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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앵거스: 인터뷰-인류세를 설명하기

 

인류세를 설명하기: 이안 앵거스와의 인터뷰

Explaining the Anthropocene: An interview with Ian Angus

 

―― 이안 앵거스

 

인류세라는 개념과 현재의 기후 위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개념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인류세는 지구 역사의 현 단계, 즉 인간 활동이 전례 없이 위험한 방식으로 행성 전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시대를 가리키기 위해 제안된 명칭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45억 년 역사를 지구 생명의 조건과 형태들에 있어서의 주요한 변화에 대응하는 시기들로 나눕니다.

 

대략 250만 년 전에 시작된 홍적세 시대는 일반적으로 빙하 시대로 알려져 있는 것에 의해 특징지워졌습니다. 대략 11,000년 전에 빙하는 마침내 퇴각하면서 지질학자들이 충적세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개시되었는데, 이 시대는 비교적 안정되고 온난한 기후에 의해 특징지워졌습니다. 충적세 조건 덕분에 농경이 가능해졌고, 결국 그것은 인간 문명의 흥기와 전파에 대한 기초를 놓았습니다. 스톡홀름 복원력 센터의 요한 록스트롬(Johan Rockstrom)이 말하듯이, 충적세 조건은 복잡한 인간 사회들과 양립 가능하다고 확실히 알고 있는 유일한 조건입니다.

 

1980년대에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이 인간 활동이 지역 환경과 특정한 생태계들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 어떤 변화들이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려하게 되었습니다. 사례들은 핵 폭탄 시험에서 비롯된 방사성 낙진, 널리 사용된 화학 물질들에 의해 야기된 오존층의 손상 그리고 온실 가스 배출에 의해 초래된 전지구적 기후 변화을 포함합니다. 이런 우려들 때문에 여태까지 행해진 국제 과학 협력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거대하고 가장 복잡한 프로그램―1990년부터 2015년까지 수천 명의 전 세계 과학자들의 작업을 조정한 국제 지구권-생물권 프로그램(IGBP)―이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IGBP의 작업 덕분에 인간 활동은 지구 체계를 교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상상했었던 것보다 더 방대하고 근본적인 방식들로 교란하고 있다는 심란한 확신을 비롯하여 지구 체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있어서 거대한 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2000년에 최초의 10년 동안 이루어진 연구를 평가하기 위해 소집된 IGBP 모임에서 노벨 상을 수상한 화학자 파울 크루첸(Paul Crutzen)은 충적세을 규정하는 특징들이 더 이상 현존하지 않는다―지구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해 버렸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간을 의미하는 그리스 낱말 안드로포스(anthropos)를 차용하여 인류세라는 명칭을 제안했습니다.

 

IGBP에 의해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진전들에 속하는 것은 전지구적 탄소 순환과 그것이 기후 변화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훨씬 더 완전한 이해입니다. 1800년대 이래로 과학자들은 공기 중 이산화탄소가 태양 에너지가 빛의 형태로 지구에 이르게 하는 반면에 열의 형태로 우주 공간에 다시 반사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지구 온도를 조절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공기 중에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존재한다면, 지구는 금성―너무 뜨거워서 생명을 부양하지 못하는―처럼 될 것입니다. 더 적은 이산화탄소가 존재한다면, 지구는 화성―너무 차가워서 생명을 부양하지 못하는―처럼 될 것입니다. 그런데 1960년대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지만, 과학자들은 그런 증가가 이례적인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일반적인 것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그리고 그것의 영향이 어떠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IGBP에 의해 조정된 연구들 덕분에 이제 우리는 최소한 800,000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엄격히 한정된 범위―한랭한 시기에는 180ppm보다 결코 낮지 않고, 온난한 시기에는 300ppm보다 결코 높지 않는―에서 변동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매우 긴 시기 동안 이산화탄소는 대기와 해양 사이에서 순환하면서 지구 온도를 놀랍도록 잘 규정된 한계 내에 유지했습니다. 이제는 화석 연료 연소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을 넘어섰으며,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인간 활동이 진화하여 안정화되는 데 수백 만 년이 걸린 복잡한 자연적 순환을 파괴해버렸으며, 그런 파괴로 인해 지구의 상태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크루첸과 빌 슈테펜(Will Steffen)이 적었듯이, "현재 지구는 전혀 비견할 수 없는 상태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핵심적인 환경적 변수들의 견지에서 최근에 지구 체계는 최소한 지난 50만 년 동안 나타난 자연적 변동성의 범위를 훌쩍 벗어나 버렸습니다. 현재 지구 체계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의 본성, 그것들의 크기 및 변화 속도는 전례가 없으며 지속 불가능합니다."

