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오늘의 인용-우주적 종교 감정

 

- 아래의 글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1930년 11월 9일 <<뉴욕 타임즈 매거진>>에 특별히 기고한 에세이 <종교와 과학>에서 일부 인용한 것이다. 독일어 텍스트는 1930년 11월 11일 <<베를리너 타게블라트(Berliner Tageblatt)>>에 발표되었다.

 

――――――――――――――――――――

 

"개인은 인간의 욕망과 목표의 덧없음을 느끼는 한편 장엄성과 놀라운 질서가 자연계와 사고의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느낀다. 개별적 인간으로서의 존재는 그에게 일종의 감옥 같은 인상을 주는 만큼 그는 우주를 하나의 의미 있는 완전체로 체험하고자 한다. 우주적 종교 감정의 여러 발단은 이미 초기 발전 단계, 즉 시편의 여러 곳과 예언서의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쇼펜하우어의 탁월한 저작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불교에는 이런 요소가 훨씬 강하게 담겨 있다.

 

모든 시대에 걸쳐 종교적 천재들은 이런 류의 종교 감정이 두드러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감정 속에는 교리도 없고 사람의 형상을 한 신도 없기 때문에 설교가 행해지는 교회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런 류의 가장 고결한 종교 감정으로 충만해 있으나 많은 경우 동시대인들로부터 무신론자로, 때로는 성자로 인식되는 그런 인물들을 각 시대의 이단자들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데모크리토스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스피노자 같은 사람들은 서로 매우 비슷한 면이 있다.

 

우주적 종교 감정이 신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신학을 떠올리게 할 수 없다면 이런 감정이 어떻게 사람 사이로 전파될 수 있는가? 나는 그런 감정을 받을들일 태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감정을 일깨우고 또 살아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과 과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종래와는 매우 다른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개념에 도달하게 된다.

[...]

어느 한 사람의 윤리적 행동은 공감, 교육, 사회적 연대 및 필요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지 종교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후의 징벌에 대한 두려움과 보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제약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 가련한 일일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항상 과학과 다투고, 그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한편으로 나는 우주적 종교 감정이 과학적 탐구의 가장 강렬하고도 고결한 동기라고 주장한다. 무한한 노력을 실현한 사람만이, 무엇보다도 이론과학 분야에 대한 개척적 연구에 헌신한 사람만이 당면한 현실적 삶과는 거리가 먼 이런 연구가 분출시킬 수 있는 감동의 힘을 이해할 수 있다.

 

케플러와 뉴턴이 천체역학의 제반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고독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주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한없이 깊고 또 이를 이해하려는 열망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주로 실제적 결과를 통해 과학 연구의 지식을 쌓은 사람들은 회의적인 세계에 둘러싸인 가운데 전 세계에 걸쳐, 또는 몇 세기에 이르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한 사람들의 정신을 완전히 그릇 판단하기 쉽다.

 

평생을 동일한 목표에 헌신한 사람만이 그들에게 영감과 힘을 불어넣어 무수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적에 계속 충실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다. 사람에게 그런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우주적 종교 감정이다. 우리가 사는 물질 위주의 이 시대에 진지한 과학도들이야말로 깊은 신앙심을 가진 유일한 사람들이란 어느 동시대인의 말은 그릇되지 않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홍수원, 구자현 옮김, 중심, 2003), pp. 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