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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코인: 인터뷰-진화에 관한 다섯 권의 책

 

- 아래의 글은 <<지울 수 없는 흔적: 진화는 왜 사실인가>>(김명남 역, 을유문화사, 2011)>>의 저자인 진화생물학자 제리 코인(Jerry Coyne)이 진화와 관련된 다섯 권의 책을 추천하는 인터뷰 내용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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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코인이 추천하는 진화에 관한 5권의 책

Jerry Coyne on Evolution

 

 

진화생물학자 제리 코인은 여전히 다윈을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까닭을 말한 후에 과학자들을 자극하면서 일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쉬운 서적들을 골라내기 위해 진화에 관한 방대한 양의 더 최근 서적들을 걸러낸다.

 

 

저는 당신이 오직 5권의 책을 선택하는 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결국 당신은 이해하기 쉬울 뿐 아니라 당신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책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조상 이야기(The Ancestor's Tale)>> 또는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rest Show on Earth)>>와 같이 진화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고 교육적인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이 다섯 권의 책이 그랬던 방식으로 제게 고무적이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비전문가뿐 아니라 현업 생물학자에게도 도움이 될 책들입니다.

 

실제로 저는 모두가 진화생물학자인 제 동료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조사하여 어떤 책들을 추천할 것인지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입수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제가 어느 정도 오싹한 느낌을 받았던 진화에 관한 대중 서적들을 읽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항상 무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아무도 진화에 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이 책들은 글을 쓰는 방법,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방법, 그리고 더 나은 교육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전달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기능의 일부입니다.

 

저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와 약간 난해한 책인 조지 윌리엄스의 <<적응과 자연선택(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같은 더 전문적인 교과서 유형의 서적들은 제외했습니다. 그것들은 과학자로서의 제게 고무적이지만, 일반 대중과 소통하는 데 관심이 있는 과학자로서는 그렇게 고무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칼 세이건을 제외했어야 했습니다. 좋은 일은 진화생물학에 관해 대중을 교육시키기 위한 다량의 서적들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나쁜 일은 대중이 그것들을 읽고 있는 듯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데, 40%의 미국인들이 여전히 진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첫번째 선택은, 아마 놀랍지 않게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입니다. 구체적으로, 당신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최선의 판본으로 여겨지고 있는 "주석이 달린" 판본―초판의 복사본―을 추천했습니다. 당신이 왜 그 책을 선택했는지, 언제 처음 읽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당신을 고무했는지 말해 주십시오.

 

제가 <<종의 기원>>을 선택한 까닭은 비전문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여태까지 저술되었던 모든 과학 서적들 가운데 이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교양인으로 여겨지기를 바란다면 읽었었야 했을 바로 그 한 권의 책입니다. 교양인이란 인간의 노력이 깃든 주요한 분과학문들에 관해 최소한 약간은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생물학에서는 이것이 당신이 알 필요가 있는 것―역사적으로도 동시대적으로도―인데, 왜냐하면 매우 많은 것들에 관해 다윈이 옳았고, 여전히 옳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에 <<종의 기원>>을 처음 읽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그것을 매년 또는 이 년마다 읽었고, 그래서 스무번은 읽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저는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습니다. 인간 사상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과학에 의해 촉발된 두번의 거대한 혁명이 있었다고 말했던 사람은 프로이트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번째 혁명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이었습니다. 두번째 혁명은 모든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들도 진화한 동물일 뿐이라는 발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윈 덕분입니다.

 

<<종의 기원>>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빅토리아 시대 독자―종교적이고 인간들이 특별하게 창조되었다고 생각하는―의 입장에 처해서 500쪽의 이 산문 때문에 세계관이 어떻게 전복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때 당신은 19세기 후반에 일어났던 인류의 세계관, 즉 인류의 자아상의 혁명에 사실상 참여합니다. <<종의 기원>>은 150년 전에 출판되었으며,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읽어내기가 꽤 어렵지 않습니까?

 

그것은 빅토리아 시대 산문 양식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조지 엘리엇이나 제인 오스틴을 읽을 수 있다면, <<종의 기원>>을 읽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려움은 몇 군데에서 그가 과학에 관해 말하는 바를 해독하려고 노력할 때 나타납니다. 잡종에 관한 그의 장들은 꽤 심각합니다. 때떄로 그는 대단히 혼동하게 됩니다. 그는 모든 것에 관해 옳지 않는데, 그것이 제가 주석이 달린 판본을 추천하는 까닭입니다.

