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클리퍼드 코너: 인터뷰-민중과학사

 

- 아래 글은 <<민중과학사: 광부, 산파, 그리고 "하층 기계공"(A People's History of Science: Miners, Midwives, and "Low Mechanicks")>>(2005)의 저자인 클리퍼드 코너(Clifford Conner)가 2006년에 록펠러 대학교 공동체의 소식지 <내츄럴 셀렉션스(Natural Selections)>과 가진 인터뷰를 옮긴 것이다.

 

―――――――――――――――

 

민중과학사: 클리퍼드 코너와의 인터뷰

 

현재 진행 중인 과학/사회 관계를 탐구하는 연재에서, 우리는 미국에서 과학과 시민사회 사이의 불화의 발전에 대한 무시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명의 과학 지도자 해럴드 바머스(Harold Varmus)와 폴 너스(Paul Nurse)는 과학적 노력에 가해지는 새로운 위협에 대한 더 폭넓은 의식을 위해 강력하게 싸워 왔다. <<공화당의 과학전쟁(The Republican War on Science)>>[국내에서는 <<과학전쟁: 정치는 과학을 어떻게 유린하는가>>로 번역 출판됨]의 저자인 크리스 무니(Chris Mooney)는 현대 보수주의자들에 의한 전례 없는 과학 남용을 보도함으로써 그런 논증을 확장했다. 우리는 이런 위협이 사회에 대한 과학의 유익함뿐 아니라 우리가 향유하는 계몽 문화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논객들은 이 위협에 대해 과학의 다차원적 민주화로서 서술될 수 있는 대응조치를 제안했다. 한 수준은 과학과 대중 사이의 연결의 심화다. 너스 박사는 최근의 의견란에서 "과학과 과학에 의해 제기되는 쟁점들에 관한 대중과의 더 나은 대화가 과학과 사회 사이의 좋은 관계에 근본적이다"라고 진술했다. 하나의 실제적 해결책으로서 우리는 또 하나의 참여 메커니즘인 유럽의 "사이언스 숍" 기획을 보도했다.

 

현재 상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는 산타야나(Santayana)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민중사: 광부, 산파, 그리고 "하층 기계공">>의 저자 클리퍼드 코너와 인터뷰를 가졌다.

 

NS: 왜 지금 이 책입니까?

CC: 제가 그 책을 적은 동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사를 이해하는 방식에 무언가 빠진 것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원 시절부터 저 바깥에 일반 독자들에 이르지 않는 과학사에 관한 많은 정보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책의 저술 목적은 이 정보를 취합하여 그것을 일반 대중에게 흥미로운 것으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NS: 과학에 대한 당신의 정의는 무엇이고, 왜 그것을 사용하십니까?

CC: 이것은 논쟁적인 질문입니다. 저는 제가 가능한 가장 간단한 정의라고 여기는 것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J. D. 버날(Bernal)이 그의 멋진 다섯 권짜리 과학사 저작[국내에서는 <<과학의 역사 1~4>>로 번역 출판됨]에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에 관한 지식과 그 지식을 얻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NS: 과학의 "위인"과 민중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CC: 제 책의 서평가들 가운데 한 분이 제가 "위대한 인물" 이론을 "위대한 대중" 이론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글쎄요.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제 책의 주요한 초점은, 적어도 수만 년 인간 역사의 전 범위를 통해서 자연에 관한 지식이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개요를 제공하려고 시도했지만, 과학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16세기와 17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근대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이 거기에 있습니다. 과학혁명에 관해 씌어졌던 과거의 책들 대부분은 이론천문학과 이론물리학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그래서 코페르니쿠스, 케풀러, 갈릴레오, 그리고 뉴턴에만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은 과학적 방법의 변환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자연에 관한 지식의 중재자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대학의 엘리트 학자들이었습니다. 당신이 질문을 들고 그들에게 갔다면, 그들은 그것에 어떻게 대답하려고 했을까요? 글쎄요.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이븐 시나 또는 어떤 다른 권위자의 책을 찾아서 그 책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을 것이고, 그리고 답을 찾을 수 없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적 연역 논리를 통해 그것으로부터 답을 연역할 수 있는 어떤 일반 원리를 발견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과학혁명이 새로운 방법, 즉 경험적 방법, 실험적 방법을 제시할 때까지의 과학의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지적하려고 하는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학자들이 아니라 직공들의 작업장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인식했던 소수의 학자들이 있었는데, 특히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랬습니다. 직공들의 작업장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인지했던 다른 사람들―윌리엄 길버트, 로버트 보일, 갈릴레오―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배우러 그곳에 갔습니다. 그것이 과학혁명, 즉 지금 전 세계가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변환시킨 사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NS: 그 당시의 장인과 직공의 지식을 전유하고 체계화했던 엘리트와 오늘날 기술자, 대학원생, 박사후 연구원의 작업을 전유하고 그리고/또는 그것에 대한 영예를 챙기는 연구실 책임자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주장이 있기도 합니다. 그것에 대해 논평하실 마음은 없으신지요?

