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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육(許煜): 오늘의 에세이-코스모폴리틱스로서의 코스모테크닉스


코스모폴리틱스로서의 코스모테크닉스

Cosmotechnics as Cosmopolitics


―― 후이육(許煜, Hui Yuk)


일방적인 세계화가 끝나고 인류세가 도래함으로써 우리는 코스모폴리틱스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다. 이 두 사태는 서로 관련되어 있고 "코스모폴리틱스"라는 낱말의 두 가지 상이한 의미, 즉 통상 체제로서의 코스모폴리틱스라는 의미와 자연의 정치로서의 코스모폴리틱스라는 의미에 해당한다.


첫째, 우리는 일방적인 세계화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른바 세계화는 대체로 일방적인 과정이었는데, 그 과정과 더불어 특수한 인식론들이 보편화되었고 지역적 세계관이 기술경제적 수단을 통해서 추정컨대 전지구적인 형이상학으로 격상되었다. 우리가 이런 일방적인 세계화가 종말에 이르렀음을 아는 이유는 9/11 공격이 서양에 대한 타자의 공격으로 오독된 방식 때문이다. 사실상 9/11은 대서양 진영의 내부에서 발생한 "자가면역적" 사건이었는데, 냉전 후에 잔존하고 있는 그 자체의 반공산주의적 세포들이 자신의 숙주에 대적한 사건이었다. 그래도 그 사건의 극적인 영상은 일종의 로르샤흐 검사를 제공했는데, 요컨대 일방적인 세계화의 대표자들은 낡은 배치와 새로운 배치 사이에 걸쳐 있는 상황과 관련하여 점점 커지는 자신의 불안감을 그 사건에 투영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헤겔이 "불행한 의식"으로 부른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점은 아메리카의 신반동주의를 선도하는 금융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피터 틸(Peter Thiel)이 저술한 "스트라우스적 국면(Straussian Moment)"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근대 서양은 자신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렸다. 계몽주의 시기와 탈계몽주의 시기에 이렇게 신념을 상실함으로써 엄청난 상업적 힘과 창조적 힘이 해방되었다. 이와 동시에 그 때문에 서양은 취약하게 되었다. 근대 서양을 전적으로 파괴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강화할 방법, 즉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이도 버리지 않는 방법이 있는가?


틸의 불행한 의식은 일방적인 세계화가 끝남으로써 부인당한 상업적 영광의 과거 시대를 회상하고, 모든 우주적 규모에서 일어나는 기술적 가속에 의거한 트랜스휴먼주의적 미래주의를 갈망한다. 이렇게 해서 주권 국민국가를 전지구적인 기술 경쟁의 결과로 재정의하게 된다(최근에 러시아 대통령 블라드미르 푸틴이 주장한 대로 "AI를 선도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권력 배치가 약간 달라진, 즉 이제 미합중국 대신에 중국이나 러시아가 선도적인 패권 국가의 역할을 담당하는 동일한 종류의 지구정치(geopolitics)를 더 이상 지속하지 않는 새로운 정치를 상상하기 시작해야 한다. 단일한 패권 국가를 넘어서는 이런 새로운 세계 질서를 정밀하게 구성하려면 코스모폴리틱스의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둘째, 지구에서 인간 종은 인류세의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지구와 코스모스는 이른바 근대성이라는 인식론적 및 방법론적 단절의 절정인 거대한 기술적 체계로 변환되었다. 코스모스의 상실은 우리가 과학과 기술의 완전성 너머에 있는 것은 더 이상 지각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형이상학의 종말이다. 17세기와 18세기 유럽에서 레미 브라그(Remi Brague)와 알렉상드르 코이레(Alexandre Koyre) 같은 역사가들이 코스모스의 종말에 관한 글을 적을 때, 이것은 현재 우리가 처한 인류세 맥락에서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코스모스의 정치라는 의미에서의 코스모-폴리틱스를 전개하도록 요청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이런 요청에 응답하여 나는 그런 코스모폴리틱스를 전개하려면 코스모테크닉스에 대한 물음을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지금까지 나는 근대화 동안 등가성에 대한 탐색으로 추동된 어떤 번역들을 무화함으로써 기술에 대한 물음을 재개하려고 코스모테크닉스라는 이 개념을 전개했다. 이런 문제 설정은 칸트적 이율배반에 의거하여 제시될 수 있다.


