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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매즐리시: 오늘의 인용-네번째 불연속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1915년부터 1917년까지 비엔나 대학에서 행한 <<정신 분석 입문>>의 열여덟번째 강의에서, 인간의 순수한 자존심에 상처를 준 세 명의 사상가 중 하나로 자신의 이름을 거론했다. 이들 사상가 중 첫번째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로,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지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의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조각일 뿐>이라고 했다. 두번째는 찰스 다윈으로, 그는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 보장했던 인간의 우월한 지위를 박탈하고 인간도 동물의 후손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세번째가 프로이트 자신으로, <자아가 육체의 주인이 아니라 무의식의 진행에 관한 작은 정보로 만족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임을 정신 분석으로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 나는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트가 준 [우주론적·생물학적·심리학적] 충격과 비슷한 네번째 충격이 인간에게 가해지고 있다고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인간이 기계에 비해 특권적인 위치에 있다는 무의식적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프로이트의 자아관을 확장한 가장 흥미로운 생각은 미국의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의 연구에서 나왔다. 그는 프로이트를 물구나무 세워서, 프로이트가 단절이라고 여긴 것을 연속이라는 개념으로 바꿨다. 자연이 연속적임을 입증하는 일은 연속성의 창조 또는 불연속성(불연속이란 말은 자연 현상의 격차를 강조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천체와 지상의 물체, 생물과 무생물 등의 커다란 차이를 강조하는 말이다)의 제거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브루너에 따르면 첫번째 연속을 입증한 것은 코페르니쿠스가 아니라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다. 아낙시만드로스와 같은 사상가들은 물리적인 현상이 <연속적이고 일원적이며, 물질의 보편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연속은 인간과 동물을 연결한 것으로, 말할 것도 없이 다윈의 업적이며, 프로이트의 연구에 필수 조건이다. 브루너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유기체적 법칙의 연속을 입증해서 [...] 원시적이고 유아적인 본성이 문명화되고 진화된 성품과 연속적이고, 병든 정신이 건강한 정신과 연속적임을 입증했다.

[...]

그러나 [...] 네번째 주된 불연속 또는 이분법이 우리 시대에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불연속이다. 다시 한번 인간은 자신이 기계보다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이런 생각은 심리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목적에 봉사하지만,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족쇄이다.

 

[...] 인간의 자존심과 연속성을 부정하려는 경향은 산업 사회에서 기술을 불신하는 배경이 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불신[...]은 인간이 자신의 본질, 즉 자신이 만든 기계나 도구와 연속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러한 불연속을 극복하고 나면, 우리가 기계와 기계 문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더 의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

나의 첫번째 논제는, 우리가 인간-기계 불연속을 깨는 문턱에 와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 한편으로는, 인간의 진화가 도구[...]의 사용 및 발전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불연속을 끝내려 한다. [...] 또 한편으로는, 인간과 기계를 같은 과학 원리로 설명할 수 있으며, 물질이 진화하여[...]지구 속에서 복잡한 형태의 유기적인 생물이 되고, 이제 생각하는 기계의 구조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이 불연속은 메워지고 있다.

 

물론 인간과 기계가 아무 차이도 없다는 주장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똑같다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다. 차이는 말할 것도 없이 정도의 문제이다. [...] 이제는 더 이상 인간과 기계가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

두번째 논제는 진화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인간 본성이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하는 실체라는 점을 논의할 것이다.

[...]

인간 본성의 진화를 이해하려 할 때, 인간의 본성은 단순히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계 창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진화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

나는 독자들이 기계에 관한 문제에 끈질기게 천착하여 인간과 기계의 상호 연관성이 우리의 삶에 던지는 의미를 완전하고 영속적으로 이해하기를 바란다. 좀더 범위를 좁혀서 말해 나의 목적은, 인간이 동물과 기계 양쪽에 기원을 둔 독특한 진화적 존재이며 동물적 성질과 기계적 성질이 모두 인간 본성에 녹아 있음을 독자들로 하여금 깊이 느끼게 하는 것이다."

 

―― 브루스 매즐리시(Bruce Mazlish), <<네번째 불연속: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김희봉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1), pp. 1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