CC: 있습니다. 저는 제 책에서 그것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사례를 들었습니다. 로버트 보일은 위대한 과학 영웅들 가운데 일인으로 간주됩니다만, 당신이 그것에 관해 조사하시면, 보일이 공로자로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그가 이른바 조수로 고용했던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점이 전적으로 명료할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로버트 후크처럼 그들 자신이 과학사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그들은 보일에 종속되었는데, 그는 귀족이었고 매우 부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그들은 마땅한 영예를 얻지 못했고, 대부분은 아직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언급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보일의 법칙조차도 그가 고용했던 다른 사람들이 수행했던 실험으로 결정되었고, 그들이 그것을 표현했을 가능성도 꽤 높지만, 그것을 보일의 법칙으로 부른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 시절에는, 특히 다른 사람들이 읽고 과학에 관한 진리라고 간주할 무언가를 출판하기 위해서는 신사계급이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 연구실 책임자에게도 비슷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보일의 시대만큼 완전히 의식적으로 행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사정이 전적으로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결국 그렇게 됩니다.

 

NS: 우리는 록펠러 대학에 고용되는 동안 우리가 만들어낸 어떤 지적 재산권도 그 대학이 소유한다고 씌어져 있는 계약서에 서명합니다. 현재 연방 자금의 지원을 받는 미국 대학의 연구에 대해 요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사정은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CC: 맞습니다. 아마 그것에 관해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결국은 똑같아집니다.

 

NS: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는 어떤 모습입니까?

CC: 제 생각에, 제가 강조하고 싶은 주요한 점은 과학에는 이론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다른 점은, 과학과 기술 사이의 관계가 우리의 현대 경험이 우리로 하여금 믿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현대 경험은 과학이 기술에 선행한다고 가르칩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연구실에서 이론적 작업을 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기술을 창안하는 데 적용되는 이론을 생각해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역사에서 꽤 새로운 사태입니다. 수만 년 동안 그 관계는 정반대였습니다. 역사적으로 그 관계는 항상 기술이 먼저였고, 그 다음에 과학이었습니다. 고전적 사례는 증기 기관입니다. 증기 기관은, 열역학 법칙을 먼저 개발한 다음에 그 법칙을 증기 기관을 만들어내는 데 적용했던 이론가들에 의해 창안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증기 기관은 직공, 수선공, 그리고 발명가, 즉 "하층계급"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과학자들이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증기 기관을 연구하기 시작했던 까닭은 그것이 경제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연구하고 분석함으로써 마침내 열역학 법칙이 공식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역사적으로 참인 관계이며, 거의 항상 과학과 기술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직공들과 수작업을 하고 실험하는 등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기술이 먼저 창안됩니다. 그 다음에 과학자들이 직공들의 산물, 즉 기술을 분석함으로써 이론과 법칙을 개발합니다. 당신은 이론만으로서의 과학사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없는데, 그것 모두가 비롯되었던 지점, 즉 기술과 장인들의 기여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NS: 그래서 당신은 그 점에 있어서 오늘날 사정이 변했다고 넌지시 말하고 있습니까?