 

알겠습니다. 당신은 주석이 달린 판본에는 어려운 부분들을 설명하는 난외 주석들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것을 더 자세히 설명하는 또 하나의 책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이클 루스의 소개글을 포함하고 있는 데이비드 레즈닉의 <<종의 기원에 대한 해석 안내서(An Interpretative Guide to the Origin of Species)>>라고 하는 책입니다. 그들은 <<종의 기원>>을 근대적 산문 양식으로 다시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종의 기원>>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 책을 참고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추천하는 주석이 달린 판본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물학 전공 학생들이 다윈의 원전을 읽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이 <<종의 기원>>을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에 놀랄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말입니다! 시카고 대학의 생물학 전공 학생들 가운데 아무도 그것을 읽지 않습니다. 저는 제 수업을 수강하는 학부생들이 수업 중에 그것을 읽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500쪽의 빅토리아 시대 산문을 읽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요약판을 제시하는데, 그것도 정말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조차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제 자신의 책을 적게 되었습니다. 그 책 속의 많은 증거는 다윈에게서 차용한 것이지만, 그 책은 더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쓰여졌습니다.

 

다윈 읽기와 관련하여 제가 좋아했던 것은 현업 자연학자로서의 그에 대한 강한 감각이었습니다. 그는 세계를 바꾼 이 이론을 생각해 냈습니다만, 그는 비둘기들을 관찰함으로써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은 동물과 식물에 대한 끊임없고 매우 상세한 관찰이었습니다.

 

그는 명백히 귀납적 추론가였으며, 세부 내용으로부터 큰 그림을 구성했습니다. <<종의 기원>>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한 가지는 수사학이 굉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단일한 목적을 향해 신중하게 설계된 일화와 세부 사항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독자는 점차적으로 다윈이 옳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행하고 있는 바는 생물학의 상이한 영역들―동물 교배(인공선택이 작동하기 때문에 자연선택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지리학, 발생학―로부터 얻은 증거를 사용하여 모든 측면에서 당신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그는 화석 기록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화석들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흔적 기관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총체적으로 하나의 불가피한 결론―진화는 일어나고 자연선택에 의해 일어날 것이다―을 향하게 됩니다.

 

모든 세부 사항들은 다윈이 결코 출판하지 않았던 훨씬 더 많은 일련의 세부 사항들에서 신중하게 선택된 것입니다. <<종의 기원>>은 훨씬 더 두꺼운 책에 대한 요약이었을 것인데, 그것의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레드 북(The Red Book)>>으로 불립니다. 그는 <<종의 기원>>을 현 상태로 저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만,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같은 생각을 제안했었습니다. 그래서 다윈은 그 책을 빨리 저술했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훨씬 더 두꺼웠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설득했던 것은 증거입니다. "이것은 사물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제 이론입니다"라고 그냥 말하면서 뒷받침하는 자료도 없이 그 이론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다윈은 대단히 성공했고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1858년에 월리스는 짧은 소책자를 출판했는데,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다윈은 이 모든 세부 사항들로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공정합니다. 그는 세계의 상이한 지역에 사는 자연학자들에게, 교배자들에게, 익명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이 모든 재료를 수집하는 데 여러 해를 보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그것을 세계를 바꾼 체계로 구성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것의 반향을 느끼고 있는데, 단지 그것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앙에 반한다는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믿기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미국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다윈은 결론 부분에서 중력에 대해 "이제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상황에 관해 멋지게 서술합니다만, 아이작 뉴턴이 최초로 중력의 현존을 증명했을 때 라이프니츠는 그것은 "신비한" 힘이고 종교의 위험 분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수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그의 수사학적 전략의 일부였습니다. <<종의 기원>>의 유명한 마지막 행을 읽어 보면, 그는 중력의 법칙에 따라 태양과 서로의 주변을 회전하고 있는 행성들에 관한 관념으로 되돌아가서 그것을 진화를 초래하는 자신의 자연선택 법칙과 비교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중력보다 진화를 수용하는 데 더 오래 걸렸습니다.

 

진화와 관련하여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에 진화가 거부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종교적 신앙에 반했기 때문에 거부당했습니다. 다른 식으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의 나라들을 살펴 보면, 종교성의 정도와 진화론의 수용 정도 사이에는 뚜렷한 부정적인 상관관계가 나타납니다. 나라가 더 종교적일수록 덜 기꺼이 다윈을 수용합니다. 다윈의 수용 정도―80-90%까지―가 높은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그리고 노르웨이 같은 나라들은 종교성("매일 기도합니까?"로 규정된)의 정도―10-20%―가 낮습니다. 제게 그것은, 그들이 미리 품은 종교적 신앙 때문에 사람들은 진화를 거부하도록 조건화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 세상에 종교가 없었다면 아무 논쟁도 없었을 것이다. 진화생물학은 질병의 세균 이론만큼 널리 수용될 것입니다.