논제: 기술은 인류학적 보편자인데, 몇몇 인류학자와 기술철학자가 표명한 대로 기억의 외부화와 기관들의 해방으로 이해된다.


반논제: 기술은 인류학적으로 보편적인 것이 아닌데, 단순한 기능성이나 효용을 넘어서는 특수한 우주론들 덕분에 가능해지고 그것들의 제약을 받는다. 그러므로 단일한 기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수의 코스모테크닉스가 존재한다.


코스모테크닉스와 코스모폴리틱스의 관계를 정밀하게 구성하기 위해 나는 이 논문을 세 부분으로 나눌 것이다. 첫째, 나는 코스모폴리틱스에 관한 칸트의 개념이 자연에 관한 칸트의 개념에 어떻게 뿌리박고 있는지 예증할 것이다. 두 번째 부분에서 나는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가 제시한 "다자연주의(multinaturalism)"를 또 하나의 코스모폴리틱스로 규정할 것인데, 이것은 보편자에 대한 칸트의 추구와 대조적으로 공존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어떤 상대주의를 주장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 나는 우주론에서 도래할 정치로서의 코스모테크닉스로 이동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1. 코스모폴리타니즘: 자연과 기술 사이에서


모든 코스모폴리틱스의 주요한 난점은 보편자와 특수자 사이의 화해다. 칸트가 프랑스 혁명을 고찰한 방식대로, 2층 좌석에서 격렬한 연극 한 편을 평가하는 관객처럼, 보편자는 위에서 특수자를 사색하는 경향이 있다. 보편성은 관객의 관점이지 행위자의 관점이 결코 아니다. "세계시민적 견지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이라는 글에서 칸트는 이렇게 적는다.


철학자―인간들과 그들의 연출 일반에 관해 그들의 어떤 합리적 목적도 결코 전제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터무니없는 인간사의 과정에서 자신이 자연의 목적을 찾아낼 수 있는지 시도하는 것 외에 다른 출구는 없다. 독자적인 계획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생명체들의 경우에도 자연의 정해진 계획에 따른 역사가 가능할 것이다 ... [자연은] 뜻밖의 방식으로 행성들의 타원 경로들을 정해진 법칙에 귀속시킨 케플러를 낳았고, 이런 법칙을 보편적인 자연적 원인에서 설명한 뉴턴도 낳았다.


자신의 정치적 저작 전체에 걸쳐서 칸트는 지연과 코스모폴리틱스의 이런 관계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칸트가 공화주의적 헌정과 영구 평화를 인간 종의 보편사를 산출할 수 있을 정치적 형식으로 간주한다면, 그 이유는 그가 그런 진보 역시 이성의 진보, 자연의 목적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 즉 보편사와 "완전한 국가 헌정"을 향한 이런 진보는 "자연의 숨은 계획의 완결"(Vollziehung eines verborgenen Plans der Natur)이다. 자연이 숨은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코스모폴리틱스의 실현이 왜 자연의 목적인가?


