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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오늘의 인터뷰-다에시와 "파괴의 시대"에 관하여

 

다에시와 "파괴의 시대"에 관하여

On Daesh and "the Age of Disruption"

 

――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 & 마르게리타 나시(Margherita Nasi)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에게 "전쟁은 경제적인 것이다". 고용의 붕괴는 결국 폭력으로 이어지는 절망을 초래한다. "경제적 가치의 근본적인 반전이 없다면 미래는 없다"고 스티글레르는 설명한다.

 

MN: 11월 13의 공격 이후에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은 "우리는 전쟁 중에 있다"고 역설합니다. 당신은 그런 전쟁에 처해 있다고 인식합니까?

 

BS: 그렇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 "우리"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전쟁 중에 있지만, 저는 아닙니다. 전쟁은 경제적인 것이고, 그것은 그들의 전쟁이며 그것은 저를 비롯하여 많은 사상자를 낳습니다. 저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는데, 테러 행위자들 때문이 아니라 제 자식들의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암시하듯이, 이것은 다에쉬에 맞서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를 내전으로 끌고 가는 전지구적 경제 전쟁입니다.

 

고용이 붕괴할 것인데, 특히 청년층에서 그럴 것이고, 그래서 절망이 폭력을 낳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희망의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11월 13일의 공격은 자살 공격이었는데, 이것은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자살은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청년층 사이에서 그렇습니다.

 

사르코지와 올랑드 둘 다 청년층의 장래에 대한 어떤 종류의 전망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맞서서 전쟁 중에 있는 것은 이런 어리석음, 이런 광기입니다. 또한 제 자신의 내부에서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희생양을 찾아내는 경향, 생각하지 않고 유념하지 않는 경향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야만이고, 그것이 바로 다에쉬가 원하는 것입니다. 내전을 초래하는 것. 우리가 우리 정치를 바꾸지 않는다면 더 많은 공격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파괴의 시대에(Dans la Dusruption)"라는 제 다음 책의 맥락입니다.

 

MN: 파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BS: 파괴는 실리콘 밸리에서 발달된 전략의 토대인 혁신의 가속화라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구조들을 파괴하기 위한 모형들을 사회에 부과하여 공적 권력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 사회보다 더 빠르게 나아가는 운동입니다. 그것은 적들을 마비시키는 전략입니다. 그 책에서 저는 이슬람주의자가 된 사담 후세인 정권의 전직 관리들을 포함하는 집단을 규정하는, [전직 외교관이자 저널리스트] 이그낭스 르베리에(Ignance Leverrier)가 요약했듯이, 아부 바크르 알나지(Abu Bakr Al-Naji)가 서명한 텍스트를 분석합니다. 그것의 일종의 다에쉬 매뉴얼인데, 프랜차이즈를 세우기 위한 규칙들을 상세히 기재한 기업 바이블들의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다에쉬 행동가들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혼돈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래서 어떤 종류의 권위에 대한 욕구를 활용해야 합니다.

 

저는 이 전략을 조세 체계에 관한 보고로 유명해진 전직 과세 조정관인 니콜라 콜랭(Nicolas Colin)에 시작된 "야만인들이 오고 있다(Les Barbares attaquent)"라는 웹사이트의 전략과 비교하는데, 그곳에서 그는 '아포칼립스의 네 기수'로 서술하는 디지털 기업들, 이 경우에는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그리고 애플을 가리키는 약어]를 다루는 데 있어서 조세 체계의 부적절성을 강조합니다. 그 이후로 줄곧 그는 공무에서 그가 매우 유해한 것으로 서술한 경제로 옮겨 가서 프랑스인들에게 파괴를 실행하기 위한 자금을 모금하는 투자 기금을 창설합니다. 그런데 GAFA의 전략을 반복함으로써 그는 그것들의 생태계를 확대하고 유럽의 식민화를 심화시킬 수 있을 뿐인데, 우버(Uber) 같은 새로운 모형들을 통해서 교통, 주택, 교육―모든 부분들―을 파괴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파괴적 실천들은 사회적 균형을 무너뜨리는데, [독일인 철학자] 테오도르 W. 아도르노가 1944년에 문화 산업들과 관련된 "새로운 형태의 야만"에 관해 언급함으로써 예상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다에쉬와의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선포는 대단히 위험해졌고 우리가 다에쉬와 함께 공동으로 생산한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면제받는 한 가지 방식입니다.

 

MN: 그러므로 이런 급진화는 극단적 자유주의(ultraliberalism)의 폐허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BS: 그렇습니다. 우리는 급진주의를 종교의 문제로 전환시킵니다. 그리고 이것은 터무니 없습니다. 급진 이슬람의 대부분의 신참자들은 어떤 종교적 문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해당 종교가 아니라 절망입니다. 2002년 3월에 낭트르 의회 의원 8명을 살해한 리샤르 뒤른(Richard Durn)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느낌에 관해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예고하는데, 그는 이런 행동으로 누군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MN: 2012년에 당신은 전지구적 경제 평화 협정에 대한 요청을 개시했는데, 이것은 여전히 야만을 근절시키기 위한 가능한 현대적 해결책입니까?

 

BS: 우리는 유럽에서 논쟁을 전개하고 상황을 정면으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웹의 탄생 이래로 우리는 줄곧 패배하고 있습니다. GAFA에 의해 실행되는 그런 종류들의 파괴에 의해 착취당한 디지털 기술들은 기후, 대기 그리고 정신적 견지에서 인류세―인간이 주요한 지질학적 인자가 되어버린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증가되고 있는 환경적 유독성을 두드러지게 했습니다.

 

경제적 가치의 근본적인 반전이 없다면 어떤 미래도 없습니다. 지속 가능한 가치 형태들을 산출하는 경제로의 전환만이 다음 주에 개최되는 COP21에서 다루게 되는 난제들을 극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파괴적이고 자포자기적인 아메리카 모형에 맞추기보다는 새로운 유럽 정책을 개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완전히 파괴적인 데이터의 경제를 발달시키기보다는 실행 가능한 거시경제적 모형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웹을 발명해야 합니다. 이것들은 12월 14일과 15일에 퐁피두 센터에서 개최될 "새로운 산업적 세계에 관한 대화"의 주제들입니다. 지구를 위한 진정한 미래를 계획함으로써만 우리는 다에시와 싸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절망과 싸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