 

 

당신이 고른 두번째 책은 재닛 브라운의 다윈 전기입니다. 그는 과학사가이고 다윈의 서신 여덟 권을 편집하였으며,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바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존의 독자들도 그것이 진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책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여태까지 읽은 최고의 과학 전기일 것입니다. 저는 꽤 놀랬는데, 재닛의 이전 출판물들은 잘 쓰여졌지만 대체로 학술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그가 이 전기를 저술하였을 때 그의 진가가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사실이지 허구가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는 거의 소설 식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절대적으로 몰입하게 만듭니다.

 

제1권, <<종의 수수께끼를 찾아 위대한 항해를 시작하다(Voyaging)>>은 다윈의 초기 생애와 비글호의 항해에 관한 것입니다. 그의 생애의 전반부에서 그는 활동적인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에 그는 딱정벌레를 잡고 있고, 신학을 공부하려고 영국 전역을 여행하고 있으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는 비글호 선장 캡틴 피츠로이의 수행원이 됩니다. 그는 비글호의 자연학자가 아니었는데, 다른 사람이 그 직책을 맡았습니다. 항해 중에 그는 많은 것을 수집하고, 비글호는 남아메리카에 정박합니다. 그는 지독한 뱃멀미 때문에 가능한 한 자주 비글호를 떠납니다. 그는 화석들을 수집했고, 동물들을 총으로 사냥했으며, 기타 등등의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1836년에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여생 동안 기본적으로 서재에서 지냈습니다. 제2권의 제목은 <<나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The Power of Place)>>인데, 그것은 그때 이후로 그가 영구적으로 머물렀던 다운 하우스에서의 생애를 다룹니다. 그는 결코 다시는 영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그곳에 머무르며 이 굉장한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정신적 삶의 힘을 보여줍니다. 돌아다니지 않았음에도 그는 서신 교환, 자식들, 가족을 통해 대단히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습니다. 그의 소중한 딸이 죽는 약간 비극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관념의 모험을 계속했고, <<종의 기원>>뿐 아니라 대부분 꽤 훌륭한 수많은 다른 책들을 저술했습니다.

 

저는 <<종의 기원>>에서 세계 전역의 사람들이 그에게 표본들을 보내고 있었다는 점을 인식했습니다. 예를 들면,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새들을 보냈습니다.

 

그는 표본들도 얻었지만, 훨씬 더 빈번하게 사람들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당신이 줄무늬를 지닌 채 태어난 당나귀를 발견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답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줄무늬를 지닌 당나귀가 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다윈은 당나귀를 낳았던 말의 조상이 줄무늬가 있었으며, 이것이 다시 나타났었던 조상의 특질이었다고 추정할 것입니다. 그것은 세부 사항의 끊임없는 축적이었습니다. 그것은 꽤 흥분되는 일이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의 편지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왔음에 틀림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실험을 수행하고 있었으며, 실험을 수행할 아이들―그것들이 바다를 건너는 데 소요될 긴 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바닷물에 흠뻑 젖은 씨앗들처럼―을 얻었습니다.

 

항상 건강이 매우 나쁜 상태를 겪으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는지 믿을 수가 없는데, 그는 성인 시절의 대부분 동안 병자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병에 걸린 원인에 관한 추측이 많이 있었습니다. 재닛은 그것을 많이 다루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가 주기적 구토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것을 앓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종류의 끔찍한 증상들―끊임없는 구토, 두통, 우울, 발작적 울음―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그 전기는, 그의 아내가 대단히 종교적이어서 그 책이 아내에게 미칠 영향에 관해 걱정했기 때문에 다윈은 <<종의 기원>>의 출판을 미루었다는 암시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것이 옳습니까?

 

제가 추천한 굴드의 책, <<다윈 이후>>에도 이 출판 연기에 관한 논의가 있습니다. 저는, 출판이 연기된 까닭은 그의 아내가 종교적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 최선의 추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아내의 종교성이 <<종의 기원>>에서 인간의 진화에 관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기원이 밝혀질 것이다"와 같이 말하는 한 문장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가 고의로 그랬다는 것은 명백히 분명한데, 그는 당시에 종교적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화가 일어났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를 원했으며, 그리고 명백히 결론은 인간들도 진화했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인간의 진화적 기원에 관해 훨씬 더 명시적이었던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의 출판은 12년이 지난 후에서야, 즉 1871년에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그가 연기했었던 이유는 자신이 옳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다윈은 완전히 정확한 진술을 하는 데 매우 신중했습니다. 그래서 <<종의 기원>> 전체에 걸쳐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글쎄, 이것은 틀릴지도 모른다." 또는 "독자로서 반대를 제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그의 수사학적 전략의 일부입니다만, 훌륭한 과학자의 특성들 가운데 일부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이 틀렸다고 입증할 것을 알아내고 그런 반대들을 다루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종의 기원>>에는 그것과 관련된 문제들에 관한 "이론의 난점들(Difficulties on Theory)"이라는 장도 있습니다. 이것들 가운데 하나는 모든 불임의 일벌들이 자신들의 엄마벌을 돕는 벌 군체의 진화입니다. 불임이 어떻게 진화적으로 이점이 있을 수가 있는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는 일을 수행하는 조심성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과학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종의 기원>>만 읽어서는 얻을 수 없는 방식으로 재닛의 책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재닛은 다윈, 그의 삶, 그리고 그가 극복했던 적들, 즉 인간 사유의 혁명적인 이 작업 속으로 편입된 모든 것에 관한 하나의 견해를 제공합니다.

