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폴 크루첸: 오피니언-인류세를 살아가기

 

- 아래의 글은 우리가  "자연 생태계들이 묻어 들어가 있는 인공 체계들" 속에서 살고 있는 현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로 명명한 대기화학자 폴 크루첸(Paul Crutzen)이 독일인 환경 기자 크리스티안 슈베겔(Christian Schwagerl)과 함께 <<예일 엔바이런먼트 360(Yale Environment 360)>>에 기고한 오피니언을 옮긴 것이다(2011년 1월 24일에 게재됨).

 

―――――――――――――――

 

인류세를 살아가기: 새로운 지구적 에토스를 향하여

 

10년 전에, 노벨상 수상 과학자인 폴 크루첸은 우리가 "인류세(Anthropocene)"―인간이 지구를 바꾸어 버린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살고 있다고 처음으로 말했다. 이제, <<예일 엔바이런먼트 360>>에 기고한 글에서, 크루첸과 한 명의 공저자는 이 술어를 채택하는 것이 왜 지구의 관리인으로서의 우리 역할에 대한 지각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설명한다.

 

 

우리가 여전히 공식적으로 충적세(Holocene)라고 불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인류세―지구의 생물학적, 화학적, 그리고 지질학적 과정들에 대한 인간 지배―는 이미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십 년도 더 전에 우리 가운데 한 사람에 의해 제시된 개명이 벌써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라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 지구의 역사에서 대단히 장기적인 기간을 명명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과학 조직, 즉 국제 층서 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가 이런 개명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는 여전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이런 새로운 인류세 시대에 빠른 속도로 인간화되고 있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배우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수천 년 동안, 인간들은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힘에 맞서는 반란자로서 행동했다. 그렇지만, 20세기에는, 신기술, 화석연료, 그리고 빠른 인구 성장이 우리 자신의 힘의 "거대한 가속화"를 낳았다. 서투르지만, 우리는 기후에서 DNA에 이르기까지 자연 영역을 통제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은 지구를 변화시키는 지배적인 힘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유지된 종교적 및 철학적 관념―지구 행성의 지배자로서의 인간―이 순전한 현실이 되었다. 현재 우리가 행하는 바는 이미 3000년 또는 심지어 50000년의 지구에 영향을 미친다.

 

미래 수천 년 동안의 기후를 바꾸는 것은 그저 하나의 측면일 뿐이다. 우리는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매장된 석탄에 접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며, 산호초를 산화시킴으로써 지구의 생물학과 지질학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종들을 멸종시키는 한편, 유전공학을 통해, 그리고 곧 합성생물학을 통해 새로운 생명 형태들을 만들어낸다.

 

일 세기 안에 인구는 100억 명에 이를 것이다. 우리는 1억 명 이상이 거주하는 "메가 지역들"을 비롯하여 인공 생태계들을 확산시키며, 인간의 지나친 사용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풍경들―질적으로 저하된 농경지, 산업 쓰레기, 그리고 휴양지 풍경―이 지구 지표면의 특징이 된다. 우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합성 화학물질들과 영구적인 쓰레기를 지구의 대사에 주입한다. 야생이 여전히 남아있는 경우에, 그것은 흔히 착취가 아직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보존 관리는 야생 동물들을 새로운 형태의 애완 동물들로 바꾼다.

 

지질학자 얼 엘리스(Erle Ellis)와 나빈 라만쿠티(Navin Ramankutty)는, 우리는 더 이상 자연 생태계들을 교란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대신에, 이제 우리는 "자연 생태계들이 묻어 들어가 있는 인공 체계들" 속에서 살고 있다. 자연과 문화 사이에 오랫동안 유지된 장벽들이 산산조각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에 대항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자연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이다.

 

이런 거대한 변화를 지배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각하는 방식과 세계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을 바꾸어야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여전히 우리가 충적세―마지막 빙하시대가 끝난 12,000년 전 쯤에 시작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배운다. 그러나 우리가 인류세에 살고 있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개명은 인간의 오만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표식을 나타내기보다 지구의 관리인으로서의 인류의 책임이 막대하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지성과 창의성의 엄청난 힘과 그것들이 미래의 구성에 대해 제공하는 기회들을 강조할 것이다.

 

1911년 이래로 기술과 문화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면, 2111년 경에는 거의 무엇이나 가능한 듯 보인다. 우리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우리의 에너지 체계와 생산 체계를 낭비적인 것에서 재생가능한 것으로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생명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으로 전환시키는 열쇠를 쥐고 있다고 확신한다. 인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의식이 어떤 절실하게 필요한 생태낙관주의를 우리 사회에 주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세의 도전들에 부응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세 가지 고려할 방법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 우리는 현재의 과소비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게 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경제적 "성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의존하는 생명의 연결망에 대해서는 너무나 흔히 대공황에 해당한다. "지구는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충분하지만, 모든 사람의 탐욕을 충족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간디는 지적했다. 90억 명의 사람들에게 현재 서양식 생활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지구가 더 필요하다. 전 세계 국가들이 "미국식 생활양식"을 성취하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서양의 시민들은 그것을 재규정해야 하며, 그리고 겸손하고, 재생가능하고, 사려 깊고, 그리고 덜 물질적인 생활양식을 선도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산업적으로 생산되는 고기의 소비를 줄이는 것과 개인용 차량들을 공공 교통으로 바꾸는 것을 포함한다.