특히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와 에크하르트 푀르스터(Eckart Forster) 같은 저자들은 칸트의 정치철학이 자연에 관한 그의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주장한다. 아렌트는 칸트의 영구 평화에 관한 병렬 구조를 제시하는데, 한편으로 Besuchsrecht, 즉 외국을 방문할 권리와 환대에의 권리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자연, 즉 " 궁극적인 '영구 평화의 보증자'로서의 위대한 예술가"가 있다. 1789년 혁명 후에 칸트가 코스모폴리틱스를 자연의 목적론으로 더욱더 일관되게 단언한다면, 그 이유는 그가 자기조직화라는 개념을 전개했기 때문인데, 그 개념은 『판단력 비판』의 제2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관계의 두 가지 범주, 즉 공동체(Gemeinschaft)와 호혜성(Wechselwirkung)을 확언한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의 §64에서 제시한 나무의 사례를 고찰하자. 첫째, 나무는 자신의 속에 따라 자신을 재생산하는데, 요컨대 그것이 또 하나의 나무를 재생산함을 의미한다. 둘째, 나무는 한 개체로서의 자신을 생산하는데, 그것은 환경에서 에너지를 흡수하여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양분으로 전환한다. 셋째, 나무의 다른 부분들은 서로 호혜적 관계를 확립하여서 전체를 구성하는데, 칸트가 적은 대로, "부분의 보존은 여타 부분의 보존에 호혜적으로 의존한다." 그런 전체에서 부분은 항상 전체의 제약을 받고, 그리고 코스모폴리틱스적 전체성에 대한 칸트의 이해도 마찬가지로 이렇다. "국가들은 모두 ... 서로 해로운 작용을 미칠 위험이 있다." 프랑스 혁명이 그것의 행위자들에 따라 판단될 수 없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자연은 특수한 관점에서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은 복잡한 전체로 이해될 수 있을 뿐이고, 그래서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종도 자연의 목적과 일치하는 보편사를 향해 궁극적으로 전진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가 자신의 사유를 보편주의를 향해 전개할 때 코스모폴리틱스와 자연의 목적성 사이의 관계에 관한 그의 구상은 역사의 독특한 국면, 즉 자연의 주술화와 탈주술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국면 안에 놓이게 된다. 한편으로, 칸트는 유기적인 것이라는 개념이 철학에 중요함을 인식하는데, 『실천이성 비판』의 말미에 서술된 유명한 비유가 가리키듯이, 자연과학에서 이루어진 발견들 덕분에 칸트는 코스모스와 도덕적인 것을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대해서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숙고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새롭고 점점 더 큰 경탄과 외경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 것이 있다. 그것은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하워드 케이질(Howard Caygill)은 훨씬 더 강한 주장을 제시하는데, 이 비유가 "내 안의" 것(자유)와 "내 위의" 것을 통일하는 "영혼과 우주에 관한 칸트적 생리학"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시민적 견지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에서 칸트가 케플러와 뉴턴을 인용한 글에서 나타낸 대로, 과학과 기술의 진보와 "보편사"를 긍정함으로써 18세기에 레미 브라그가 "코스모스의 죽음"으로 부르는 것이 초래된다.


코페르니쿠스와 그의 계승자들 이후에 새로운 천문학은 근대적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다... 고대 사상가들과 중세 사상가들은 자체 생성의 흔적을 지운, 물리적 세계의 구조에 대한 공시적 도식을 제시했다. 다른 한편으로, 근대인들은 과거를 기억했고, 게다가 천문학에 대한 통시적 견해를 제시했는데, 코스모스에 관한 관념들의 진화가 코스모스에 관한 진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 우리는 여전히 우주론에 관해 말할 수 있는가? 서양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뉴턴으로 인해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가 끝나면서 더는 우주론이 없는 듯 보인다. 그래서 "세계"는 전체를 더는 이루지 못했다.


망원경과 현미경이 발명된 덕분에 자연과학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발견들로 인해 인간들은 전에는 파악할 수 없었던 규모에 노출되면서 "자연의 전 범위"(in dem ganzen Umfang der Natur)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칸트 학자 다이앤 모건(Diane Morgan)은, 기술에 의해 드러난 "세계들을 넘어선 세계들"을 통해서 자연이 더는 인간형상적이지 않게 되는 이유는 인간이 이제 우주의 "가늠할 수 없는 크기"(Unabsehlich-Groβ) 앞에 서 있음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반전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이중 국면, 즉 자연과학을 통한 자연의 탈주술화 주술화가 있는데, 그 결과 코스모스의 전적인 세속화가 초래된다.


기술적 장치를 통한 자연과 그것의 목적이 밝혀짐에 덧붙여 기술은 칸트의 정치철학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 예컨대 그가 소통이 유기체적 전체의 실현 조건이라고 주장할 때 그렇다. 아렌트는 칸트 철학에서 공동체와 합의에 관한 물음으로서 공통 감각(sensus communis)이 수행하는 역할을 명시화한다. 하지만 그런 공통 감각은 특수한 기술을 통해서만 성취되고, 그래서 공통적인 것이 이미 주어진 것이거나 기술에 선행하는 것으로 다루는 어떤 소박한 담론도 문제시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근거에서 비롯된다. 계몽의 시대는, 한나 아렌트(또한 베르나르 스티글레르)가 지적한 대로, "자신의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시대이고, 이런 이성의 행사는 인쇄 기술을 반드시 포함하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로 표현된다. 국제적 층위에서, 칸트는 "영구 평화론"에서 이렇게 적는다. "먼저 그들이 서로 평화로운 관계를 맺게 하여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도 평화로운 상호작용과 상호 동의, 공동체에 기반을 둔 관계를 맺게 한 것은 무역이었다." 나중에 이렇게 덧붙인다. "조만간 모든 사람을 사로잡을 것은 전쟁과 공존할 수 없는 무역 정신이다."


