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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랜드 보어: 학자 유형학-작은 연못 속 큰 물고기

 

- 아래의 글은 롤랜드 보어(Roland Boer)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 "학자 유형학(typology of scholars)"에서 여섯 번째 유형인 '작은 연못 속 큰 물고기(Big Fish in a Small Pond)' 항목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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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유형학: 작은 연못 속 큰 물고기

 

이 유형은 매력적인 강단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에게 대단한 유혹인데, 그것은 명백히 누군가가 자신의 작은 집단에서 거물일 수 있는 상황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여성주의, 또는 문화비평,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전문가가 되었지만, 자신이 진정한 '권위자'인 신학 안에 순전히 머무르는 신학자일지도 모른다. 신은 여러분이 진정한 젠더 비평가들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정신분석가들과 함께 실제로 얼마간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명한다. 그것은 아이슬랜드의 테러리즘, 몽고의 천막식 집, 또는 털코 개구리의 유일한 '전문가'일지도 모르는데, 다른 모든 사람이 어느 것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는 절대적으로 자유분방하게 어떤 화제에 관해서도 장황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말하자면, 여러분은 '호기'를 만난 사람들에게서 이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큰 학술회의이거나, 또는 실제로 무언가를 알고 있는 학자들의 새로운 더 큰 집단이거나, 또는 참신한 얼굴의 숭배하는 학생들의 집단을 조금 넘어서는 상황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이야기는 흥미로워지는데, 큰 무대를 방문한 우리의 박식한 학자는, 전 세계에서 작성된 수백 편의 논문들이 모두 무가치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그래서 다시는 참가할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또는 그들은 너무 전통적이고 나는 그들 모두에게 너무나 급진적일 뿐이어서 나는 그 모임에 빠질 것이다. 또는 그들은 진정한, 학술적인, '과학적인' '주해'를 행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학자들이 아니다.

 

그 대신에, 명백히 큰 그 물고기는 정체된 작은 연못으로 되돌아와서 연못의 점액질로 살찌게 되고 장님들 가운데서 외눈박이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인정받는 권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