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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오늘의 인용-사물들을 낯설게 하기

 

"그[발터 벤야민]는 종종 이야기 유형을 뱃사람 이야기와 농사꾼 이야기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우선 뱃사람 유형의 이야기는 결코 아무도 방문한 적 없고 앞으로도 분명 그 누구도 찾아가려 하지 않을 것 같은 아주 먼 곳에 대한 이야기이자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기괴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괴물과 돌연변이, 마녀와 마법사, 늠름한 기사와 반대로 교활하고 못된 짓을 하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야기 속에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영웅담을 경청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서로 삐걱대면서 충돌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 특히 마법에 홀린 듯 뱃사람의 이야기에 매혹당한 채 경청하는 그런 사람들은 결코 해보려고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감히 그렇게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반면에 농사꾼 유형의 이야기는 마치 언제나 되풀이되는 일 년 동안의 계절 순환처럼 또는 집과 농장, 들판에서 매일 벌어지는 지루한 일상들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하고 얼핏 보기에도 친숙한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방금 나는 얼핏 보기에 친숙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들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는 인상 때문에, 그 친숙한 일들에 관해 어떤 새로운 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 또한 하나의 착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착각에 빠지는 것은 바로 그 친숙한 것들이 너무 가까이 존재하기 때문에 도리어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언제나 거기 있어서', '결코 변하지' 않을 듯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만큼 아주 재빠르고 단호하면서도 면밀한 음미의 눈길을 피해가는 것도 없다. 친숙한 것들은 바로 '빛 속에 숨어' 있는데, 결국 그 빛은 친숙함 속에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오해하게끔 하는 빛이다! 그러한 친숙한 사물들의 평범성은 모든 음미의 눈길을 방해하는 장막인 셈이다. 그처럼 친숙한 사물들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아 면밀한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각적으로 무디고 아늑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타락한 판에 박힌 듯 순환하는 일상으로부터 그 사물을 뜯어내서 분리시켜야 한다. 우선 그 사물들을 적절히 이해할 수 있도록 스캐닝하기 전까진 반드시 무시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그 사물이 지닌 소위 '일상성'이라는 의심스러운 장벽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친숙한 사물들이 숨기고 있는 풍부하고도 심원한 미스터리를 탐구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다. 사실 당신이 그 친숙한 사물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곧 그 사물들은 아주 기묘하고 수수께끼 같은 것으로 돌변할 것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조은평·강지은 옮김, 동녘, 2012), pp.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