§2. 코스모폴리틱스로서의 "존재론적 전회"


칸트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이렇게 재론한 것은 칸트의 정치철학에서 자연이 수행하는 역할을 보여주려는 시도다. 칸트는 아무튼 단일한 자연을 가정하는데, 이성이 이 가정을 합리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며, 합리성은 도덕과 국가 둘 다의 구성에서 외관상 실현되는 유기체적인 목적론적 보편성에 해당한다. 이런 자연의 주술화에는 산업혁명으로 강요된 기계화에 의해 추동된 자연의 탈주술화가 수반된다. 유럽의 근대성과 근대 기술의 세계화가 초래한 브라그의 "자연의 죽음"은, 코스모폴리틱스가 코스모폴리타니즘에 대한 생물학적 은유의 비효험성을 예시하는 한, 오늘날 우리가 코스모폴리틱스에 관해 성찰할 조건들 가운데 하나를 반드시 형성한다. 우리가 코스모폴리타니즘에 관한 더 최근의 논의―마사 누스바움의 뿌리가 없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이나 하버마스의 헌정적 애국주의, 앤서니 아피아의 코스모폴리탄 애국주의 같은 것―가 아니라 오히려 칸트로 시작한다면, 그 이유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이 자연 및 기술과 맺은 관계들을 검토함으로써 코스모폴리타니즘을 다시 고찰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상, 아피아의 뿌리가 내린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이어질 논의와 관련이 있다. 아피아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이 소속과 특별한 충성심의 중요성을 부인한다는 견해를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코스모폴리틱스를 지역성의 관점에서 고찰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중요한 점이 최근에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려는 시도와 관련된 인류학자들이 제안한 "다자연주의"라는 관념에 내가 관여하고 싶은 이유다.


인류학에서 "존재론적 전회"는 특히 필리프 데스콜라와 에두아르도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 브뤼노 라투르, 팀 인골드를 비롯하여 더 이전의 로이 와그너와 메릴린 스트라선 같은 인류학자들과 관련된 운동이다. 이런 존재론적 전회는 현재 인류세와 밀접하게 관련된 생태적 위기로 대개 표현되는 근대성의 위기에 대한 명시적인 반응이다. 존재론적-전회 운동은 다른 문화들의 다른 존재론들을 진지하게 여기려는 노력이다(다른 존재론들이 있음을 아는 것과 그것들을 진지하게 여기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데스콜라는 네 가지 주요한 존재론, 즉 자연주의와 애니미즘, 토테미즘, 유비론(analogism)을 설득력 있게 개관한다. 근대적인 것은 데스콜라가 "자연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특징지어지는데, 요컨대 문화와 자연의 대립과 문화에 의한 자연의 지배를 뜻한다. 데스콜라는, 우리는 그런 대립을 넘어서서 자연이 더는 문화에 대립하거나 문화보다 열등하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다른 존재론들에서는 자연이 다른 역할들을 수행함을 알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애니미즘에서 자연의 역할은 육체성의 불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영성의 연속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연과 문화 너머(Beyond Culture and Nature)』에서 데스콜라는 사회구성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론적 다원주의를 제시했다. 그는, 이런 존재론적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유럽의 근대가 도래한 이후 나타난 자연주의의 지배에 대한 해독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럽의 자연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자연(또는 어쩌면 코스모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번에는 토착적 지식의 이름으로, 사실상 자연의 재주술화를 부활시키는가? 이것은 존재론적-전회 운동과 관련된 숨은 문제인 듯 보이는데, 지금까지 존재론적 전회와 관련된 많은 인류학자는 비인간(대체로 동물과 식물, 광물, 정령, 죽은 자)의 정치와 자연에 관한 물음에 주의를 집중했다. 데스콜라가 자신의 분과학문을 "자연의 인류학"으로 부르자고 제안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그 상황은 명백하다. 더욱이, 이런 경향은 존재론적-전회 운동에서 테크닉스에 관한 물음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시사한다. 예를 들면, 데스콜라는 흔히 실천에 관해 말하는데, 이것은 자연과 테크닉스의 대립을 회피하고자 하는 그의 (칭찬받을 만한) 욕망을 가리킬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또한 그는 기술에 관한 물음을 모호하게 한다. 데스콜라는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에서는 자연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유비론이 중요했음을 보여주는데, 만약 이것이 참이라면, 유럽의 근대 동안 일어난 "전회"는 완전히 다른 존재론과 인식론을 낳은 것처럼 보인다. 자연주의가 근대 사상을 지배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이유는 그런 독특한 우주론적 상상이 그것의 기술-논리적 전개와 양립할 수 있기 때문인데, 요컨대 자연은 인간의 선을 위해 지배당해야 하고, 게다가 사실상 자연은 자연법칙에 따라 지배당할 수 있다. 혹은 다른 식으로 말하면, 자연은 자신의 "개념의 박약함"으로 인해 우발성의 원천으로 여겨지기에 논리로 극복되어야 한다.


