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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다 아키노리: 오늘의 인용-생명정치: 살려 둘 수 없지만 계속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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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목적은 관리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큰 목적 중 하나는 자신들이 관리자가 되어 그에 따른 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때 세계를 좋게 만든다거나 사회를 좋게 만든다는 사고의 틀은 그들의 안중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일찍이 왕권 신수 시대에 민중의 관리자인 왕의 힘은 신에게서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대로 접어들면서 신의 존재를 그런 위치에 둘 수 없게 되자, 관리자들이 새로운 관리의 근거를 찾았습니다. 이 단계가 푸코가 말하는 생명권력입니다. 이 권력은 살려 두느냐 죽이느냐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배경으로 발생했습니다. 물론 이는 국가권력이 소유한 폭력이 뒷받침하지만, 이런 사실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아도 상황은 같습니다. 잠재적으로 살려 둘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야말로 힘의 원천입니다.

 

그런 권력의 존재가 부정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관리자들이 하는 정치라는 개념은 20세기 이후에 생겼습니다. 하지만 포장만 새롭게 바꿨을 뿐, 내용은 사실상 같았습니다. 즉 죽일 수 있다는 위치를 살려 둘 수 있는 위치로 말만 바꿨을 뿐입니다. 그리고 살려 둔다는 것을 궁극의 어휘로 삼아 관리자의 힘을 드러내는 새로운 구조가 생겼습니다.

 

여기에서 '생명권력'과 '생명정치'가 같은 것이며 형태만 다르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즉 생명권력에서는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면 생명정치에서는 (살려 둘 수 없지만) 계속 살게 하는 것이 중요해졌을 따름입니다.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는 것을 왕의 자비라 부르고, 그 자비를 입은 자들은 왕에게 감사하고 존경을 표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이 충성심을 길렀으며, 지금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이 세계를 지배한 기본적 가치관(적어도 상층 계급의 가치관)의 원천이 됩니다.

 

근대 이후 정치는 이것이 미묘하게 모습을 바꿔 살려 둘 수 없는데도 계속 살게 하는 것이 중심에 놓였습니다. 현대사회를 잘 관찰하면 이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통치되는 자, 관리되는 자를 살리기 위한 정치 같은 없습니다. 우리는 법과 제도의 속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마저 세금으로 징수당하고, 그 세금은 군대유지비나 공무원의 퇴직금과 그들을 위한 시설비로 야금야금 쓰이거나 공무원과 정치가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유지하는 데 쓰입니다. 한편 출생률과 사망률을 조사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해가 되는 담배와 술에는 무거운 세금이 부과됩니다. 우리는 그저 세금을 내기만 하는 존재로, 또는 선거에서 한 표를 던지는 우민으로 살려 두는 자들일 뿐입니다.

 

반론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반론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현재 정치나 정책의 어디에 우리를 '살리는' 요소가 있습니까?" 물론 여기에는 살린다는 말은 저들의 정치적 목적과 달리 유의미하게 살아가기 위한 바탕을 만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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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다 아키노리(高田明典), <<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지비원 옮김, 메멘토, 2016), pp. 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