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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야스히로: 오늘의 인용-차곡차곡 쌓아 올린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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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학문에서 우선 중점을 둘 것은, 사회 변혁을 위해 무엇보다 그 사회 구조를 객관적으로 연구해 밝혀야 한다고 본 마르크스의 입장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런 사회여야 한다'는 식으로 자신의 이상을 사회에 강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 사회는 오직 그 자신의 논리에 따라 변화할 뿐이다. 그러므로 사회를 과학적으로 구명하지 않는 혁명가는 혁명가일 수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정신입니다.


그럼 마르크스는 그런 학문을 어떤 수순으로 쌓아 올렸을까요. 당연히 처음부터 전체적인 계획이 존재했던 건 아닙니다.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지금 눈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것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마르크스의 학문적 발전이 이루어졌어요. 그 결과로 마르크스 사상의 체계도 만들어졌고요. 따라서 세계관, 경제 이론, 미래 사회론, 혁명 운동론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네 가지 구성 요소'라는 차원의 고찰이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 네 가지는 서로 유기적 연관성을 지니는 구성 요소이기 때문에 한 가지만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세 가지는 모르지만 경제 이론은 알고 있다든가 나머지는 잘 모르지만 세계관을 잘 안다든가 하는 이해 방식은 아예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어떤 한 가지 요소만을 바라볼 때 잘 알 수 없던 것을 전체를 제대로 배움으로써 이해하게 되는 구조인 거죠.


마르크스의 체계는 마르크스의 사상만으로 이루어진 '닫힌' 구조가 아닙니다. 이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사상을 단련시킨 방법을 살펴보더라도 잘 나타납니다. 마르크스가 경제학 연구를 시작하면서 맨 처음 한 일이 마르크스 이전의 경제학자들에 대한 검토였거든요. [...] 다시 말해 마르크스는 어떤 연구를 진행하기 전에 우선 그 시점까지 존재하던 과학의 도달점부터 제대로 공부했던 겁니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결코 인류의 역사, 학문의 역사를 건너뛴 독선이 아닙니다. 철학에서도 헤겔과 포이에르바하를 확실히 공부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갔죠.


또한 마르크스의 체계는 미래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과 학문에 모자란 점이 있다는 걸 깨달으면 그 즉시 연구를 거듭해 더 풍요로운 방향으로 진화시켰습니다. [...]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르크스의 불충분했던 부분을 보다 진화시켜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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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카와 야스히로,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홍상현 옮김, 나름북스, 2016), pp. 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