 

둘째, 우리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현재 투자를 훨씬 더 늘려야 한다. 우리가 오늘날의 낭비적인 화석연료 기반 하부구조를 인공 광합성에서 융합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태양 에너지로 영위되는 체계로 교체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곤란한 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심화될 것이다. "쓰레기"를 과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생물적응형 기술들이 필요한데, 생분해성 자동차와 장치들이 포함된다. 빈자들의 욕구에 대한 맞춤형 혁신들이 필요한데, 예를 들면, 기후변화에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식물 변종들과 소농들을 위한 실용적인 농경 정보 및 시장 정보가 담긴 견고한 아이패드들이 있다. 지구적 농업은, 결과적으로 농장들이 자연 서식지의 건강으로부터 이익을 얻도록, 하이테크적인 동시에 유기적 농업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비료의 핵심 원소이고 그래서 식량 안보의 핵심 원소인 인 같은 물질들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자원을 둘러싼 갈등을 막고 지속가능한 "생물경제"를 향하여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폴로 계획을 축소하는 협동적 임무가 필요할 것이다. 2009년에 전 세계적인 군사 비용은 15조 310억 달러에 이르렀는데, 2000년에 비해 49% 증가했다. 우리는 "녹색 안보 체계"―기후, 토양, 그리고 생물다양성의 촘촘한 연결망―를 이해하고, 관리하고, 그리고 복구하는 데 최소한 그만큼 투자해야 한다.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를 안전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부정적 배출"을 향하여 움직일 필요가 있는데, 예를 들면,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로 발전소의 잔류물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최악의 시나리오들에 대해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구공학적 역량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산업적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숲을 보호하는 것에 덧붙여, 현재는 착취적인 농경 행위에 의해 고갈되어 있는, 비옥한 토양 속에 거대한 탄소 비축을 유지하는 데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생물다양성을 위해서는 파괴된 바다 속의 녹색 잔존자들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인데, 우리는 유기체들과 유전자들이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자유롭게 흘러 생물학적 기능들을 유지시키는 "녹색 하부구조"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세계 유기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유지하는 데 우리 문화를 적응시켜야 한다. 이 어구는 비의적인 가이아 스승이 아니라 대략 200년 전에 저명한 독일 과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에 의해 만들어졌다. 훔볼트는 우리가 우리의 삶이 자연의 풍요로움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하기를 원했고, 우리가 이 세계 유기체를 희생시키지 않는 채 그것의 일부로서 우리의 역량을 키울 것이라고 희망했다. 그의 메시지는 우리가 우리 임무를 성전에서 관리로 바꾸어야 하고, 그래서 이전에 자연적이었던 세계를 노예화하는 대신에 자연의 행로를 공생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행동은 제대로 기능하고 번성하는 인류세의 목표들을 무시했다. 그러나 2010년 말에 두 개의 국제연합 환경 정상회의가 진보를 위한 약간의 희망을 제공했다. 8월에 일본 나고야에서 193개 정부가 전례 없는 규모의 지구 생태계를 보호하기와 2020년까지 생태학적으로 유해한 보조금을 폐지하기를 포함하는 지구 보존을 위한 전략적 계획에 동의했다. 그리고 12월에 칸쿤에서는 국가들이 지구의 온도가 산업화 이전의 평균 온도 수준보다 2도 이상 올라가서는 안된다는 점에 동의했다. 이 수준은 이미 매우 위험한데, 그것은 극지방의 더 높은 온도 상승을 의미하고, 그래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배출할 수 있는 영구 동토층 지역의 해동 확률의 상승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소한, 칸쿤과 나고야는 환경 정책에 대한 막다른 골목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여러 해의 진퇴양난과 악명 높은 코펜하겐 붕괴 후에 이제 최소한 인류가 함께 행동할 수 있다는 희망의 기미가 있다. 그렇지만 현재와 2020년 사이에는 종이 위의 약속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2200년 또는 2500년의 우리 후손들을 생각하자. 그들은 우리를 지구를 재주유를 위해 잠깐 머무르는 곳에 불과한 것처럼 다룬 외계인들에 비유하거나, 또는 더 나쁘게도, 그들 자신의 집을 마구 파헤친 야만인들로 규정할지도 모른다. 인류세에 부응하여 살기는 지구의 생물학적 부를 고갈시키는 대신에 그것과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시대에는 자연이 우리라는 점을 기억하자.

 

번역: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