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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인터뷰-궁극의 리스트

 

- 아래의 글은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가 독일의 <슈피겔> 지와 가진 인터뷰 내용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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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목록들을 좋아한다'

('We Like Lists Because We Don't Want to Die')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새로운 전시회를 관리하고 있는 이탈리아 소설가이자 기호학자인 움베르트 에코는 <스피겔> 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목록들이 문화의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우리가 죽음에 관하여 생각하지 않고자 노력하는 방식들, 그리고 구글이 왜 젊은이들에게 위험한지 이야기한다.

 

슈피겔: 에코씨, 당신은 세계의 위대한 학자들 가운데 한 분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현재 세계의 가장 중요한 박물관들 가운데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에서 새로운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전시회의 주제들은 약간 평범한 듯 들립니다. 목록들의 본질적인 특질, 자신들의 작품들에서 사물들을 열거하는 시인들, 그리고 자신들의 회화에서 사물들을 모으는 화가들이 그것들입니다. 당신은 왜 이런 주제들을 선택했습니까?

 

움베르토 에코: 목록은 문화의 기원입니다. 그것은 예술과 문학의 역사의 일부입니다. 문화는 무엇을 원합니까? 무한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질서를 창조하기를 원하는데,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흔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무한을 대면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파악하려고 시도합니까? 목록들을 통해서, 카탈로그들을 통해서, 박물관의 수집품들을 통해서, 그리고 백과사전들과 사전들을 통해서입니다. 돈 지오반니가 얼마나 많은 여인들과 잤는지 세는 것에는 어떤 매혹적인 것이 있는데, 최소한 모차르트의 리브레토 작가인 로렌초 다 폰테에 의하면, 그것은 2,063명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것들 자체로 문화적 성취이기도 한 전적으로 실용적인 목록들―쇼핑 목록, 유언장, 메뉴―도 있습니다.

 

슈피겔: 교양인은 혼돈이 지배적인 장소들에 질서를 부과할 길을 찾고 있는 관리인으로 이해되어야 합니까?

 

에코: 목록은 문화를 파괴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문화를 창조합니다. 문화사를 들여다 볼 때마다 당신은 목록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실상, 현기증이 나게 하는 일련의 목록들이 있습니다. 성자들의 목록, 군대들과 약용식물들의 목록, 또는 보물들과 책 제목들의 목록이 그것들입니다. 16세기의 자연 수집품들에 관해 생각합시다. 그건 그렇고, 제 소설들은 목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슈피겔: 회계사들도 목록들을 작성합니다만, 당신은 호머, 제임스 조이스, 그리고 토마스 만의 작품들에서도 그것들을 발견합니다.

 

에코: 그렇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은 회계사들이 아닙니다. "율리시즈"에서 제임스 조이스는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이 어떻게 자신의 서랍들을 여는지 묘사하고, 그가 그것들 속에서 발견하는 모든 사물들을 서술합니다. 저는 이것을 하나의 문학적 목록으로 간주하며, 그것은 블룸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합니다. 또는, 예를 들면, 호머를 생각합시다. "일리어드"에서 그는 그리스군의 규모에 대한 인상을 전달하려고 노력합니다. 처음에 그는 직유법을 사용합니다. "마치 어떤 거대한 산불이 산 정상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고 그것의 불빛이 멀리서 보일 때처럼, 과연 그렇게, 그들이 행진할 때, 그들의 갑옷의 섬광이 천공 속으로 번쩍였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올바른 비유를 찾아낼 수 없고, 그래서 그는 뮤즈들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많은 것들의 이름, 즉 많은 장군들과 그들의 함선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생각을 떠올립니다.

 

슈피겔: 그런데, 그렇게 할 때, 그는 시에서 벗어나지 않습니까?

 

에코: 처음에, 우리는 목록이 원시적인 것이고, 그리고 우주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전혀 없었고, 그래서 명명할 수 있었던 특질들을 나열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던 매우 초기의 문화들의 전형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화사에서, 목록은 되풀이해서 널리 퍼졌습니다. 그것은 결코 원시적인 문화들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중세 시대에는 매우 명료한 우주상이 존재했고, 목록들이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에는 천문학에 의거한 새로운 세계관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목록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탈근대 시대에도 목록은 확실히 만연합니다. 그것은 저항할 수 없는 마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슈피겔: 그런데 호머가 자신이 전사들과 그들의 함선들 전부를 결코 명명할 수 없다는 점을 안다면 왜 그것들 모두를 나열합니까?

