 법보다는 방사능이나 천체나 자기 몸의 생리에 대해 더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어의 의미가 애매모호해진 것은 어느 정도 의도적이기도 하거니와 그 자체로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과학교육을 더 해야 한다는 요구에는, 과학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모든' 분야에 대하여 더 현명한 접근을 하게 된다는 주장이 함축되어 있다. 이를테면 과학자의 정치적 견해는, 사회학적인 문제나 도덕, 철학, 심지어 예술에 대한 견해도 일반인에 비해 나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은 과학자들에 의해 통제될 때 더 나은 곳이 되리라는 것이다. [...]

 

그렇다면 그런 협소한 의미의 '과학자'가 비과학적인 문제에 대하여 남들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할 근거는 별로 없다. [...] 막연하게 '과학은 국제적'이란 말을 흔히들 하지만, 실제로 만국의 과학 종사자들은 작가나 예술가에 비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며 자국 정부 쪽에 줄을 선다.

[...]

대중에 대한 과학교육이 결국 문학이나 역사를 희생해가며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등을 더 가르치는 것이 될 경우,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주 해로울 수도 있다. [...]

 

확실히 과학교육은 합리적이고 회의적이며 실험적인 사고의 습성을 심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방식', 즉 부닥치는 어떤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어야지, 사실을 잔뜩 축적하는 것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 그런데 [...] 과학은 한 덩어리의 지식에 불과한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생각은 현실에서 강한 반발에 부닥친다.

[...]

나는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미국의 한 잡지에서 영국과 미국의 많은 물리학자들이 원자탄 연구를 애초부터 거부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은 그것이 어디에 쓰일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치광이들의 세상 속에 이렇게 정신 멀쩡한 사람들도 있다. [...] 그들은 역사나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식견을 웬만큼 갖춘, 간단히 말해 지금 쓰이고 있는 뜻에서 순전히 과학적이지만은 않은 데에도 흥미를 느낄 줄 아는 이들일 것이다."

 

――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이한중 옮김, 2010)에 실린 글 <과학이란 무엇인가?>(1945년 10월 <트리뷴>지에 게재)에서 인용, pp. 2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