 

그 자신의 종교적 견해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무신론자였습니까?

 

젊었을 때 그는 기본적으로 그 당시 영국에서 대부분의 자유주의적인 사람들이 종교적이었던 방식으로 종교적이었을 겁니다. 그는 실제로 성직자가 되기 위해 여행을 했습니다만, 그것을 매우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이가 더 들었을 때 그는 이런 모든 신앙의 부속물들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창조주 같은 낱말들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종의 기원>>에서 창조주가 하나 이상의 원초적인 생명 형식들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종교적이었다는 점을 가르키기 위해 그것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 또는 그가 [토머스] 헉슬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는다면, 그가 어떤 종류의 인격신도 전혀 믿지 않았다는 점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면, 그는 쥐를 몹시 괴롭힐 고양이 또는 애벌레일 때 먹이를 속에서부터 먹는 말벌을 설계할 신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연의 참사들 때문에 그는 세계가 자연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납득하게 됩니다.

 

저는 다윈이 중년의 남자였을 때 그에게 진정한 종교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는지 의심합니다. 그의 아내 엠마가 교회에 다녔음에도 그는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종교적 신앙에 관한 어떤 표현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창조론자들은 항상 다윈이 종교적이었다는 신화를 선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에 대한 증거는 그야말로 없습니다. 다윈을 읽어본 적이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자신을 불가지론자―부언하자면, 이것은 그의 친구 헉슬리가 만들어낸 술어입니다―라고 불렀을지도 모르는데, 그 당시에 무신론자는 강한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신을 믿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가 자신이 죽은 후에 어딘가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쾌 확신합니다.

 

창조론자들은 왜 그가 종교적인지 아닌지에 관심을 가집니까? 확실히 그는 그들에게 금기입니까?

 

그들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종교적이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식으로 다윈이 종교적이기를 바랍니다. 히친스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으며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증명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이 이론을 생각해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다윈이 여전히 신을 믿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진화가 모든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금기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진화를 수용합니다. 그들은 화해론자들입니다. 사람들은 과학―특히 진화―과 종교 사이에 고유한 갈등은 없으며, 다윈이 종교적인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종교와 과학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들은 완전히 대립적인 세계관들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미합중국 국립보건원 원장인 프랜시스 콜린스가 복음주의 기독교도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그를 종교와 과학이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례로서 사용하는데, 종교적인 과학자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윈에 대해서도 같은 일을 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 속에 두 개의 정반대 견해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이 두 관점이 양립 가능하다는 점이 아니라, 인간들은 구획할 수 있는 두드러진 능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줄 뿐입니다.

 

 

다음은 확신에 찬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입니다. 당신은 <<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을 지지했습니다. 그것은 도킨스의 책을 단 한 권만 읽는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산 오르기(Climbing Mount Improbable)>>는 매우 훌륭한 유사한 책입니다.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도 또 하나의 책입니다. 저는 도킨스의 모든 책을 읽으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것이 제 추천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도킨스의 철학과 방법론을 제시하고 그의 문학적 솜씨를 보여주는 단 한 권의 자기충족적인 책을 뽑아야 한다면, 저는 이것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은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인데, 그것이 유전자중심적인 진화관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책은 읽기에 약간 힘듭니다. 그 속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은 <<눈먼 시계공>>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런 특별한 제목을 선택한 까닭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것은 지적 설계의 원래 판본입니다. 그것은 윌리엄 페일리에서 유래하는데, 그는 18세기의 자연신학자였습니다. 페일리는 동물들의 완벽함이 신의 현존을 증언하는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이라고 하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햄스테드 히스를 가로질러 걷고 있다. 내 발이 시계에 다다른다. 나는 이것을 바라보고 그것은 경이롭다. 그것은 나사와 기어들이 있다. 그것은 시간을 가리키고 시간은 맞다. 그것은 그것이 행하는 바를 위해 대단히 잘 만들어져 있다." 그 다음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동물을 바라보라". 제 책에서 저는 딱따구리의 사례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강인한 부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무에 기대기 위해 단단한 꼬리 깃털이 있습니다. 그것은 뇌 주변에 완충재가 있기 때문에 뇌를 다치치 않은 채 시속 16마일의 속도로 일초에 15번 줄기에 머리를 부딪칩니다. 그것은 타격을 가하는 순간에 눈을 감고, 그래서 나뭇조각들이 눈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콧구멍에 깃털이 있고, 그래서 나뭇조각들이 흡입되지 않습니다.