자연과 테크닉스, 신화와 이성 사이의 이런 대립은 두 가지 극단 중 하나에 속하는 다양한 환영을 생성한다. 한편으로, 신을 살해한 후에 자신의 일신론을 유지하려고 광분하여 노력하는 합리주의자 혹은 "진보주의자"가 있는데, 그들은 세계 과정이 차이와 다양성을 없애고 "신정"으로 이끌 것이라고 희망하며 믿는다. 다른 한편으로, 토착적 존재론이나 생물학을 근대성의 출구로 찬양할 필요성을 느끼는 좌파 지식인이 있다. 최근에 프랑스의 한 혁명적 사상가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오늘날 보게 되는 한 가지 웃기는 일은, 이 터무니없는 근대적 좌파 인사들이 모두 무엇이든 보지 못하고, 모두 자신에 침잠하고, 모두 매우 기분이 나쁘고, 모두 존재하려고 그리고 자신의 현존을 타자의 눈에서 찾아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상황인데, 요컨대 이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대면하지 않고 피하기 위해 "야생", "토착적"인 것, "전통적"인 것에 올라타는 상황이다. 나는 자신의 "백인성"을 향해, 자신의 "근대주의"를 향해 비판적임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나는 자신의 내면을 살펴볼[transpercer] 수 있는 능력에 관해 말하고 있다.


내가 앞에서 언급된 두 극단을 거부하는 이유는 어떤 탈식민주의적인 "정치적 올바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탈식민주의의 비판을 넘어서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사실상, 나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탈식민주의가 기술에 관한 물음을 다루지 못했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나는, 존재론적 다원주의는 기술과 기술의 정치에 관한 물음을 성찰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을 뿐이라는 논제를 고수한다. 칸트는 소통으로서의 무역에 관한 자신의 논평에서 기술의 중요성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그가 결국 행성적 근대화를 초래했고 현재 행성적 연산를 낳고 있는 기술적 차이에 거의 주목하지 않은 이유는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모든 차이를 흡수하는 전체에 관한 물음이었기 때문이다. 칸트는 "원주민의 억압, 즉 전쟁과 기근, 불안정, 불성실의 확산 및 인간종을 무겁게 누르는 장황한 악행 전체에 연루된 다양한 상태의 유발"을 초래한 탐욕스러운 식민주의자, 즉 무례한 손님을 비판한다. 칸트는 중국과 일본의 방어 전략에 관해 논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국가 모두


현명하게도 그런 상호작용을 제한했다. 중국은 접촉은 허용했지만 영토에의 유입은 금지한 반면에, 일본은 단 하나의 유럽 민족, 즉 네덜란드인에게만 이런 접촉을 허용했으면서도 그들이 죄수인 것처럼 자국의 주민과 관계를 맺는 것을 금지했다.