 

책에서 당신은 기후 변화는 일반적으로 점진적인 과정으로 간주되지만 실재는 매우 다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오래 전부터 과학은 지구의 조건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했다―때때로 지구의 대부분이 얼음으로 뒤덮혔고, 현재 한대 지역들이 한때 열대 지역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변화는 수천 년 이상의 세월에 걸쳐 매우 서서히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과거 기후에 대한 현재 연구의 가장 놀라운 결과들 가운데 하나는 빠른 기후 변화가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통상적인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기후는 대기와 해양에서 일어난 상당히 작은 변화에도 두드러지게 민감하고, 그래서 점진적으로 온난화하거나 한랭화하기보다는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수천 년이 아니라 수 년 또는 수십 년에 걸쳐 갑자기 요동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저명한 과학자가 서술하듯이, 지구의 기후는 살짝 찌르기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격렬히 반응하는 고약한 짐승입니다.

 

그것은 온실 가스 농도가 높을 뿐 아니라 과거 어느 시기보다도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오늘날에 특히 적실한 것입니다. 그것은 기후 체계에 전례 없는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그래서 폭주하는 기후 변화의 가능성, 완전히 다른 기후 체계로의 비교적 빠른 전환의 가능성이 대단히 커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극단적이지만 드문 열파로 경험하는 것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런 티핑 포인트를 넘어간다면, 생태계들은 조정할 시간이 없을 것이고, 종들은 진화할 시간이 없을 것이며, 인간 사회들은 적응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기후 티핑 포인트는 예측하기가 불가능한데, 변화 속도에 따라서 되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훌쩍 지난 후에서야 티핑 포인트를 지나버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위기에 긴급성을 부가합니다. 우리는 기후 변화가 위험한 것에서 엄청나게 위험한 것으로 바뀌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알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평소처럼 살아간다면 그런 전환이 일어날 개연성이 점점 더 커진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금세기에, 그리고 아마도 다음 수십 년 동안 우리가 행하는 것이 우리의 후손들이 물려받을 세계의 종류를 결정할 것입니다.

 

당신은 전지구적 환경 변화가 개시된 시점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에 집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크루첸이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 상태에 있다고 인식했을 때, 그는 인류세는 산업 혁명 시기에 개시되었을 것이라고 시사합니다. 그것은 중요한 통찰이었습니다. <<인류세를 직면하기(Facing the Anthropocene)>>에서 제가 보여주듯이, 화석 자본주의는 공장과 철도와 선박이 대규모로 석탄을 연소하기 시작한 1800년대에 태어났습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하나의 경제적 및 사회적 체계는 자체의 성장에 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화석 탄소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때 이래로 자본주의의 역사는 언제나 증가하는 석탄, 가스 그리고 석유의 사용에 의해 특징지워졌다.

 

그런 변화는 산업 혁명에서 시작되었지만, IGBP의 과학자들이 인류세를 규정하는 지구 체계의 변화들을 정량화하는 상세한 작업을 수행했을 때, 그들은 뜻밖의 패턴을 찾아내었습니다. 거의 모든 경우에, 지구 체계에 있어서 장기적인 추세들의 그래프는 1750년에서 대략 1950년―이 시기에 급격한 증가가 시작됩니다―까지 점진적인 증가를 나타냅니다. 1950년부터 현재까지 그 추세선들은 거의 수직으로 증가했습니다. IGBP 종합 보고서의 저자들이 적었듯이, "지난 50년 동안 틀림없이 인간 종의 역사에서 인간과 자연적 세계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가장 급격한 변환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더욱 더 많은 과학적 연구가 그런 결론을 확인했고, 그래서 이제 인류세 연구에 관여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은 산업 혁명과 더불어 시작되었지만, 새로운 시대는 사실상 20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1950년 이후의 시기를 거대한 가속(Great Accelera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인류세를 직면하기>>에서 제가 시도한 주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는 이런 급격한 증가 패턴을 추동한 사회적 및 경제적 힘들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왜 성장과 환경 파괴는 계속해서 점진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는가? 또는, 달리 표현하면, 왜 모든 추세는 갑자기 더불어 가속되었는가? 화석 생산 및 사용의 증가, 서양 사회의 자동화, 기업 집중 및 독점의 발흥, 합성 석유화학 제품들의 대량 도입, 농경의 산업화 등을 비롯한 화석 자본주의의 장기적 추세들을 연구했을 때 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모든 추세를 가속화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주류 경제학자들과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전쟁을 변칙적인 것, 자본주의의 정상적으로 평화로운 발달을 교란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사실상 20세기의 자본주의적 성장은 군사적 생산과 소비에 대단히 의존했습니다. 인간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환경 파괴의 급진적인 가속을 촉발했습니다.