 

딱따구리는 시계에 상응하는 유기체입니다. 페일리의 견해는, 시계의 완벽함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설계자 또는 시계제작공의 현존을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동물과 식물의 완벽함을 바로보는 것으로부터 설계자의 현존을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다윈 이전의 모든 생물학자들의 세계관―자연의 완벽함이 창조주의 은총을 증언한다―이었습니다.

 

그것이 <<종의 기원>>에서 다윈이 바꾼 것입니다. 그는 완전히 눈먼, 목적이 없는 유물론적인 과정을 통해 설계의 완벽함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종교적인 사람들이 다윈주의를 그렇게 경멸합니다. 저는 도킨스를 대변할 수 없지만, 그 책이 다루고 있는 자연선택이 눈먼 시계공이라는 점은 꽤 분명합니다. 그것은 시계만큼 정교한 것들과 훨씬 더 정교한 것들을 산출합니다. 어느 동물도 시계보다 무한히 더 복잡하지만, 그 동물은 자연선택이라는 단순한, 유물론적인, 눈먼, 목적이 없는 과정에 의해 산출되었습니다. 리처드의 책의 요지는 자연의 경이들과 유기체들의 놀라운 "설계"를 설명하기 위해 천상의 설계자에 더 이상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선택했던 앞의 책들이 그것을 수행하지 않았기 떄문입니까?

 

그것은 다윈 책 속에 내포되어 있습니다만, 그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이 자연신학을 어떻게 대체할 것인지에 관한 논쟁에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다윈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주입시키는 리처드 식의 논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도킨스도 그 과정의 세부 내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세부 내용을 고안하여, 이런 눈먼 유물론적 과정이 작동한다는 점을 다윈 이래로 우리가 배웠던 모든 놀라운 방식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친족 선택, 무기 경쟁, 진화의 모든 종류의 근대적 측면들을 자세히 검토합니다.

 

당신이 <<눈먼 시계공>>을 처음 읽었을 때 그 속에 당신이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까?

 

저는 그 책의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이 재료를 알고 있을 때에도 도킨스와 관련하여 직업적인 생물학자에게 유익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글쓰기의 질이 정말 뛰어납니다. 제가 최고의 문장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행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는 파나마에서 병정개미 군체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왕개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여왕개미는 그녀에게 이르려고 시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죽이고자 할 일개미들에 둘려싸여 있기 때문에 그는 여왕개미에 이를 수 없습니다.

 

"여왕개미는 결국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맥동하는 공의 중심 어딘가에는 중앙 정보 은행이자 개미 집단 전체의 마스터 DNA를 저장하고 있는 여왕개미가 있을 터였다. 그 위협적인 병정개미들은 여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이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충성심을 갖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뇌와 그들의 턱이 여성개미가 가지고 있는 원본으로부터 복제된 유전자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여왕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병정개미를 만들 수 있는 여왕개미와 그 유전자가 살아남았고 이 유전자가 병정개미에게 들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용감한 군인처럼 행동한다."[리처드 도킨스,  <<먼 시계공>>(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 p. 186]

 

그것은 분명히 문학적인 언어로 진행되고 있는 바를 정확히 말해주는 멋진 산문입니다. 그것은 과학자로서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그 책 전체는 이 같은 행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집이 위치해 있는 강둑에 잠깐 들러 씨앗들을 응시하고 있는 다른 행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적습니다. "DNA 비가 내리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씨앗의 분산과 그것이 유익한 까닭에 관한 논의에 접어듭니다. 그래서 문학적 측면이 있습니다.

 

둘째, 저는 항상 도킨스를 대단히 똑똑한 아이로 여겨왔습니다. 물론 그는 아이가 아니며, 그는 진짜 뛰어난 성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이의 눈으로, 제 생각에 스티븐 제이 굴드를 비롯하여 글을 잘 쓰는 어느 과학자도 결코 할 수 없을 방식으로 사물들을 바라봅니다. 게다가 그 인간에 대한 감각을 얻습니다. 저는 그가 매우 대중적인 작가인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산문의 배후에 당신이 알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느낍니다.

