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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카우프만: 에세이-어떤 물리학적 세계관의 종말

 

- 아래 글은 복잡계 이론가인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에세이 <<어떤 물리학적 세계관의 종말: 헤라클레이토스와 생명의 분기점(The End of a Physics Worldview: Heraclitus and the Watershed of Life)>>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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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리학적 세계관의 종말: 헤라클레이토스와 생명의 분기점

  

대략 2,700년 전인 서양철학과 과학의 새벽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는 거품을 내며 부글거린다(the world bubbles forth)"고 선언했다. 이 사유의 단편에는 자연마술, 즉 근대물리학의 수반적 법칙들(entailing laws)을 넘어서는 창조성이 있다. 나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생물권 및 인간 생명의 진화와 관련하여 옳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수반적 법칙을 넘어서 우리가 함께 창조하는 자연마술 속에서 살아간다.

 

일찌기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아이작 뉴턴으로 우리는 탈주술화되어 근대성으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옳았다. 뉴턴 이전에, 창세기에서 비롯된 서양의 전통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자연마술과 상당히 비슷하게, 세계를 창조한 신성한 행위주체성을 지닌 창조주 신도 수반적 법칙을 넘어선다고 여겼다.

 

뉴턴의 세 가지 운동 법칙, 보편 중력, 그리고 미적분학으로 우리 세계는 심대하게 바뀌었다. 당구대 위 당구공들의 초기조건과 경계조건, 당구대의 모양, 그리고 운동 법칙들을 사용하여 미분방정식 형식으로 주어진 그것들의 운동을 고려하면, 일종의 연역인 적분을 통해서 그 공들의 미래와 과거의 궤적들 전체가 산출된다. 이것은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에 의해 환원주의의 반석이 되었다. 우주의 모든 입자의 위치들과 운동량들이 주어지면, 어떤 방대한 지성은 뉴턴 법칙들을 사용하여 우주의 미래와 과거 전체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수반적 법칙들의 틀은 20세기 물리학의 두 기둥, 즉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에서도 미분방정식들과 그것들에 수반되는 적분으로 여전히 유지된다.

 

나는 우리가 생명의 분기점에서 이런 물리학적 세계관의 종점에 닿는다고 믿는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옳았다. 생명은 자연마술로 거품을 내며 부글거린다. 우리는 재주술화될 것 같고, 그래서 근대성을 넘어 매우 새로운 무언가로 나아갈 길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 에세이는 이전의 에세이에서 제시한 주장들을 요약하지만, 여러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뛰어넘어 "자연마술"과 함께 살기를 옹호하는 가장 강력한 가능한 변론을 제시한다.

 

첫째, 진화 자체는 양자역학의 완정성과 고전역학의 완전성 둘 다를 허용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함께 통일한다. 돌연변이는 흔히 무작위적이고 비결정적인 양자 사건인데, 다윈의 유전가능한 변이를 산출한다. 그런데 진화 자체는, 수렴 진화에서 나타나듯이, 무작위적이지 않다. 예를 들면, 놀랍도록 거의 동일한 문어의 카메라 눈과 척추동물의 카메라 눈은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유대목 동물들과 포유류 동물들의 수렴 진화에서 더 많은 사례들이 발견된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진화는 비결정적이고 무작위적인 양자역학적이지도 않으며 결정론적인 고전역학적이지도 않다. 생물계는 정말 "새로운" 것이다. 양자역학 하나만으로는 그리고 고전역학 하나만으로는 불완전한 듯 보인다. "모든 가능한 경로에 대한 합"이라는 파인만의 양자역학 틀에 의거하여 양자측정에 의해 진정으로 연결된, 존재론적으로 실재하는 잠재태(Res potentia)와 현실태(Res extensa)라는 전술한 가정들이 사실상 양자역학에 대한 정합적인 해석인 듯 보이고,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실재하는 잠재태를 측정되지 않은 양자 과정들에 대한 대가로 치르며, 일반상대성 이론을 포함하여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을 통일하는 듯 보인다. 측정되지 않은 양자역학의 (잠재적 X)는 일반상대성 이론을 포함하여 고전역학의 (현실적 X)를 수반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양자역학에서 일반상대성 이론을 연역할 수 없다.

 

둘째, 생물학적 진화는, 전체는 부분들을 위해 그리고 부분들에 의해 존재하고 부분들은 전체들을 위해 그리고 전체들에 의해 존재하는 칸트적 전체와 관계가 있다. 집단적으로 자기촉매적인 일련의 펩티드들은, 벤구리온 대학교의 코넨 아쉬케나지과 그가 밝힌 아홉 개의 펩티드로 이루어진 집단적으로 자기촉매적인 집합에 의해 예증되었듯이, 칸트적 전체의 분명한 일례이며, 촉매를 필요로 하는 모든 반응이 아홉 개의 펩티드 집합의 구성원들에 의한 촉매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촉매적 과업 공간(catalytic task space)"의 폐쇄성을 획득한다. 한 펩티드의 "기능"은 아홉 개의 펩티드으로 이루어진 집단적으로 자기촉매적인 집합 전체의 재생산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 수행하는 자체의 역할로 규정될 수 있다.