1795년에 칸트가 이 구절을 적었을 때, 그가 일본과 중국에서 일어날 근대화와 식민화를 예상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일렀다. 이런 세계화의 국면이 발생할 수 있었다면, 그 이유는 서양의 기술적 진보 때문이었는데, 그 덕분에 서양은 일본 문명과 중국 문명, 그 밖의 아시아 문명을 패배시킬 수 있었다. 영구 평화의 보증자인 자연은 우리를 실제로 영구 평화로 이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과 더 많은 전쟁으로 이끌었다. 오늘날 코스모폴리타니즘을 호소하려면, 칸트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근대화 과정에 따라 다시 읽고 자연과 기술에 관한 물음을 새롭게 고찰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 세기에 비유럽 국가들에 근대 기술이 도래함으로써 유럽의 관찰자들은 생각할 수 없는 변환이 초래되었다. "토착적 자연"의 복구 자체가 먼저 의문시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 상황에 처해 있기에 되돌아가서 그것을 복구할 방법이 거의 없을 정도로 변환되었기 때문이다.


존재론적 전회에 관해 앞에서 언급된 것을 다시 살펴보자. "자연"과 "존재론"이라는 인류학자들의 개념에 중요한 것은 우주론인데, 그 이유는 그런 "자연"이 우리가 다른 관계들의 배치, 예컨대, 여성과 식물의 부모적 관계나 인간과 동물의 형제 관계를 관찰하게 되는 다른 "관계들의 생태"에 따라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다존재론은 다자연으로 표현되는데, 예를 들면, 앞에서 언급된 데스콜라의 네 가지 존재론은 각기 다른 우주론적 견해에 해당한다. 나는 기술에 관한 물음을 직접 대면하지 않은 채 근대성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믿고 있는데, 일방적인 세계화가 끝난 후에 기술에 관한 물음은 점점 더 긴급해졌다. 그러므로 코스모폴리틱스에 관한 물음을 코스모테크닉스에 관련지어 다시 표현해야 한다.


§3. 코스모폴리틱스로서의 코스모테크닉스


나는 우주론이라는 개념을 넘어서자고 제안하는데, 그 대신에 내가 코스모테크닉스라고 부르는 것을 다루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다. 나는 코스모테크닉스에 대한 예비적 정의를 제시할 것인데, 코스모테크닉스란 공예-제작이든 예술-제작이든 간에 기술적 활동을 통한 코스모스와 도덕의 통일이다. 이런 저런 테크닉스는 존재하지 않지만, 코스모테크닉스는 많이 존재한다. 어떤 종류의 도덕, 어떤 코스모스와 누구의 코스모스, 그리고 그것들을 통일하는 방법은 다른 동역학에 따라 문화마다 다르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위기―즉, 인류세 혹은 가이아의 침입(라투르와 스탕제) 혹은 "엔트로피세"(스티글레르), 요컨대 모두 인류의 불가피한 미래로 제시된 위기―를 직면하려면 기술에 관한 물음을 재개해야 한다고 나는 확신하는데, 그것은 다른 코스모테크닉스를 구상함으로써 기술적 미래의 이분화를 고찰하기 위함이다. 나는 최근에 출판된 책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 코스모테크닉스 시론』에서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책 제목에서 가늠할 수 있듯이, 그 책은 하이데거의 유명한 1949년 강의 "기술에 관한 물음"에 대응하려는 시도다. 나는, 근대성 극복하기라는 계획을 재고하려면 테크네와 퓌시스, 메타피지카(한낱 독립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체계 내의 개념으로서)의 번역을 무화하고 다시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데, 우리는 오로지 이런 차이를 인식함으로써 철학의 공통 과업의 가능성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코스모테크닉스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오랫동안 우리는 테크닉스에 관한 매우 협소한, 사실상 너무 협소한 개념을 품고서 작업했다. 하이데거의 에세이에 따르면, 우리는 테크닉스에 관한 두 가지 개념을 구별할 수 있다. 첫째, 테크네라는 그리스적 개념이 있는데, 하이데거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특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 명의 "최초"(anfangliche) 사상가들인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아낙시만드로스에 대한 독법을 통해 그 개념을 전개한다. 1949년 강연에서 하이데거는 그리스적 테크네의 본질과 근대적 기술(moderne Technik)을 구별하자고 제안한다.


