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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랑시에르의 예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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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의 테제는, 예술은 치안 질서 또는 감성의 분할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그것들을 재조정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핵심은 예술 작품들이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이것은 바로 현존하는 관계들의 체제와 단절하는 작품에 대해 조건적이다. 달리 말해서, 예술 작품들은 이런 종류들의 결과를 산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미 독자적인 존재자들이어야 한다.

[...]

랑시에르가 예술 작품들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은 그것들이 감성의 분할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감성의 분할은 세계의 어떤 구성 요소들을 노동자들의 경우처럼 보이지 않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조작하는 구분을 자연적이고 자명한 것[...]으로 나타냄으로써 그것 자체도 보이지 않게 한다. 예술은 그런 자연성과 자명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다.

[...]

다시 말해서, 랑시에르에게 예술은 감성의 분할의 우연성을 드러내거나 보이게 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치안 질서 또는 감성의 분할을 구조화하는 식별 메커니즘을 단락시킴으로써 이것을 행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예술은 사회적 질서 아래 놓여 있는 부글부글 끓는 무정부 상태, 즉 토대의 부재를 드러낼 수 있고, 그래서 다른 분할 유형들의 가능성을 개방한다.

 

랑시에르는 예술의 이런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정도에 따라 예술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그것들은 윤리적 예술(ethical art)과 재현적 예술(representational art), 심미적 예술(aesthetic art)이다. 랑시에르에게 "윤리적 예술"은 결코 진정한 예술이 아니다. 윤리적 예술은 [...] 관객에게 완전히 종속된 그런 예술이다. 윤리적 예술은 어떤 종류의 윤리적 내용을 담고 있는 예술이 아니라, 오히려 특수한 에토스의 생산에 있어서 하나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환원되는 예술이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에서 플라톤이 예술에 부여한 기능에 관해 생각해야 하는데, 예술은 자신의 공인된 지위―동(노동자), 은(보조자), 금(통치자)―을 인식하도록 영혼들을 주조하고 사람들에게 적절한 윤리적 내용을 주입하기 위한 교육적 장치로서만 사용될 수 있다. 여기서 예술은 치안 질서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으며 치안 질서 자체를 유지시키는 메커니즘들 가운데 하나이다.

 

랑시에르에게 재현적 예술은 "실재"와 닮으려고 노력하는 예술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코드에 따라 주제가 미리 규정되어 있으며(종교적 주제들과 귀족 같은 중요한 인물들에 관한 묘사), 그리고 이런 제재를 묘사하고, 의미를 전달하며(기호들), 주제들을 선택하는 [...] 일련의 방식들이 미리 규정되어 있는 예술을 가리킨다. 따라서 재현적 예술은 원형과 복제본 사이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재현적 예술은 그 예술의 기호들을 읽을 수 있도록 적절하게 교육받은 사람들에게만 개방되어 있다. 윤리적 예술과 마찬가지로 재현적 예술도 치안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심미적 예술의 경우에는 이 모든 것이 변한다. 랑시에르는 심미적 예술을 "민주적인" 것이라고 일컫는데, [...] 그것이 무엇이든 주제로 삼을 수 있기 떄문이다. 예를 들면, 재현적 예술은 중요한 인물이나 종교적 사건만을 묘사할 것이만, 심미적 예술은 건초 꾸러미, 수프 통조림, 여성 농부의 고역, 화장실, 국기, 말의 내부, 주먹다짐, 기타 등등을 묘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심미적 예술에 관해 인식해야 할 첫 번째 요점은, 그것이 어떤 주제들이 적절한지 규정하는 근본적인 코드 없이 도대체 무엇이든, 즉 부글부글 끓는 세계의 무정부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한에 있어서 민주적이라는 점이다. [...] 재현적 예술은 보이는 것 또는 실제로 고려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에 바탕을 둔 존재의 위계를 전제로 하는 반면에, 심미적 예술은 무엇이나 예술의 잠재적 주제가 되는 위계 없는 존재의 민주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심미적 예술은 관객들과 관련된 두 번째 의미에서 민주적이다. 관객에게 예술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말하는 "예술적 언어" 또는 코드가 전혀 없는 한에 있어서, 이런 종류의 예술은 원칙적으로 누구에게나 말을 건다. 그것은 교육을 받고 예술 작품을 판단하기 위한 취향을 개발한 유능한 예술 비평가와 무지한 대중 사이의 구분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자체의 민주주의에 있어서 심미적 예술은 감성의 분할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다. [...] 예술도 그것이 다루는 것과 그것 자체의 함수로서 세계 속 행위자가 될 수 있다.

――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