 

에코: 호머의 작업은 되풀이해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상투적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무한한 우주, 끝없는 별들, 그리고 거듭되는 은하들에 매혹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늘을 바라볼 때 어떻게 느낄까요?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서술하기에 충분한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하늘을 묘사하는 것을 결코 그만두지 않는데, 자신들이 보는 것을 나열할 따름입니다. 연인들도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그들은 언어의 결핍, 자신들의 느낌을 표현할 단어들의 부재를 경험합니다. 그런데 연인들은 어쨌든 표현하려고 노력하기를 그만둡니까? 그들은 목록들을 만들어냅니다. 당신의 눈은 매우 아릅답고, 당신의 입도 아름다우며, 당신의 쇄골은... 더 자세히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슈피겔: 왜 우리들은 현실적으로 완결될 수 없는 것들을 완전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할까요?

 

에코: 우리는 하나의 한계, 매우 낙담시키는 굴욕적인 한계가 있는데, 죽음이 그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한계가 없고, 그래서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죽음에 관한 사유들을 회피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목록들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을 각자 나름대로 선호하는 것이 있다'

 

슈피겔: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고 있는 당신의 전시회에서는 정물화와 같은 시각예술의 작품들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회화들은 프레임, 즉 한계가 있으며, 우연히 묘사하는 것 이상을 묘사할 수 없습니다.

 

에코: 반면에, 우리가 그것들을 매우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들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그림을 관조하고 있는 사람은 프레임을 해체하여 그 그림의 왼쪽과 오른쪽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다. 이런 종류의 회화는 정말 목록, 즉 무한을 오려낸 것과 같습니다.

 

슈피겔: 이런 목록들과 수집품들이 당신에게 왜 그렇게 특별히 중요합니까?

 

에코: 루브르 박물관의 직원들이 제게 접근하여 그곳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고 싶지 않는지 물었으며, 그리고 그들은 제게 행사 계획을 세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물관에서 작업한다는 바로 그 생각이 제게 매력적이었습니다. 최근에 저는 홀로 그곳에 있었는데, 저는 댄 브라운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느낌은 으스스한 동시에 경이로웠습니다. 저는 즉시 그 전시회는 목록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 주제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는가? 저는 정말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축구나 소아성애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목록들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선호하는 것이 있습니다.

 

슈피겔: 그런데, 당신은 자신의 정념을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

 

에코: ...그러나 제 자신에 관해서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입니다. 음,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이래로 줄곧, 우리는 사물들을 자체의 본질에 의거하여 정의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인간의 정의? 의도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동물. 그런데, 박물학자들이 오리너구리의 정의를 고안하는 데 80년이 걸렸습니다. 그들은 이 동물의 본질을 서술하는 것이 끝없이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물 속과 땅에서 살고, 알을 낳으며, 그럼에도 그것은 포유류입니다. 그렇다면 그 정의는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그것은 목록, 특질들의 목록이었습니다.

 

슈피겔: 더 일반적인 동물의 경우에는 정의가 확실히 가능할 것입니다.

 

에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그 동물을 흥미롭게 만들까요? 과학이 포식자로 서술하는 호랑이에 관해 생각합시다. 엄마는 자신의 아이에게 호랑이를 어떻게 서술할까요? 아마도 특질들의 목록을 사용할 것입니다. 호랑이는 크고, 고양이 같고, 노랗고, 줄무늬가 있으며, 강하다. 화학자만이 물을 H2O라고 언급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액체이고 투명하다고, 우리가 그것을 마신다고, 그리고 우리가 그것으로 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마침내 당신은 제가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목록은 우리로 하여금 본질적 정의들을 의문시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선진화된 세련된 사회의 표식입니다. 본질적 정의는 목록에 비하면 원시적입니다.