테크네의 본질이 포이에시스, 즉 제작(Hervorbrigen)이라면, 유럽 근대성의 산물인 근대적 기술은 테크네와 같은 본질을 더는 보유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존재자들이 모두 그것을 위한 상비적 비축물(Bestand)이 된다는 의미에서 "틀짓기"(Gestell) 장치다. 하이데거는 테크닉스의 이런 두 가지 본질을 총체화하지 않고, 다른 테크닉스에 여지를 주지도 않는데, 마치 그리스적 테크네 이후에 단일하고 균일한 기계화(Machenshaft), 즉 계산 가능하고 국제적이며 심지어 행성적인 것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이데거의 이른바 블랙 노트북(Schwarze Hefte)―지금까지 네 권이 출판되었다―에서 이런 진술을 만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중국에서 공산주의가 지배하게 된다면, 오로지 이런 식으로 중국은 기술에 대해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무엇인가?" 여기서 하이데거는 두 가지를 암시하는데, 첫째, 기술은 국제적(보편적이 아니라)이라는 것, 그리고 둘째, 중국에서 공산주의가 권력을 장학한 후에 중국인들은 기술에 전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평결은, 트랜스휴먼주의적이고 신반동주의적인 정치에서 관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술적 세계화를 자신의 합리성을 도구성을 통해서 주입하는 일종의 신식민지화로 예상한다. 


기술에 관한 하이데거의 담론을 넘어서고자 하는 나의 노력은 대체로 두 가지 동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 둘은 1) 존재론적 다원주의를 제안함으로써 근대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인류학의 존재론적 전회에 대응하려는 욕망과 2) 대체로 하이데거의 기술 비판과 관련된 기술에 관한 불충분한 담론을 갱신하려는 욕망이다. 나는, 테크닉스를 테크네 아니면 근대적 기술로 여기는 대신에 다양한 코스모테크닉스로 여겨야 함을 보여주기 위해 테크닉스에 관한 물음을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내 책에서는 중국이 내 논제에 대한 시험 장소로 사용되었고 중국에서 구상된 기술 사상의 계보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이 과업이 중국에 한정되지 않는 이유는 중심 착상이 모든 비유럽 문화는 독자적인 코스모테크닉스와 그런 코스모테크닉스의 역사를 체계화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코스모테크닉스적 사상은 기(器)와 도(道)의 관계와 통일성에 관한 지적 담론의 긴 역사로 구성되어 있다. 기와 도의 통일이 도덕적인 것과 우주적인 것의 통일이기도 한 이유는, 신유학 철학자 모종삼이 예증했듯이, 중국의 형이상학은 근본적으로 도덕적 우주론이거나 도덕적 형이상학이기 때문이다. 모종삼은, 칸트에게서 도덕의 형이상학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도덕적 형이상학이 아니라 기껏해야 도덕적인 것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도덕적 형이상학은 도덕적인 것으로 출발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모종삼에 의한 중국철학과 서양철학의 구획짓기는 중국철학이 칸트가 본체 알기와 관련시킨 지적 직관을 인식하고 계발한다는 자신의 확신에 놓여 있는데, 칸트는 인간이 그런 직관을 보유할 수 있을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말이다. 모종삼의 경우에, 도덕적인 것은 코스모스의 무한성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되는데, 그 경험은 현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무한화를 필요로 한다.


도는 사물이 아니고, 도는 개념이 아니다. 도는 차연이 아니다. 역전(易傳)·계사(繫辭)에서 도는 "형상 위"에 있고, 기는 "형상 아래"에 있다고 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형이상학(形而上學, 형상 위에 있는 것에 관한 연구)은 "metaphysics"을 번역하는 데 사용되는 낱말(무화되어야 하는 등가물들 가운데 하나)이다. 기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인데, 그 문자에서 알 수 있고 어원학적 사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器는 네 개의 입 혹은 용기가 있으며 가운데에 그 식기들을 지키는 개가 있다. 가르침에 따라 기의 의미는 다양하다. 예를 들면, 고전 유학에서는 기가 예(의례)에 중요한 예기(禮器)가 있는데, 여기서 예는 한낱 의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과 인간의 통일(天人合一)에 대한 탐색이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칸트적 구별에 따라, 도는 본체계에 속하고 기는 현상계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를 무한화하고 본체계에 진입하도록 기를 무한화할 수 있는데, 이것이 예술에 관한 물음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여기서 『장자』에서 전해지는 포정(庖丁)이라는 백정의 이야기를 언급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고대에서 전해진 일화일 뿐이라는 사실이 환기되어야 할 것이고, 그래서 그것을 파악하려면 훨씬 더 넓은 역사적 관점이 필요하다.


