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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카우프만: 오늘의 오피니언-과학이 환원적 유물론의 주술을 깰 필요가 있는 까닭

 

과학이 환원적 유물론의 주술을 깰 필요가 있는 까닭

Why science needs to break the spell of reductive materialism

 

―― 스튜어트 카우프만(Stuart Kauffman)

 

우리는 모두 우리의 근대 문명에서 무언가 대단히 부족하다고 감지한다. 그것은 영성의 부재인가? 부분적으로는.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넘어서는 탐욕스러운 물질주의? 그렇다, 우리는 후기 자본주의라는 호랑이를 타고 있는데, 이 유한한 행성에서 흔히 우리에게 필요 없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하며 구매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볼 수 없는데, 부분적으로는 불필요한 과학주의에 의해 차단당한다.

 

현대 물리학의 주요한 틀은 수반하는 법칙들의 틀이다. 주요한 이미지는 당구대 위 당구공들의 위치와 운동량의 가능한 모든 초기 조건들의 집합과 경계 조건으로서의 당구대이다. 그 다음에, 미분 방정식 형태의 아이작 뉴턴의 법칙들을 고려하면, 당구공들의 결정론적 궤적들을 추정할 수 있다. 과학의 수행 방식에 대한 우리의 모형은 새로운 결과를 추정하고, 그것을 시험하며, 다양한 기준에 의해 그 결과를 수용하거나 거부한 다음에 이론을 유지하거나 수정하는 것이다.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원했었을 것처럼, 부분적으로는 연역으로서 진전한다.

 

내 목적은 환원적 유물론의 이런 패권 및 과학적 정신의 장악 그리고 근대성에서 전적으로 잘못 놓여진 과학주의의 광범위한 추출을 분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과학은 스키엔티아, 즉 지식이다. 존재와 생성이 모든 생명과 우리 인류에 더 근본적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살아 있으며, 생성하는 생물권 속에서 살아 있다. 돌발적인 멸종 사건들과 지금까지 생존한 적이 있는 모든 종의 99.9%가 사라졌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생물권은 계속해서 번영한다. 인간 역사에 대한 은유 이상의 생물권의 이런 번영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신화적 구조를 넘어서는 어떤 신화적 구조를 시사하기 시작한다.

 

내 논증의 중심에는 한 가지 성가신 의문이 있다. 빅뱅 이래로 왜 우주는 복잡해졌는가? 나는 최소한 그 대답의 일부는, 더 복잡한 사물들과 연계 과정들이 생성되며, 그리고 서로 결합하여 사물들과 과정들의 더 복잡한 혼합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음에 따라, 가능한 사물들과 연계 과정들의 공간은 엄청나게 더 확대되고, 우주는 모든 가능한 것들을 만들어낼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저 유기화학의 원자들, 즉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인 그리고 황(CHNOPS)를 생각하자. 이제, 예컨대, 분자 당 100,000개 이하의 원자를 갖는, CHNOPS로 이루어진 모든 가능한 분자들을 생각하자. [...] 우리는 분자 당 100,000개까지의 원자들을 갖는 CHNOPS을 함유하는 가능한 분자들의 수를 어떻게 세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것들을 모두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을 알기는 쉽다.

 

단백질은 펩타이드 결합에 의해 연결된 아미노산들의 열이다. 진화된 생명에는 20가지 형태의 아미노산들이 존재한다. 전형적인 단백질은 아마도 300개의 아미노산들이 연결된 것이고, 몇몇 단백질은 수천 개의 아미노산들이 연결된 것이다. 200개의 아미노산으로 가능한 단백질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겠는가? 글쎄, 200개의 위치 각각에 대해 20개의 선택지가 존재하고, 그래서 200개의 아미노산들이 연결된 단백질의 가능한 수는 20200개 또는 10260개이다. 이것은 분자 당 100,000개의 원자를 갖는 CHNOPS로 이루어진 분자 종의 매우 작은 부분집합이다.

 

우주는 나이가 137억 년이고 대략 10^{80}개의 원자들이 존재한다. 우주에서 가장 짧은 시간 척도는 10^{-43}초라는 플랑크 시간 척도이다. 우주가 200개의 아미노산들이 연결된 단백질을 단일한 플랑크 순간에 하나씩 만들어내는 데 10^{80}개의 모든 원자들을 병렬적으로 사용할 뿐이라면, 200개의 아미노산들이 연결된 모든 가능한 단백질들을 딱 한 번만 만들어내는 데에도 우주의 역사가 10^{39}번 반복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CHNOPS와 100,000개의 CHNOPS 원자들로 이루어진 모든 분자 종을 고려하자. 그것들을 모두 만들어내는 데에는 우주의 역사가 얼마나 많이 반복되어야 할지 알 수 없다.

 

방금 언급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200개의 아미노산들이 연결된 단백질들과 분자 당 100,000개 이하의 원자들을 갖는 모든 가능한 CHNOPS 분자들을 생각함에 따라 우주는 결코 그 모든 것들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가능한 것들의 공간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의 공간보다 엄청나게 더 클 때 역사가 진입한다.

 

그 다음의 문제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분자 당 한 개의 원자, 두 개의 원자, 세 개의 원자, 네 개의 원자, n개의 원자, 100,000개의 원자로 이루어질 수 있는 모든 CHNOPS 분자들을 생각하자. 분자 당 원자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가능한 분자들의 공간은 급격히 확대된다. n개의 CHNOPS 원자들로 이루어진 가능한 분자들의 공간을 n개 원자들의 CHNOPS 분자들에 대한 위상 공간으로 부르자. n이 증가함에 따라 그런 위상 공간은 엄청나게 확대된다. 결과적으로, 우주의 수명 동안, n이 증가함에 따라 그런 위상 공간은 훨씬 더 드문드문하게 선택될 것이다. 우주는 두 개의 원자로 이루어진 모든 CHNOPS 분자들을 만들어낼 것이지만, 100,000개로 이루어진 모든 분자들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탐구를 결정론적으로 수행할 방법은 전혀 없다. 고전 물리학의 핵심에서 환원적 유물론은 실패할 수 있다. 스키엔티아는 실패하고, 이성은 실패하며,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문이 열린다. 우리는 창조적 우주 속 인간으로서 해방되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 함께 그리고 자연과 함께 창조해야 하지만, 우주와 우주 속 인간의 바로 그 창조성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함께 창조할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인도할 수 있는가? 우리의 지침은 우리의 활기를 전적으로 반영하는 새롭게 정초된 신화적 구조― 창조적 우주 속 인류, 생물권, 인간 개체 그리고 전적으로 영위되고 계속 생성되는 사회적 삶―일 수 있다. 그 꿈은 다양성인데, 지구 전역의 30여 개의 문명이 각각의 뿌리를 존중하고 변화가 우아하게 전개될 수 있도록 충분히 부드럽게 엮힘에 따라 인간이 되는 더 많은 방식들이 존재하게 된다. 전지구적으로 엮히게 되는 우리 문명은 항상 알지 못하는, 직면하는,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듯이, 인간성이라는 뒤틀린 목재를 창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