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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오늘의 에세이-허구가 진실을 이기는 이유


허구가 진실을 이기는 이유

Why Fiction Trumps Truth


――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많은 사람이 진실이 힘을 전달한다고 믿는다. 몇몇 지도자나 종교, 이데올로기가 실재를 왜곡되게 서술하면, 그들은 결국 더 명석한 경쟁자들에게 패배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을 고수하는 것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최선의 전략이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위로가 되는 신화일 뿐이다. 사실상, 진실과 권력이 훨씬 더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유는 인간 사회에서 권력이 매우 다른 두 가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권력은 객관적 실재를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을 의미하는데, 예컨대 동물을 사냥하고, 다리를 건설하고, 질병을 치료하며, 원자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런 종류의 권력은 진실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릇된 물리 이론을 믿는다면 원자 폭탄을 제조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권력은 또한 인간의 믿음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을 의미하는데,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효과적으로 협력하게 한다. 원자 폭탄을 제조하려면 물리학을 충분히 이해할 뿐 아니라 대단히 많은 인간의 노동도 조정해야 한다. 행성 지구가 침팬지나 코끼리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정복당한 이유는 인간이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규모의 협력은 공동의 이야기를 믿는 것에 의존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참일 필요는 없다. 신이나 인종, 경제에 관한 전적으로 허구적인 이야기를 믿게 함으로써 수백만 명의 사람을 뭉치게 할 수 있다.


권력과 진실의 이중적 본성은, 인간이 여타 동물보다 진실을 더 많이 알지만, 터무니없는 것도 훨씬 더 많이 믿는다는 흥미로운 사실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행성 지구의 가장 똑똑한 거주자이면서 가장 잘 속아 넘어가는 거주자이기도 하다. 토끼는 E=MC^2이라는 것, 우주의 나이가 대략 138억년이고 DNA는 시토신과 구아닌, 아데닌, 티민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다른 한편으로, 토끼는 수천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인간의 넋을 빼놓은 신화적 환상과 터무니없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 어떤 토끼도 사후세계에서 72마리의 처녀 토끼로 보상받고자 하는 바람으로 비행기를 세계무역센터에 기꺼이 충돌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구가 사람들을 공동의 이야기를 둘러싸고 뭉치게 할 때, 그것은 사실상 진실보다 유리한 세 가지 고유한 이점을 향유한다. 첫째, 진실은 보편적이지만, 허구는 국소적인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을 이방인과 구별하고 싶다면, 허구적 이야기가 참된 이야기보다 훨씬 더 나은 정체성 표식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부족민이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라고 믿도록 가르친다고 가정하자. 그것은 매우 빈약한 부족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 이유는, 내가 정글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이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고 내게 말한다면, 그 상황은 그가 우리 부족의 충성스러운 구성원임을 가리킬지도 모르지만, 꼭 마찬가지로 그가 우리 부족과 독립적으로 같은 결론에 이른 지적인 이방인임을 가리킬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부족민에게 "태양은 매일 하늘을 가로질러 도약하는 거대한 개구리의 눈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이 더 나은데, 그 이유는 이런 특수한 관념을 독립적으로 떠올릴 개연성이 있는 이방인―아무리 지적이라도―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허구가 진실보다 유리한 두 번째 큰 이점은 핸디캡 원리와 관련이 있는데, 이 원리는 신뢰할 만한 신호는 발신자에게 비용이 많이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신호는 사기꾼이 쉽게 위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수컷 공작새는 거대하고 화려한 꼬리를 자랑함으로써 암컷 공작새에 자신의 건강을 나타낸다. 이것이 건강에 대한 신뢰할 만한 신호인 이유는 꼬리가 무겁고 성가시며 포식자를 유인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건강한 공작새만이 이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이야기의 경우에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다.


정치적 충성심이 참된 이야기를 믿음으로써 나타난다면, 누구라도 위장할 수 있다. 하지만 터무니없고 기이한 이야기를 믿는 것은 더 큰 비용을 요구하고, 그래서 충성심에 대한 더 나은 신호가 된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지도자가 진실을 말할 때만 믿는다면, 그것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이와는 대조적으로, 만약 당신이 당신의 지도자가 공중에 성을 건설할 때에도 믿는다면, 그것이 충성심이다! 능수능란한 지도자는 때떄로 믿음직한 신봉자와 미덥지 못한 지지자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터무니없는 것을 고의로 말할 것이다.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실은 흔히 고통스럽고 심란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순수한 실재를 고수한다면, 당신을 추종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메리카 대중에게 아메리카 역사에 관한 진실, 완전한 진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는 아메리카 대통령 후보는 틀림없이 낙선하리라고 보증한다. 여타 나라의 후보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인이나 이탈리아인, 인도인이 자기 민족에 관한 순수한 진실을 소화할 수 있을까? 단호한 진실의 고수는 경탄할 만한 정신적 실천이지만, 승리하는 정치적 전략은 아니다.


