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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오늘의 인용-몽테뉴의 현대성

 

"그는 생애의 온갖 형식에서 가장 좋은 것, 자기 본질의 핵심을 언제나 감추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패거리를 짓고, 열성을 다하고 설교하고 행진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세상이야 그 혼란스럽고도 어리석은 길을 가게 내버려둔 채 자신은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신경을 썼으니, 곧 자기 자신을 위해 이성적으로 남아 있기, 비인간성의 시대에 인간적인 사람 되기, 미친 듯이 패거리 짓는 한가운데서 자유롭게 남아 있기만을 원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보고 무심하다고, 우유부단하고 비겁하다고 욕하도록 내버려두었고, 남들이 더욱 높은 직위와 품위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고 그를 이상하게 여겨도 그냥 두었다. 그를 잘 아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그가 이런 공직의 그늘 속에서 얼마나 오래 끈질기고 영리하고도 유연한 태도로 스스로에게 부과한 단 한 가지 과제에 정진했는지 짐작도 못했다. 공허한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산다는 과제였다.

 

그럼으로써 언뜻 행동이 없어 보이는 이 사람은 그 누구와도 비할 바가 없는 행동을 하였다. 자신을 유지하고 묘사함으로써, 그는 시대를 초월한 벌거벗은 인간을 자기 안에 그대로 보존하였다. 그 덕분에 그의 시대의 온갖 신학 논문과 철학적 탐색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낡고도 낯설게 보이는 데 반해, 그는 우리와 같은 시대에 속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오늘날의 인간 또는 어느 시대에나 속하는 인간으로 남았으며, 그의 투쟁은 지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남았다. 몽테뉴의 책을 펼치면 펼치는 곳마다 우리 자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지금 이 시대에 내 영혼에 가장 내밀한 근심을 만들어내는 일들에 대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그가 더욱 명료하고 뛰어나게 생각하고 말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는 나의 자아가 반영된 '너'가 있다. 여기서는 시대를 나누는 그 먼 거리가 사라진다. 책 한 권, 곧 문학이나 철학 책 한 권이 아니라, 나의 형제와 내게 충고를 해주고 나를 위안하고 나와 친밀한 인간, 내가 그를 이해하고 또 그가 나를 이해하는 한 인간이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가 <<수상록>>을 손에 들면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종이는 사라지고 만다. 누군가가 숨을 쉬고, 누군가가 나와 함께 살며, 어떤 낯선 사람이 내게로 와서는 더는 낯선 사람이 아닌 친구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4백 년 세월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 그냥 친구가 찾아와 내게 충고를 하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따금 그 목소리에는 우리 인간 본질의 부서지기 쉬운 속성, 우리 이해력의 불충분함, 우리 지도자들의 속 좁음, 우리 시대의 모순과 잔인함에 대한 나직한 슬픔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의 제자이기도 한 셰익스피어가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들인 햄릿, 브루투스, 프로스페로[...]에게 불어넣어 잊을 수 없게 만든 저 고귀한 슬픔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위로하는 정신: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안인희 옮김, 유유, 2012), pp. 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