 

슈피겔: 당신은 우리가 사물들을 정의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고, 그 대신에 진보란 사물들을 세는 것과 나열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에코: 그것이 정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는 목록들의 시대였습니다. 갑자기, 이전 시대에 만들어졌었던 모든 스콜라철학적 정의들이 더 이상 타당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갈릴레오는 달에 관한 새로운 세부사항들을 서술했습니다. 그리고, 예술에서는, 기성의 정의들이 문자 그대로 파괴되었고, 주제들의 범위가 엄청나게 확장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네덜란드 바로크 시대의 회화들을 목록으로 여기는데, 진기한 것들을 담은 호화로운 상자들의 영상들과 모든 과일들이 있는 정물화들 말입니다. 목록들은 무정부주의적일 수 있습니다.

 

슈피겔: 그러나 또한 당신은 목록들이 질서를 확립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질서와 무정부 상태 둘 다 적용됩니까? 그것은 인터넷을, 그리고 검색 엔진 구글이 만들어내는 목록들을 당신에게 완벽한 것으로 만들 것입니다.

 

에코: 그렇습니다. 구글의 경우에는, 두 가지 것이 수렴합니다. 구글은 목록을 만들지만, 제가 구글이 생성한 제 목록을 바라볼 때, 그것은 이미 바뀌었습니다. 이런 목록들은 위험할 수 있는데, 다른 식으로 자신의 지식을 획득한 저와 같은 노인들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말입니다. 그들에게 구글은 비극입니다. 학교는 구별하는 방법에 관한 고급 기술을 가르쳐야 합니다.

 

슈피겔: 당신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좋고 나쁨의 차이에 관해 교육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에코: 교육은 르네상스 시대의 공방에서 행해지던 방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곳에서는, 장인들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림이 좋은 이유를 이론적 견지에서 반드시 설명할 수는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더 실용적인 방식으로 실행했습니다. 자 보아라, 이것이 너의 손가락의 모습일 수 있고, 그리고 이것이 손가락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이다. 자 보아라, 이것이 색상들의 좋은 혼합이다. 동일한 접근방식이 학교에서 인터넷을 다룰 때 사용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독일사이든 개미들의 생활이든 오래된 주제를 선택하라. 25개의 상이한 웹페이지를 검색하고, 그것들을 비교함으로써 어느 것이 좋은 정보를 담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하라." 열 페이지가 같은 것을 서술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곳에 수록된 정보가 옳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몇몇 사이트들이 나머지 다른 사이트들의 오류를 복사하고 있을 뿐이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슈피겔: 당신 자신은 책으로 작업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고, 당신은 30,000권의 장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록이나 카탈로그가 없다면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코: 지금쯤은 사실상 50,000권에 이르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제 비서가 그것들을 분류하기를 원했을 때, 저는 그녀에게 그러지 말라고 요청했습니다. 제 관심사는 끊임없이 변하고, 그래서 제 장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자신의 관심사를 끊임없이 바꾼다면, 당신의 장서는 당신에 관해 다른 무언가를 끊임없이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밖에, 카탈로그가 없다면, 저는 제 책들을 기억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길이 70미터의 문학서적 복도가 있습니다. 저는 하루에 여러 번 그 복도를 거니는데, 그럴 때 제 느낌은 좋습니다. 문화는 나폴레옹이 언제 죽었는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는 이 분 내에 제가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저는 인터넷에서 이런 종류의 정보를 즉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렸듯이, 당신은 인터넷으로 결코 알지 못합니다.

 

슈피겔: 당신은 새 책 <<궁극의 리스트>>에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트르의 멋진 목록을 싣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물들과 사랑하지 않는 사물들을 나열합니다. 그는 샐러드, 계피, 치즈, 그리고 향신료를 사랑합니다. 그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긴 바지를 입은 여인들, 게르마늄, 딸기, 그리고 하프시코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에코: 그런 질문에 대답한다면 저는 바보일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속박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저는 13세에 스탕달에 매혹되었고, 15세에는 토마스 만에 매혹되었으며, 16세에는 쇼팽을 사랑했습니다. 그 다음에 저는 나머지 것들을 아느라고 평생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쇼팽이 다시 한 번 최고의 자리에 있습니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사물들과 상호작용한다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바보입니다.

 

번역: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