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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오늘의 인용-종교의 효용

 

"종교란 하늘나라에서 인간에게 내려준 것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엉터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우리가 버리게 될 때, 문제는 더욱 흥미로워질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종교가 우리의 발명품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발명품은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두 가지 필요성―그러나 세속 사회에서는 어떤 특별한 기술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두 가지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겼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첫째는 몸속에 깊이 뿌리박힌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충동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필요성이다. 둘째는 직업상의 실패, 꼬인 인간관계, 가족의 죽음, 자신의 노화와 사망 등에 대한 우리의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끔찍스러운 고통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다. 하느님은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여러 가지 급박한 이슈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해결책을 촉구하고 요구한다. 마태복음 제14장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야기가 과학적으로는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가 우리에게 넌지시 암시해 줄 경우에도 사라져버리지 않을 어떤 해결책을 말이다.

 

현대 무신론의 오류는 어떤 신앙의 핵심 교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타당성을 지니는 신앙의 측면들이 무척 많다는 점을 간과한 데에 있다. 우리가 종교에 굴복할 수밖에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종교를 모독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을 일단 버리고 나면, 우리는 종교라는 것이 갖가지 정교한 개념들의 저장고임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속적 생활의 가장 끈질기고도 대책이 없는 질환들 가운데 몇 가지를 완화시키는 일에서 그 개념들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박중서 옮김, 청미래, 2011), pp.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