 

세째, 살아있는 분할 세포는 칸트적 전체이지만, 핵심적으로 중요하게도, 그것은 단순한 촉매보다 훨씬 더 넓은 과업 집합에서 과업 폐쇄성을 획득한다. 단백질들은 세포 내 특정 지점들을 향해 "이동'되고, 염색체들은 유사 분열에서 순서대로 분리되고, 세포막들은 소기관들을 형성하며, 에너지들은 변환된다.즉, 분할 세포는 어떤 폭넓은 과업 집합에서 과업 폐쇄성을 획득한다. 각 과업의 기능은 이런 칸트적 전체의 재생산에서 수행되는 기능이다. 

 

네째,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것인데, 우리는 무엇이든 어떤 객체―이를테면, 스크류드라이버―가 단독으로 또는 다른 객체들과 함께 초래하는 인과적 결과들이나 수행하는 용도들을 전부 거명할 수는 없다. 용도들의 집합은 무한하고 순서대로 늘어놓을 수 없다. 이제 그 속에서 각기 무수한 인과적 결과들을 낳는 하나 이상의 객체 또는 과정이, 우리가 예상할 수는 없지만 세포의 적응도를 향상시키고, 그래서 자연선택을 거쳐 진화하는 생물권에 접목되는 새로운 용도를 발견하는, 진화하는 세포를 고려하자. 몇몇 박테리아의 유명한 편모 운동기관은, 다윈적인 전적응(preadaptation)에 의해, 다른 박테리아에서 전적으로 다른 기능들을 수행하고 있었던 편모성 단백질들의 단편들을 활용했다.

 

다섯째, 다윈적 전적응―현재 환경에서는 아무 선택적 용도도 없는 유기체 일부의 어떤 인과적 결과가 다른 환경에서는 새로운 용도에 쓸 수 있게 되어 새로운 기능을 위해 선택된다―은 예상할 수도 없으며, 결코 그것 자체로는 적소로서 선택되지 않았던 새로운, 인접한, 비어 있는 가능한 적소도 낳는다. 그런 것들에는 물기둥에서 중립적인 부력을 낳는, 허파 물고기의 허파에서 파생된 물고기의 부레가 포함된다. 부레는 그 속에서만 살 수 있는 벌레나 박테리아의 적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물권은, 선택 없이, 그것 자체의 미래의 가능한 진화 방향들을 세우고 있는데, 그러므로 거품을 내며 부글거린다.

 

여섯째, 수학은 관련 변수들에 선행하는 개념들이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테면, 진자의 법칙의 경우에는 질량과 진자 길이라는 개념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론적으로 적재된 개념들의 견지에서, 우리는 수학적 운동 법칙을 구성한다. 뉴턴의 경우에, 관성이라는 개념이 그의 첫 번째 법칙을 낳고, F = MA가 두 번째 법칙을 구성하는데, 이것은 뉴턴 이전의 질량 개념 위에 세워진다. 그러나 생물권의 진화의 경우에는, 변화하는 과업 폐쇄성을 지닌 세포라는 진화하는 칸트적 전체 속에서 다윈적 전적응에 의해 "어떤 예상할 수 없는 용도를 발견"하기도 하는 항상 새로운 인과적 결과들로 인해, 우리는 관련 변수들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진화하는 생물권에 대한 운동 법칙을 서술할 수 없다.

 

일곱째, 우리는 어떤 벌레나 박테리아에 대한 부레와 같은 창발적인 새로운 인접한 비어 있는 가능한 적소들을 사전에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적소들은 벌레나 박테리아를 부레에서 살도록 진화시킨 자연선택에 대한 경계조건을 구성한다. 한편, 뉴턴은 우리에게 운동 법칙들이 필요하다고 가르쳤는데, 여기서 우리는 당구대 위 당구공들의 궤적들에 대한 운동 법칙들을 적분할 초기조건과 경계조건이 없다. 즉, 우리는 경계조건이 없고, 그래서 생물권의 운동 법칙들을 적분할 수 없다.

 

여덟째, 만약 위의 주장이 참이라면, 우리는 수반적 법칙이 없다면 세계는 정합적인 방식으로 생성될 수 없다는, 그리스인들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뉴턴 이후로 우리가 견지해 온 깊은 믿음을 포기해야 한다. 생물권은 35억 년의 생성 기간 동안 잘 작동했다.

 

위의 주장이 참이라면, 생명에 대하여 헤라클레이토스가 옳았다. 생명은 수반적 법칙의 한계를 넘어선, 수학화를 넘어선 자연마술 속에서 거품을 내고 부글거리며, 자유롭게 칸트적 전체들이 서로 함께 만들어내는 세계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재주술화되어 근대성을 넘어서는 길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매우 유익한 논의를 함께 나눈 쥬세페 롱고에게 감사한다.

 

번역: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