 

이 책에서 그는 눈을 많이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반쪽 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오래된 속담을 고릅니다. 또 다시, 그것은 지적 설계의 반대 의견입니다. 모든 부분들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작동하지 않는 특징을 진화가 어떻게 산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는 원시적 눈들이 점차로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각각의 눈은 기능적이고 각각의 진전은 이전 형태에 대한 적응적 개선을 나타냅니다. <<눈먼 시계공>>에서는 진화에 대한 일반적인 반대 의견들이나 잘못된 개념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다루어지는데, 그것이 이 책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그것은 암묵적으로 반창조론적입니다. 그가 다루는 또 하나의 반대 의견은 진화가 복잡성을 만들어낼 수 없거나 또는 유기체의 DNA에 암호화된 정보의 증가를 이룰 수 없다는 관념입니다. 그는 그것을 일축하는 매우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는 이런 문제에 관한 달인 교사입니다. 전문가도 그로부터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매우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사례들의 중요성을 배우고 경이감을 얻습니다. 결국 그것이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을 나날이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스티븐 제이 굴드입니다. 하버드에서 그는 당신을 가르쳤습니까?

 

저는 그의 강좌들 가운데 하나를 수강하였으며 그는 제 학위논문 심사위원회 위원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꽤 잘 알았습니다. 굴드는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 분야의 영예였습니다. 그는 박식가였습니다. 그는 제 삶에서 제가 지금껏 알았던 어떤 과학자보다도 하루에 더 많은 일을 해냈는데, 주된 원인은 그가 거의 잠을 자지 않은 채 살면서 항상 일했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리처드 르원틴과 꼭 마찬가지로 그는 탁월한 교사였습니다. 제가 하버드에 있었을 때 그들 둘 다 그곳에서 사회생물학 반대 운동을 이끈 마르크스주의자 집단의 일원이었습니다.

 