포정은 소를 해체하는 데 탁월하다. 그는, 훌륭한 백정의 요체는 어떤 솜씨를 숙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를 파악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포정은 문혜군(文惠君)이 제기한 소 해체하기의 도에 관한 물음에 응답하면서 좋은 칼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하는데, 소에서 도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리하여 칼날을 사용하는 것은 뻬와 힘줄을 베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지나 사이의 틈새에 집어넣기 위함이다. 여기서, "도"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길" 혹은 "경로"―가 그것의 형이상학적 의미와 얽힌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이며, 이는 내 솜씨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해체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소의 겊모습만 보였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의 온전한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만 직관으로 일할 뿐, 눈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은 멈추고 직관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큰 틈을 벌리고 그 속에 칼을 넣는 것은 하늘의 원리(본성)에 따르는 것입니다. 소의 자연적 구조를 좇기에 힘줄이나 근육을 베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를 베겠습니까!


그러므로 포정은, 훌륭한 백정이 자신이 다룰 수 있는 기술적 객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에 의존하는 이유는 도가 기(도구)보다 더 근본적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훌륭한 백정이 일 년에 한 번 칼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힘줄을 베기 때문이지만, 서툰 백정이 달마다 칼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뼈를 베기 때문이라고 포정은 덧붙인다. 다른 한편으로, 포정―탁월한 백정―은 9년이 지났어도 칼을 바꾸지 않았는데, 그 칼은 숫돌로 막 간 것처럼 보인다. 포정은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칼을 늦추고 나아가기에 올바른 곳을 더듬어 찾는다.


그 물음을 제기한 문해군은 다음과 같이 응대한다. "그대의 말을 듣고 나는 살아가는 법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상 이 이야기는 "양생주(養生主)"라는 제목의 편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기술에 관한 물음이라기보다는 "삶"에 관한 물음이다. 여기서 "테크닉스"에 관한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기술적 객체에서 분리된 것인데, 기술적 객체가 중요하더라도 도구나 솜씨의 완벽성을 통해서 테크닉스의 완벽성을 추구할 수 없는 이유는 완벽성이 도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정의 칼은 절대 힘줄이나 뼈를 자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틈을 찾아서 쉽게 들어간다. 그럼으로써 칼은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즉 날이 무뎌지거나 교체당할 필요가 없이 소를 해체하는 작업을 완수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칼로서 완전히 실현된다.


앞에서 내가 말한 것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형식화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내가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에서 추진하고자 한 훨씬 더 큰 계획의 배후 동기를 설명할 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와 도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역사적 전개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기와 도의 통일성에 대한 탐색은 중국 역사에서 역사적 위기들(주 왕조의 멸망, 불교의 번성, 근대화 등)에 대응하여 다른 국면들을 겪었는데, 그 탐색은 19세기 중엽의 아편 전쟁 이후에 널리 논의되었지만 그런 통일은 당대의 기술에 대한 매우 제한적인 이해와 더불어 중국과 서양의 동등성을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인해 결의되지 않았다. 나는 중국철학의 역사를 지성사로 다시 읽을 뿐 아니라, 기-도 에피스테메의 렌즈를 통해서도 다시 읽으려고 했는데, 이것의 목표는 중국에서의 기술적 사유의 전통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내가 강조한 대로, 이런 물음은 결코 중국의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문화가 도래할 새로운 코스모폴리틱스를 위해서 코스모테크닉스에 관한 물음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는, 전쟁과 파시즘으로 다시 빠져들지 않은 채 근대성을 극복하려면, 다양한 인식론과 에피스테메로 구성된 코스모테크닉스의 갱신된 틀을 통해서 근대 기술을 재전유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계획은, 르네 구에농(Rene Guenon)이나 알렉산드로 뒤갱(Aleksandr Dugin) 같은 전통주의자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전통을 실체화하는 것이 아닌데, 요컨대 그 계획은 근대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기술적 미래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세는 상비 비축물의 행성화이고, 그래서 하이데거의 기술 비판은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에 더 중요하다. 일방적인 세계화가 끝난 뒤에 전쟁과 기술적 특이점, 트랜스휴먼주의적 몽상의 유혹과 기술적 가속의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인류세는 특이점을 향한 기술적 진보라는 견해에 의해 유지되는 전지구적 시간 축이자 동시화다. 기술에 관한 물음을 재개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일한 선택지로 제시되는 이런 균일한 기술적 미래를 거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