허구적 이야기를 믿는 것의 장기적 비용이 사회적 응집의 어떤 단기적 이점보다 더 크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허구와 편리한 허위를 믿는 습관에 빠지면 이 습관은 더욱더 많은 영역으로 넘칠 것인데, 그리하여 나쁜 경제적 결정을 내리고 반생산적인 군사 전략을 채택하며 유효한 기술을 개발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일은 이따금 발생하지만, 그것은 결코 보편적 규칙은 아니다. 가장 극단적인 열심당원과 광신자도 흔히 자신의 비합리성을 구획할 수 있는데, 요컨대 어떤 분야에서는 터무니없는 것을 믿으면서도 다른 분야에서는 두드러지게 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나치를 생각하자. 나치의 인종 이론은 가짜 사이비과학이다. 나치는 그 이론을 과학적 증거로 지지하려고 했지만, 수백만 명의 사람을 학살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강한 믿음을 발달시키려고 자신의 합리적 역량을 침묵시켜야 했다. 하지만 가스실을 설계하고 아우슈비츠 행 열차의 시간표를 준비할 시간이 되었을 때는 나치의 합리성이 숨겨진 장소에서 온전히 출현했다.


나치와 관련하여 참인 것은 역사상 많은 다른 광신적 집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참이다. 과학혁명이 세계에서 가장 광신적인 문화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콜럼버스와 코페르니쿠스, 뉴턴 시대의 유럽은 역사상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의 밀도가 가장 높았고, 관용의 수준은 가장 낮았다.


뉴턴 자신은 명백히 물리 법칙을 판독하기보다는 성경에서 비밀 메시지를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과학혁명의 선각자들은 유대인과 무슬림을 추방했고, 이단자를 대규모로 화형했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모든 나이든 여성에게서 마녀를 찾아내었으며, 보름달이 뜰 때마다 새로운 종교 전쟁을 개시했던 사회에서 살았다.


대략 400년 전에 카이로나 이스탄불에 여행했더라면, 수니파와 시아파, 정교회 기독교도, 가톨릭교도, 아르메니아인, 콥트교도, 유대인뿐 아니라 심지어 간헐적으로 힌두교도도 비교적 조화롭게 나란히 살고 있던 다문화적이고 관용적인 메트로폴리스를 발견했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나름대로 의견 불일치와 폭동이 있었지만, 게다가 오토만 제국은 종교적인 이유로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차별했지만, 서유럽에 비교하면 자유로운 낙원이었다. 그다음에 당대의 파리나 런던에 여행했더라면, 종교적 편협함으로 가득 찬 도시를 발견했었을 것인데, 그곳에서는 지배적인 분파에 소속된 사람들만이 살 수 있었다. 런던에서는 가톨릭교도가 살해당했고, 파리에서는 개신교도가 살해당했고, 유대인은 추방당한 지 오래되었으며, 무슬림을 받아들이는 것을 생각조차 해 본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과학혁명은 카이로나 이스탄불이 아니라 런던과 파리에서 시작되었다.


합리성을 구획화할 수 있는 능력은 어쩌면 우리 뇌의 구조와 많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뇌의 다른 부분은 다른 사유 양식을 담당한다. 인간은 회의적 사유에 중요한 뇌의 그런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비활성화하고 재활성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은 열정적인 연설을 하는 히틀러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에는 자신의 전전두엽을 폐쇄할 수 있었고, 그다음에 아우슈비츠 행 열차 일정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에는 다시 재활성화할 수 있었다.


우리의 합리적 역량을 비활성화하는 데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사회적 응집이 증가하는 이점이 흔히 매우 커서 인간 역사에서 허구적 이야기가 진실을 일상적으로 이긴다. 수천 년 동안 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았는데, 이런 이유로 학자들은 흔히 자신이 진실에 봉사할지 아니면 사회적 조화에 봉사할지 결정해야 했다. 학자는 모든 사람이 같은 허구를 믿게 설득함으로써 사람들을 통합하고자 해야 하는가, 아니면 분열의 대가를 치르고서도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해야 하는가? 소크라테스는 진실을 택했고 처형당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학술 체제들―그리스도교 성직자든, 유교 관료든, 공산주의 이데올로그든 간에―은 진실보다 통일성을 우위에 둔다. 그런 이유로 그것들은 매우 강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