 

경 위기에 대해서 모든 인류를 비난한다는 근거에 의거하여 인류세를 거부하는 좌파 인사들에게 어떻게 대응합니까?

 

저는 모든 희망의 조짐 주변에서 구름을 찾아내려고 열중하는 듯 보이는 좌파 인사들이 있다고 적었던 사람은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솔닛은 인류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의 논평은 확실히 적용됩니다. 현재 우리는 지구 체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있어서 거대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국제적인 논의,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평소대로 지속하는 것은 재앙에 이르는 길이라고 동의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최근까지 소수의 급진적 환경주의자들만이 견지한 관념들이 이제 세계 전역의 과학자들에 의해 수용되는데, 현재의 사회적 질서에 대한 과학에 의거한 강력한 이의 제기의 가능성을 창출합니다.

 

그런데 그런 주목할 만한 발전을 환영하는 대신에 일부 좌파 인사들은, 과학자들은 진정한 반자본주의자들이 아니라는 것, 그들은 체계 개혁에 관한 환상을 품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일부 과학자들은 계급 및 국가적 차이를 무시한 채 인간들을 모든 환경 파괴의 원인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주의를 집중합니다. 제 반응은 이중적입니다.

 

첫째, 저는 그런 비판가들이 과학자들이 이것에 관해 말하는 것을 실제로 읽어본 적이 있는지 의심해야 합니다. 만약에 읽어본 적이 있다면 그들은, 지금까지 인류세 기획의 선두에 섰던 과학자들이 "모든 인간이 비난받아야 한다"는 그 어떤 서사도 반복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거부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참이었습니다. 인류세에 관한 바로 최초의 동료 심사를 거친 논문에서, 그 낱말을 고안한 파울 크루첸은 세계 인구의 소수가 지구 체계를 파괴한 책임이 있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것이 인류세 연구의 일관된 주제였는데, 2015년에 발표된 거대한 가속 통계에 대한 가장 최근의 갱신 자료는 지금까지 인류세는 매우 소수의 인구에 의해 거의 전적으로 추동되었다는 점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사회적 분석이 완전하다거나 심지어 적절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제대로 하고 있고, 그래서 일부 좌파 비판가들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충격적인 일입니다.

 

둘째, 우리의 대응에 중추적인 그런 비판들을 제기하는 것은, 우리가 행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과학자들과 관계를 맺고서 우리의 견해들과 분석을 전체적인 논의에 기여하는 것일 때, 과학자들과 좌파 사이에 벽을 쌓습니다. 우리는 위기의 기원, 특질 그리고 방향에 대한 사회생태학적 설명에 있어서 가장 최근의 과학적 발견 결과를 생태적 마르크스주의 분석과 통합하기 위한 이런 두드러진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좌파가 그런 논의에서 물러나서 옆에서 비난한다면, 우리는 인류세 과학 및 과학자들을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 아래 남겨 둘 것이고, 그래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전개와 무관하게 될 것입니다.

 

1980년대에 화학 기업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오존층을 파괴하고 있던 가스들을 금지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오늘날의 위기에 대한 어떤 교훈을 끌어낼 수 있습니까?

