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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늘의 인용-현재 상황은 혁명적 조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 아래의 글은 1948년에 폴란드 브로크라프에서 개최된 <<지식인 평화 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었던 연설문 <지식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A Message to Intellectuals)>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 연설문은 조직위원회의 반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그후 1948년 8월 29일에 언론을 통해 공표되었다. 이 연설문을 읽다보면 새삼 떠올리게 되는 진실이 하나 있다. 존 어빙의 장편소설 <<가아프가 본 세상>>의 마지막 문장의 표현을 빌리면, 이 세상의 우리 인간들 모두는 "가망 없는 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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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성적 사고만으로는 사회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점을 배웠다. 통찰력 있는 연구와 예리한 과학적 작업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힘겨운 육체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삶을 한층 안락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과학 기술적 환경의 노예로 전락시키면서 이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나아가 끔찍하게도 인간 자신을 대량 파괴할 수단을 만들어 냄으로써 인류에게 비극을 초래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처럼 뼈아픈 비극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비극이 아무리 통렬하다 해도, 인류가 그동안 과학기술 분야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음에도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정치적 대립과 경제적 긴장 상태를 해소시킬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찾아내는 일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무력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한층 더 비극적인 일이지도 모른다. 오늘날 위험스럽고 위협적인 세계의 상황은 주로 경제적 이해를 둘러싼 국가간 또는 국가 내부의 반목에서 기인한다. 인류는 세계 국가들의 평화적 공존을 보장할 정치적·경제적 기구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인류는 전쟁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끔찍한 대량 파괴의 도구를 영원히 추방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

우리는 전 세계 모든 나라를 연결시키는 정신적·과학적 가교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국경이라는 끔찍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사람들은 규모가 작은 공동체 생활에서는 반사회적 통치권을 약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이것은 예를 들어 도시 단위의 공동체 생활이나 개별 국가 안의 사회 생활에서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런 공동체에서는 전통과 교육이 조정 기능을 하는 가운데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용인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개별 국가간의 관계에서는 아직도 완전한 무정부 상태가 판치고 있다. 나는 인류가 지난 수천 년 동안 이 분야에서 어떤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었다고 믿지 않는다. 국가간의 분쟁과 대립이 무력이나 전쟁으로 결판나는 일이 아직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각국은 더 큰 힘을 장악하려는 끝없는 욕구에 사로잡힌 나머지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격적인 행동에 돌입하려 한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애 인류를 구할 수 있을까?

 

인류가 상상할 수 없는 파괴와 무참한 대량 살육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초국가적 기구만이 이런 병기를 생산하거나 보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각국이 초국가적 기구에 그런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런 기구가 과거 전쟁으로 이어졌던 모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있을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

 

그러나 불행하게도 혁명적 조치가 절실하게 필요한 현재의 상황을 각국 정부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지난날의 그 어느 상황과도 비교할 수 없다. 따라서 과거에 효과적이었거나 충분했던 방식이나 조치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사고와 행동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며 국가간의 관계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용기를 가져야 한다. 어제의 진부한 방식이 오늘은 더 이상 통용되지 못하고 내일은 완전히 낡은 것으로 쓸모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가장 중요한 일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이런 점을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다. 이는 또한 지식인들이 떠맡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이런 노력이 실패한다 해도 나중에라도 초국가적 기구가 수립되겠지만 그때는 현존하는 세계의 상당 부분이 파괴된 폐허 위일 것이다. 현재와 같은 국제관계의 무정부 상태를 없애기 위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전 세계적 참화를 겪을 필요는 없다는 희망을 갖도록 하자.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가 나설 생각이라면 바로 지금 실행에 옮겨야 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홍수원, 구자현 옮김, 중심, 2003), pp.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