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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톰슨: 오늘의 인용-우연성에 관하여

 

"[우연성의 형이상학]은 먼저 로베르트 무질이 젊은 생도 퇴를레스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대사로 진술될 수 있을 것이다.

 

Alles Geschieht: Das ist die ganze Wahrheit. (모든 것은 일어난다. 그것이 온전한 진리이다.)

 

사실상 이 구절은 우연성의 형이상학을 요약한다. 한편으로 첫번째 두 낱말에는 모든 것이 일어난다는 공허한 진술이 있는데, [...] 사물들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이 구절에는 이런 것들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어떤 이유도 제시되지 않는데, 그것들은 일어났을 뿐이다. 이것은 우연성에 관한 진술일 뿐이고, 여기서 우연성이란 무한히 많은 상이한 가능한 것들 가운데 지배적인 사건을 의미한다. 그 지배적인 사건을 낳는 것은 객관적인 요인들과 주관적인 요인들[...]의 혼합물이다. 예를 들면, 수사법에 관한 저작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연한 것의 중심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까닭은 필연적인 것 또는 불가능한 것에 관해 숙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연적인 것은 어쨌든 존재해야 할 것이고, 불가능한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불가피하고 잠재적으로 관리할 수 없는 다중의 가능한 것들의 현존" 또는 관리할 수 없는 그 현존 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 결정의 복잡한 본성이 수사법을 만들어내고 요청한다고 믿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연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행하는 바가 행해질 수 있었던 유일한 것으로 나타나게 되도록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바꾸는 우연성에 관한 서사가 개발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온전한 현존이 전적으로 우연적이고, 무작위적이며, 우연히 부합하는 효과들에 의존한다고 사실상 믿기가 매우 어렵다고 깨닫는다. 우리는 그것이 어떤 의식적인 과정의 산물이며 우리 내부에 세계 정신의 한 조각 또는 속박되지 않은 자유의지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연한 사건들이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중첩되어 부분들보다 더 큰 것을 낳는 토대적 신화들도 억지로 만들어내게 된다.

 

이제 우연적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유일한 진리라는 무질의 대사의 두 번째 부분를 생각하자. 여기서 우연성에 진리 관념을 도입함으로써 무질은 순전히 우연적인 것을 넘어서 필연적인 가능성과 불가능한 것을 정확히 논의한다. 그는 우연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진리의 형이상학, 즉 최소한 칸트 이래로 하나의 개념으로서 의심하게 되어버린 것을 도입한다. [...] 이것은 [...] 일어난 모든 것은 일어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 그것이 일어나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질의 위대한 철학적 영웅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존재하는 것에서 빼버릴 것은 하나도 없으며, 없어도 되는 것은 없다. [p. 392]

 

달리 말해서, 결국 이 순간을 이루는 모든 사물들은 역사에서 이전의 모든 순간을 이루었던 모든 사물들의 누적적 산물이다. 철학의 비정한 언어로 서술하면, 이것은 운명애(Amor Fati)라는 자연의 원칙의 기초를 형성한다. 즉, 우리가 현재의 모습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우연적 사건들, 우연적 과정들과 회고적 필연성 사이의 절대적 연결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초인이 되기 위해 수용하는 것은 그저 하나를 향해 도래할 예정인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버린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 과거에는 성공하지 못했던 우연한 사건들의 가능성이 잠재적인 것으로 그리고 역사 속의 경향과 잠복되어 있는 것으로 여전히 열려 있고, [...]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순간에 무엇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절대적으로 확신하기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회고적으로만 결정될 수 있고―일단 행해지면 필연적인 것이 되어버린다―우리의 향후 행위들은 순전히 우연적인 이 순간에 근거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다. [...] 일이 일어나버렸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이 순간이 필연적인 도약점이 된다. 그렇지만, 다음에 일어나는 것은 과거에 일어나버린 것에 의해 부분적으로만 결정되고, 부분적으로는 미래를 형성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시도에 의해 결정된다. 마르크스주의적인 견지에서 이것을 서술하면, 우리는 과거를 해석할 수 있을 것이지만(이것도 현재의 어두운 순간의 우연성에 의해 형성될지라도), 핵심은 미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우연성은 일어나는 모든 것이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나는 [...] 우연적 사건들, 즉, 내 조상 아메바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리고 어느 날 밤 끔찍한 실수를 저질러 나를 낳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로 끝나는, 내 이전의 수천 세대의 사람들의 생식 활동들의 긴 과정의 끝에 있다. 그들이 그 행위 이전이나 이후에 적절히 조심하였더라면 [...] 또는 그들이 결코 만나지 않았었더라면, 나는 현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나는 현존하고 있는데, 그래서 지난 40억 년에 걸쳐 지구에서 일어났던 유기적 진화 동안 계속되었고 나를 낳은 모든 우연적 결합들이 필연적으로 된다. [...]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하듯이, 각각의 우연적 사건, 언제든 어떤 주어진 순간에 일어나는 무한히 많은 우연적 사건들의 각 사건이 동시에 자체의 목적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한 사건은 그야말로 초월적인 곳에서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의 사건적 연쇄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법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우연적인 사건적 연쇄의 형이상학으로 부르고 싶다."

 

―― 피터 톰슨의 에세이 <<우연성의 형이상학>>에서 일부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