 

저는 <<인류세를 직면하기>>라는 책의 한 장에서 오존 위기를 오롯히 다루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자들이 인류세에서 인간 활동이 "자연의 거대한 힘을 압도하"고 있다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를 매우 분명히 예시하기 때문입니다. 상층 대기에 있는 오존층은 지구 생명 유지 체계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그것은 치명적인 자외선 복사를 차단함으로써 문자 그대로 생명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1970년대에 과학자들이 냉장고, 에어로졸 분무기 그리고 다른 응용들에 사용되는 프레온 가스로 알려져 있는 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단의 합성 가스들이 대기 오존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은 우연히 이루어졌을 뿐이다. 프레온 가스를 제조한 거대 화학 기업들은 그 어떤 금지나 규제도 저지했고, 실제적인 피해 증거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지상에 기반을 둔 연구와 위성에 의거한 연구들이 오존층이 어느 누구도 예상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대단히 더 얇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했습니다. 그것은 프레온 가스 생산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국제 협약인 몬트리올 의정서로 이어졌다. 그 이후에도 가장 거대한 프레온 가스 제조업체인 듀퐁은 경쟁 기업들보다 우위에 서게 할 대체 물질의 개발이 잘 진행되고 있을 때가 되어서야 생산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프레온 가스 사용이 "프레온 가스에 가격을 매김"으로써 그리고 "프레온 가스 배출권 거래제"에 의해서 감소된 것이 아니라, 생산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의무적인 프로그램에 의해,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금지에 의해 감소되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작동했던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오존층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과정은 시작되었습니다. "시장 메커니즘들"에 의해 온실 가스 배출을 감축하려고 한 이십 년 동안의 실패한 시도 후에 저는 몬트리올 의정서 접근 방식을 적용해야 할 시기가 이미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훨씬 더 중요한 한 가지 교훈은, 기업들은 언제나, 지금 생명이 걸려 있을 때에도, 자체의 단기 수익을 가장 우선시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듀퐁과 다른 화학 기업들은 치명적인 생산품들로부터 수익을 올릴 권리에 대한 그 어떤 규제도 차단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담배 업체와 화석 연료 업체들에서 본 적이 있는 모든 논변과 책략을 전개했습니다. 프레온 가스가 화석 연료만큼 자본주의 전체에 중요한 것이었다면, 지금쯤 오존층은 파괴되었을 것입니다.

 

<<인류세를 직면하기>>에서 당신은 화석 연료가 자본주의적 발달에 필수적이고, 그래서 그것을 "화석 경제"라고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현존하는 한 변화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환경 파국을 멈출 "혁명을 기다려"야 합니까?

 

만약 당신이 "자본주의적 틀 안에서 행성적 비상 사태에 대한 영구적이고 인도적인 해결책이 가능한가?"라고 묻고 있다면, 그 대답은 거의 확실히 아니오입니다. 제 책에서 주장하듯이, 화석 연료는 자본주의 체계를 그대로 둔 채 자본주의로부터 벗겨질 수 있는 껍질이 아닙니다. 화석 연료는 그 체계의 모든 양상에, 모든 산업에 묻어 들어가 있고, 그래서 전례 없는 전지구적인 경제적 붕괴를 제외하고는 그런 변화의 전망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화석 연료가 계속 연소된다면 그 결과는 환경적으로 파국적일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세계의 인구 가운데 매우 소수는 살아남을 것이고 심지어 번영할 것입니다만, 대부분은 삶의 조건에 있어서 급진적인 악화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최선의 결과입니다. 현재의 체계를 "성장하거나 아니면 죽어"야 할 필요가 없는 체계―제가 생태사회주의라고 부르곤 하는 것―로 대체할 수 없다면, 인류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혁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행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자본은 전능하지 않는데, 여러 세기의 경험이 입증하듯이, 충분히 강한 대항 세력을 직면하게 되면 자본은 개혁을, 심지어 실질적인 개혁을 억지로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아직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행로를 정지시키거나 반전시킬 만큼 충분히 강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가장 광범위한 가능한 범위의 사람들을 통일시켜 현재의 권력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환경적 위기에 대한 무대응의 정치적 및 경제적 비용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지구와 인류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저는 더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즉각적인 이득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파이프라인이나 프래킹을 멈출 수 있거나 온실 가스 배출을 제약할 수 있는 운동을 구축할 수 없다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는 엄청나게 더 어려운 과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겠습니까? 그것은 포괄적인 사회적 변화를 위한 더 광범위한 운동을 구축할 수 있는 그런 캠페인들에 참여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