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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예술 작품이란?

 

"[...] 첫째, 나는 예술 작품의 물질성 또는 실재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데 관심이 있는데, 다시 말해서, 그것은 그저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무언가이다. 내게 예술 작품은 그것의 제작자와 독립적으로 전 세계에 걸쳐 순환하는, 그 자체로 객체 또는 기계이다. 예술 작품은 사람이나 바위나 완보동물에 못지 않게 하나의 사물 또는 기계이다. 그것은 나름의 삶을 나타내고 자체의 특이한 힘과 특성들을 갖는다. 내 견해로는, 예술 작품 자체의 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세계 속의 실재적 존재자로서 예술 작품의 존재성을 탐구하는 대신에 예술가의 의도과 관객의 수용의 견지에서 그것을 재영토화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예술 작품의 생산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든 것―예술 작품의 생산은 예술가가 자기 작품의 매질 속에 몰입하는 것을 포함하고, 그래서 예술가와 매질 둘 다 생산 활동 속에서 다른 것이 되며, 그리고 그저 물질적으로 육화되는 예술 작품의 모형이 예술가의 정신 속에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하는 한편, 예술 작품은 그것의 제작자와 관객 모두로부터 일종의 자율성을 향유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저자나 프랑스 동굴 벽화의 제작자에 관해서 거의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이것들은 여전히 세계 속에서 공명하고 작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은 모든 맥락(작가의 의도, 역사적 배경, 관객의 수용 등) 너머 존재하는 방식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 작품이 여러 시대에 걸쳐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맥락 너머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은 모든 역사적 지평과 해석적 지평, 즉 모든 끌림의 체제에서 영구적으로 벗어나 있으며 모든 종류의 방식으로 자체를 수정하는 새로운 끌림의 체제 속으로 빠져든다. 예술 작품은 루크레티우스적 클리나멘(clinamen), 즉 이탈(swerve)의 예로서 이탈을 산출하는 자체 능력은 소진되지 않는다. [...]

 

예술 작품은 물질적 존재자이기 때문에 모든 지평을 넘어서는 것이 가능하다. [...] 예술 작품은 지각이나 정동이나 감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 기관들에 대한 의존성으로부터 해방되어 이제는 그 자체로 자율적인 물질적 존재자가 되어버린 지각이나 정동이나 감각을 만들어낸다. 이런 정동의 다발들은 그저 한 사람의 감각 기관을 통한 경험이 아니라 세계 저쪽에 문자 그대로 존재하는 사물들이다.

 

둘째, 나는 예술 작품이란 해석학적이라기보다 기계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 나는 예술 작품이란 극장이 아니라 공장 또는 기계라고 말하고 싶다. 예술 작품은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차이점들을 생산하는 힘이다. 그것은 실재적 행위자이다. 예술 작품은 리얼리즘의 전통에서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내가 프루스트를 읽으면, 다양한 감정 상태에 관한 그의 정교한 논의는 내가 전에는 전혀 가져본 적이 없던 새로운 정동 형식들을 나의 내면에 실제로 만들어내는 힘을 갖고 있다. [...] 그러므로 예술 작품은 그것을 만들어낸 예술가[...]뿐 아니라 그 작품과 만나는 독자들을 변환시키는 공장이다. 예술 작품은 전 세계에 걸쳐 순환하며 그것과 만나는 사람들과 사물들을 변환시키는 차이 엔진(difference engine)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는 게르니카의 폭격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폭격 사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그것을 변환시키는 동시에 도처에 존재하는 죄없는 사람들의 도살에 대한 정동을 만들어낸다.

[...]

마지막으로, 예술 작품은 직접 겪은 육화된 경험으로부터 정동과 감각, 지각들을 해방시켜 우리 자신들 너머에 존재하는 비인간적 세계와 다른 인간적 세계들을 우리에게 개방한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현상학은 우리가 육화된 경험 속에서 세계와 마주치는 방식을 정교하게 분석했다. 그런데 예술에는 대단히 반현상론적인 것이 있다. 인상파 화가들은 인간이 지각하는 세계가 아니라 순수한 빛의 세계 또는 리처드 부스비(Richard Boothby)가 <<철학자로서의 프로이트(Freud as Philosopher)>>에서 "경향 장(dispositional field)"으로 언급한 것을 묘사한다[...]. 그것은 어떤 인간도 결코 지작하거나 직접 겪어본 적이 없는 발광하는 세계, 빛의 꽃이다. 그것은 인간의 어떤 감각이나 지향성 너머 존재하는 양자 또는 광자들의 세계이다. <<시네마 I>>에서 들뢰즈는 카메라가 육화된 인간적 응시의 일인칭 시점에서 이미지들을 어떻게 해방시키는지에 관해 말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시작 부분에서는 어떤 인간도 결코 살 수 없었을 폭포의 경치를 보여준다. [...] <<마이크로코스모스(Microcosmos)>>에서 우리는 곤충들의 작은 세계 또는 잔디밭 속의 풍부한 정글과 나뭇잎 위의 이슬 한 방울 속에 현존하는 우주들에 내려가게 된다. [...]"

――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