CC: 그렇습니다. 모든 것 가운데 가장 큰 사례, 즉 맨해튼 계획을 생각해 봅시다. 그 계획에서는 실제 결과가 핵물리학의 추상적인 과학 이론들에서 개발되었습니다. 그 이론들은 20세기 중엽에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당신은 사실상 19세기 말로 되돌아갈 수 있는데, 그때 이론에 의거해서 창안되었던 기술들의 최초 실례들은 아마 전기 이론에서 개발되었던 것일 겁니다. 현대의 경험으로부터, 사람들은 그것이 과학의 기술의 본질적 관계라고, 즉 과학 이론이 선행하고 기술이 그 뒤를 좇는다고 잘못 일반화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최소한 19세기 말까지는 정반대입니다. 심지어 20세기 초에도 한 가지 좋은 사례는 비행기입니다. 비행기는 공기역학의 이론으로부터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두 명의 자전거 기계공이 이론가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일을 해내고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그 이론가들이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 시대의 물리학자들이었지만, 공기역학은 직공의 기여, 즉 비행기의 실용적 기술에 의거해 발전하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NS: 당신의 견해에 대한 이런 비판에 어떻게 응수하시겠습니까? 직공들은 기술자와 같은데,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정말 이해하지 못해서 무엇이 정말 진행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그저 손일 뿐이고, 유용한 것들을 생산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CC: 또 다시, 오늘날과 대부분의 역사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면 얼마간 정당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만약 그랬다면, 그들의 마음 속에서 진짜 진행되고 있는 일은 "나는 똑똑하다. 나는 뛰어나다. 나는 육체노동을 하는 이 사람들보다 더 훌륭하다."가 아닌가 생각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노른 대체로 정반대였습니다. 과학혁명의 시기에, 직공들은 그들이 하고 있던 일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하고 싶었던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훈련받은 지식인들―그들을 "과학자"라고 부르는 것은 약간 시대착오적입니다―은 나비, 즉 아마추어 애호가 같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거장"이라고 불렀고, 직공의 공방에 가서 지식을 과시하려고 했을 것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대상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19세기와 그 이전에는 직공들이 사정을 아는 사람이었고, 이론을 개발하려고 했던 "거장들"은 그들의 두뇌를 골라잡기 위해 바로 그곳에 갔습니다.

 

NS: 당신은 사회 엘리트들이 과학을 어떻게 권위의 원천으로 전유했고 그것을 어떻게 상업화했는지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같은 세력을 크리스 무니는 그의 책 <<공화당의 과학전쟁>>에서 반과학적이라고 규정했으며, 그들에게는 새로운 지식이 위협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이런 외관상의 모순을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습니까?

CC: 글쎄요. 기업 엘리트는 새로운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이 새로운 지식을 필요로 하는 까닭은 그들의 경제 체계가 그것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은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멈추면 쓰러집니다. 그들은 계속 성장하고, 성장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들은 새로운 생산품, 새로운 과학,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과학의 일부를 자신들의 이윤 이해관계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두려워합니다. 가장 좋은 예는 지구온난화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외관상의 모순 이상입니다. 그것은 진짜 모순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모순입니다.

 

NS: 당신은 과학의 권위의 훼손은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배권이 있다"는 것으로부터 일어난다고 주장하며, 많은 과학이 기업에 의해 실행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컨대 생명의학의 대다수 기초연구는 사실상 세금으로 대표되는 사회복지 자금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세금으로 지원되는 연구는 민중의 과학이라고 말할 것입니까?

CC: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확실히 그런 식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불행하게도, 정부는 이 점에 관해서 책임을 태만히 했고, 세금으로 지원되는 연구는 "과학-산업 복합체"의 또 하나의 측면이 되었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생명의학 연구에서는 "대형 제약회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자입니다.

 

NS: 당신은 엄청난 자금을 지원받는 과학의 시대에 보통 사람들이 여전히 발견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CC: 글쎄요. 저는 보통 사람들의 발견을 막는 경향이 있는 것―전문화의 대단한 증가, 오늘날 연구를 하는 데 드는 엄청난 액수의 연구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당신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입니다. 저는 과학의 국외자가 과학에 중대한 기여를 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번역: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