저는 굴드를 많이 존경했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것은 차차 쇠퇴했습니다. 그는 저로서는 정말 틀렸다고 생각한 자신의 단속평형 이론에 매혹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와 나는 글로 그 이론에 관해 여러 번 언쟁을 벌였는데, 저는 그것이 산뜻하지 않다고 말했고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을 직면했을 때 그가 나타낸 비타협적 태도 때문에 저는 그에 대한 존경심을 얼마간 상실했습니다. 또한 그는 사회생물학에 대해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는데, 거의 인간 집단들 사이의 어떤 차이점들의 존재도 거부하고 싶어한다고 할 만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생물학에 대해 그는, 결국에는 자연선택을 거의 거부하게 만든, 또는 최소한 생명의 역사에서 자연선택을 매우 사소한 부분으로 전락시킨 마르크스주의적 견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에 관해 말하곤 했던 다른 일은, 그가 점점 나이가 들면서 명사 취급을 더욱 더 받게 됨에 따라 그의 산문은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제가 택한 책들은 초기의 책들입니다.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 출판되었던 책 <<진화론의 구조(The Structure of Evolutionary Theory)>>는 거의 읽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에 관해 긍정적인 것들을 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안합니다. 당신은 저와 그의 관계에 관해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굴드와 도킨스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두 명의 과학저술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굴드가 과학에 남긴 지속하는 유산은 이중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그의 저작과 진화의 대중화. 둘째, 고생물학을 진화생물학의 중요한 부분으로 복귀시킨 공로. 고생물학은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었었지만, 굴드 자신의 활동과 떠들썩함, 그의 강연과 글쓰기 덕분에 사람들은 고생물학이 흥미롭고 진화에 대해 말할 것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책들을 추천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그것들로부터 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굴드는 결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학과 관련하여 실수들을 저질렀습니다. 그를 알았던 사람들에게 그는 약간 오만하고 거드름 피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멍청이가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순전한 과학적 재료 가운데 많은 부분이 틀렸고 그의 만년의 산문이 과장되고 도가 지나쳤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책들에 대한 모욕이 아닙니다. 그런데 초기의 것들은 대단합니다. 저는, 생명의 전 범위가 연구 대상이기 때문에 진화생물학자들이 모든 과학자들 가운데 가장 운이 좋다고 항상 느꼈습니다. 어느 날이든 간에, 저는 분자생물학, 생물지리학, 생리학, 발생학, 화석 기록에 관한 논문들을 읽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 모두는 진화 과정 속으로 굴러 들어갑니다. 항상 흥미로운 것을 마주치게 되는데, 저는 그런 흥분을 일반 독자에게 가장 잘 전달하는 사람들이 굴드와 도킨스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오해>>와  굴드의 모순점들에 가운데 일부를 요약할, 최근에 그것에 관해 밝혀지게 된 새로운 사실들에 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인간에 대한 오해>>는 과학을 인종주의를 고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흑인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두개골이 백인의 두개골보다 더 작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사용되었던 초기의 두개골 측정 같은 것들을 포함합니다. 그는 그것의 정체를 폭로한 다음에 우생학과 지능 지수 시험을 자세히 검토하여 이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과학자들이 나름의 인종적 편견들에 바탕을 두고 사람들의 전형화에 기여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는 인종주의가 잘못 되었고 과학이 거기에 연루되었다고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그는 지능 지수 시험의 경우에 특별히 시사하고 있는 자료를 혹독히 비판합니다. 그 책은 매우 잘 쓰여졌고 매우 매혹적입니다. 그곳에는 많은 통계와 수학에 관한 논의가 있습니다만, 그 책은 정말 좋은 책입니다. 마지막 여러 문단에서는 과학 글쓰기에서 여태까지 제가 읽었던 최고의 산문 가운데 일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 주 전에 굴드가 이 책의 작은 부분에서 망쳐버렸다는 점을 보여주는 논문 한 편이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두개골 측정에 관한 새뮤얼 모턴의 연구인데, 그는 두개골을 씨앗과 납산탄으로 가득 채워 두개골의 용량을 측정하여 "열등한' 인종들의 두개골이 더 작은 뇌를 감싸고 있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일단의 사람들이 굴드의 분석을 재분석하여 그가 완전히 틀렸음을 알아내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의 20에서 30쪽이 불신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이 그의 독보적인 최고의 책이라고 여전히 말할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사람이라는 점을 환기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읽을 가치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름의 편견이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더라도 매우 흔히 그 편견들은 과학적 결과에 주입됩니다. 굴드는 그것에 정말 잘 어울리고, 우리는 그것에 관해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추천할 다른 책은 화석에 관한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Wonderful Life: The Burgess Shale and the Nature of History)>>이라는 책입니다. 굴드의 분석은 대체로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버제스 혈암의] 이 특별한 화석들을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완전히 사라져 버렸던 생명 형식들로 여겼고, 그래서 그는 현대 생명은 매우 다르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구와 충돌하는 소행성처럼 어떤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었더라면, 생명의 테이프를 되감고 다시 시작했더라면, 상황은 현재의 모습과 완전히 다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들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의 요점입니다. 굴드가 묘사한 대부분의 화석들은 이제 현존하는 동물 집단들의 일부인 것으로 사실상 인식되는 것으로 판명되는데, 그래서 그 책의 그 부분은 잘못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중요하지 않는데, 그 책의 대부분은 캐나다 록키산맥의 이 놀라운 각인 화석들―그것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서술을 다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굴드는 당신이 선택한 다섯 권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당신은 그의 에세이들도 권유하고 싶지요.

 

그렇습니다. 만약에 제가 굴드의 저작들 가운데 읽을 것을 하나 선택해야 한다면, 그리고 제게 그것이 에세이일 것인지 책일 것인지 물으신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둘 다 읽어야 합니다. 저는 그의 첫번째 모음집인 <<다윈 이후(Ever Since Darwin)>>를 권유하고 있습니다만, 똑같이 훌륭한 초기 모음집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예를 들면, 다윈 자신이 왜 진화라는 낱말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비글호에 승선한 자연학자가 아니었는지에 관한 멋진 에세이들이 몇 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다윈이 정말 행했던 바, 그가 의미했던 바, 그 당시에 그의 삶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일―을 보충합니다. 그 다음에 굴드는 사회생물학 같은 다른 것들을 계속 다룹니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생물학에 대해 훨씬 더 온건하고 꽤 정확합니다. 그는 진화에 관한 잘못된 개념들을 일축한 다음에 진화의 흥미로운 특징들에 대한 많은 사례들―큰뿔사슴, 자신의 엄마를 속에서 먹어치우는 파리―을 다룹니다. 다윈과 마찬가지로 굴드는 이런 작은 세부 사항들을 사용하여 더 큰 이야기를 말하는 일화의 달인입니다.

 

당신의 마지막 책은 도널드 프로테로의 <<진화: 화석들이 말하는 것과 왜 그것이 중요한가(Evolution: What the Fossils Say and Why It Matters)>>입니다.

 

이 책은 제 목록에서 와일드카드인데, 진화 애호가들도 들어본 적이 없을 그런 책입니다.

