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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딜라드: 오늘의 인용-우리는 목격자

 

 

- 아래 글은 애니 딜라드(Annie Dillard)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명상" 에세이집 <<돌에게 말하는 법 가르치기>>(김선형 역, 민음사, 2004)에 실린 <돌에게 말하는 법 가르치기>에서 일부(pp. 118―121)을 옮겨 놓은 것이다.

 

 

"산들은 거대한 바위로 된 종(鍾)이다. 그들은 수녀들처럼 서로 부딪치며 짤랑거린다. 누가 별들에게 쉿, 하며 조용히 시켰을까? 팔로마 천문대의 헤일 망원경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은하계만 해도 일만 개나 된다. 이들 사이에서는 별들의 충돌도 물론 일어난다. 수십억 개의 별들이 서로 스치지도 않고, 움직이기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늘 그렇듯 무관심하게, 숨을 죽인 채 체로 걸러진다. 바다는 목쉰 소리로 속삭이며 무언가를 말하고 또 말한다. 나는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하느님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시리라.

 

그러다 보면 어느내 숲에 대고, 바다에 대고, 산들에게, 세계를 향해 말하고 있게 된다. 이제 나는 준비가 되었다. 이제 나는 말하기를 그만두고 전적으로 듣기만 하련다. 자신을 텅 비우고 귀를 기울인 채, 기다리는 거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면 소리가 들린다. 아무것도 없는 소리.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그것들, 피조물들뿐이라는 것. 신중하게, 성장하거나 기다리거나, 흔들리거나, 비를 맞고 있거나 비를 내리고 있거나, 간직하고 있거나, 밀물처럼 밀려오거나 썰물처럼 빠지거나, 서 있거나 펼쳐져 있는 그 창조주의 피조물들. 팽팽한 긴장으로, 콧노래로, 사방에서 똑같이 입 모아 합창으로 울려 퍼지는 그 단 하나의 음(音)으로 세계의 언어가 느껴진다. 바로 이거다. 이 콧노래가 바로 침묵이다. 자연은 정말로 작은 소리를 내고 있다. 오로지 이 소리. 새들과 곤충들. 초원의 늪과 강과 돌과 산과 구름들. 모두 이 소리를 낸다. 모두 이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 침묵. 이 억제에는 떨림이 있다. 마치 누군가가 세계의 목을 죄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기다려보라. 평생이라는 긴 시간 동안 듣는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얼음은 얼어 부풀었다가, 다시 녹아내리지만, 오로지 그 단 하나의 음만 지속된다. 긴장, 아니면 긴장의 부재는 참기 힘들다. 침묵은 사실 억제가 아니다. 아니 그게 전부다.

 

우리는 목격자로 이곳에 있다. 우리한테 필요도 없는 말없는 물질들과는 바로보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 래리가 돌맹이한테 말을 가르치는 그날까지, 하느님이 마음을 돌리시는 그날까지, 아니면 이교도의 하느님들이 언덕 위의 덤불숲으로 슬쩍 다시 돌아오는 날까지, 이 비인간적인 존재들의 행렬을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다. 우리는 행성의 무대 위에 우리가 연출한 연극을 올릴 수도 있다. 평원 위에 우리의 도시를 짓고, 강물에 우리의 댐을 건설하고, 지표면의 흙에 식물을 심고. 하지만 우리의 의미 있는 행위들로 이 땅을 다 뒤덮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노래하는 새들을 이용해 무언가를 할 수 없다. 우리는 노래하는 새들을 잡아먹을 수도 없고, 친구가 될 수도 없고, 새들을 설득해서 모기를 더 많이 잡아먹거나 잡초 씨를 좀 덜 뿌리고 다니게 만들 수도 없다. 우리는 그저 지켜볼 수 있을 뿐이다. 뭐가 되었건 말이다. 우리가 이곳에 살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그저 숲 속에서 곤두박질히는 새들에 불과했으리라. 우리가 이곳에 없었다면, 계절의 변화 같은 결정적인 사건들은 우리가 애써 모아 부여한 희미한 의미마저 없이 지나치리라. 쇼는 텅 빈 객석을 향해 공연될 것이다. 낮에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그래서 우리가 이곳을 거니는 것이다. 사물들을 지켜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갈라파고스 군도로 향했던 이유다.

 

이 모든 사실은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더 명확해졌다. 갈라파고스 군도는 이곳에서는 그저 평원에 불과하다. 그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바다 위로 불쑥 솟아 올라와 있고, 몇몇 식물들이 불어와 서식하게 되었으며, 표류해 온 동물들이 기괴한 형태로 진화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동식물들은(뭐가 뭔지는 잘 몰라도) 진화한 형태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진화의 양상을 보고 그 의미를 파악하려 애쓸 수 있다. 갈라파고스 군도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실험실이다. 인간의 문화나 역사가 거의 얽혀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황량한 화산암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눈앞에 거침없이 펼져진다. 누가 보건 말건 상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