 

이 책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비전문가들에게 진화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 가운데 일부, 즉 화석 기록을 정말로 매우 상세히 제시하는 그런 책이기 때문입니다. 돈 프로테로는 캘리포니아의 교수입니다. 이 책은 여타의 어떤 책보다도 더 교과서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적인 양식으로 쓰여져 있으며 비전문가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전에 진화가 참인지 의심했고, 그 다음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계속 의심할 수 있을지 저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책은 화석 변화를 보여주는 그림들과 진화 과정에 대한 서술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매혹적이고 절대적으로 설득력이 있다고 알아챘습니다. 그것은 화석이 거의 없었던 다윈을 보충합니다.

 

그것이 다윈과 관련하여 저를 놀라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유인원과 인간의 경계에 있었던 생물체가 어떤 시점에 살았었음에 틀림없다고 예측한 이론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것을 스스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화석들을 통해 얻었던 확증을 볼 수 있을만큼 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진화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매우 강력하고 다양하며, 매우 많은 학문분과들에서 찾아볼 수 있어서 한 영역―화석 기록 같은―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증거는 여전히 방대할 것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보여줄 뿐입니다. 다윈은 몇 개의 화석이 있었고 그는 몇몇 사례들에서 화석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요한 새로운 동물 형태들의 기원을 보여주는 이행기의 화석들이 없었습니다. 그의 1871년 책[<<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에서 그는 인간들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영장류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예지적이었는데, 1920년대가 되었서야 그것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로테로의 책은 오늘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책보다도 훨씬 더 다윈에서 빠진 증거를 채웁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생물지리학이나 발생학에 관해서 그리고 그것들이 진화를 어떻게 증언하는지 말할 수 있지만, 결국 사람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오래된 좋은 화석들을 보고 싶어합니다. 우리와 우리의 영장류 조상들의 경계에 있었던, 키가 삼사 피트인 생물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정말로 잘 납득시키는 데는 박물관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인간과 유사한 두개부뒤골격과 함께 그 위에 위치한 유인원과 유사한 두개골을 지닌 것―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책은 정말 그런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 책의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그것은 육지 동물로부터 고래의 진화, 양서류로부터 파충류의 진화, 파충류로부터 포유류의 진화, 그리고 어류로부터 양서류의 진화를 다룹니다. 생명의 역사에서 이런 주요한 모든 이행들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저는 도킨스, 굴드, 그리고 다윈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프로테로의 책을 매우 권유할 것입니다. 그 책은 훨씬 더 넓은 독자층을 거느릴 자격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더 선전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에 대한 이해를 향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도킨스 책의 서문에서 그는 "더 많은 의사들이 다윈주의를 이해했더라면, 현재 인류는 항생 물질에 대한 내성의 위기를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옳을 것입니다. 항생 물질은 명확히 과도하게 처방되었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항생 물질에 대해서는 창조론자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로테로의 책에는 그것에 관한 삽화―벌레들이 내성을 발달시키지 못한 약물에 대한 창조론적 선택―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실제적인 것일 뿐입니다. 당신이 의사이고, 한 약물을 너무 많이 남용하여 사람들이 그것에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그 약물이 더 이상 효험이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론적 근거는 자연선택이지만, 적절한 행동을 취하기 위해 그것을 이해할 필요는 정말 없습니다. 저는 의약에 대한 진화생물학의 실제적 응용들이 꽤 과장되어 있다고 항상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면 제 동료들은 저를 죽일 것입니다만, 일반적으로 저는 진화생물학이 돈을 벌거나 더 부자가 되는 데 도움을 주는 방식이라기보다 인간 정신의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책, <<지울 수 없는 흔적: 진화는 왜 사실인가(Why Evolution is True)>>은 진정으로 그것을 포착합니다. 당신은 진화를 뒷받침하는 모든 증거를 매우 명료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다루고 있지만, 독자들에게 자연 세계에 대한 이런 놀라운 경이도 전달합니다. 그 책을 읽은 후에 저는 제 주변의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그 속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더 높이 평가하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당신에게 주는 삶의 의미에 관한 그 책의 마지막 부분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저는 정말로 어떤 문학적 고전도 생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진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때 세계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증진된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굴드와 도킨스가 저술했던 책들로부터 얻는 큰 교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과학주의와 환원주의와 진화가 세계의 경이를 없애 버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존재하지 않는 천상의 영역에 관한 묵상에서 그들의 경이가 유래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작동하고 있는 이런 물질적 과정들을 이해하고 그것이 참된 이야기―우리는 유인원들에서 진화했고, 우리는 대체로 자연선택에 의해 그렇게 되었으며, 우리는 지구의 모든 다른 식물과 동물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라고 깨닫을 수 있다면, 그것이 경이의 궁극적인 원천입니다. 세계가 어떻게 현재의 모습대로 되었는지 이해할 때 세계는 훨씬 더 풍요로워집니다.

 

번역: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