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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히크먼: 오늘의 에세이-기술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기업 지배로서의 기업주의

 

기술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기업 지배로서의 기업주의

Technocapitalism: Corporatism as Business Governance of Society

 

―― 스티븐 히크먼(S.C. Hickman)

 

기업주의(corporatism)는 사회에 군림하는 기업체들의 권력이다. 우리의 사회적 관계들,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생명 자체의 기업 식민지화는 진행 중인 기획인데, 그것은 인간 사회, 자연 그리고 지구를 식민지화한다. 기업주의는 우리를 격하시켜서 우리의 가장 소중한 인간적 자질들을 상품으로 전환시킨다. 인간 가치들의 이런 격하는 기술 자체에 기반을 두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기업주의의 특징과 기술에 대한 그것의 권위주의적인 통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것은 이전의 어떤 형태들보다 더 영리하고, 탐욕적이며, 공격적인 새로운 종류의 기업주의로서 공적 영역의 모든 양태들을 통제하고자 하면서 권력과 이윤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제국주의적이다.

 

기술자본주의(technocapitalism)는 기업 권력과 그것에 의한 기술적 창의성의 착취에 대체로 근거를 두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로 규정된다. 무형의 인간적 자질인 창의성은 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화신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기업 권력과 이윤은 새로운 발명과 혁신들을 생성해야 하는 연구 체제들을 통한 창의성의 상품화에 불가피하게 의존한다. 이런 체제들과 그것들이 묻어 들어가 있는 기업 장치가 기술자본주의와 갖는 관계는 공장 체계와 그것의 생산 체제들이 산업자본주의와 가졌던 관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원료, 생산 하드웨어, 자본 그리고 물리적 노동 작업의 형태를 취한 산업자본주의의 유형의 자원들은 무형의 자원들, 즉 연구 하드웨어, 실험 설계 그리고 창의적 적성을 갖춘 재능 있는 개인들로 대체된다. 따라서 이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에 기술의 생성은 문화적 속성들의 포섭만큼이나 기술적 기능성에 의존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러므로 기술자본주의의 기술적 합리성은 기법(기술의 합리적 특질)을 사회적 지배(기업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특질)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통제는 연구가 수행되는 방식과 연구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를 관장하는 규칙과 관행들의 형식으로 코드화된다.

 

실험주의(experimentalism)는 기술자본주의의 추동력이다. 실험주의는 자체의 강박 충동, 착취 도식 그리고 다양한 병리들로 이 새로운 시대의 에토스를 떠받친다. 여기서 실험주의는 상업적인 것을 포괄적 목적으로 삼는 기술적 및 과학적 탐구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것 자체를 위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는 것을 목적 자체로 삼는 실험법이라기보다는 무엇보다도 이윤과 권력을 위한 실험법이다.

 

기술자본주의의 기술들

 

단백체학(proteomics), 유전체학(genomics), 생명약제학(biopharmaceutical) 그리고 생명의학(biomedicine)을 비롯한 생명기술의 거의 모든 분야, 나노기술이라는 신흥 분야와 그것의 모든 수많은 가능한 미래의 의학적 및 기계적 응용, 분자 컴퓨팅, 생명정보학(bioinformatics) 그리고 생명로봇공학(biorobotics)은 이런 자본주의의 화신을 대표할 분야들의 몇 가지 사례일 뿐이다.

 

실험주의의 사회화는 사회 전체가 기술자본주의의 실험실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물리적인 견지에서뿐 아니라, 범위, 지배 그리고 세력권의 견지에서도 실험 과학의 전통적인 실험실들과 확실히 전적으로 다른 실험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질서의 상업적 강박 충동을 통해서 사회의 모든 것이 강제적으로 관여하게 되는 실험실이다. 본질적으로 사회의 모든 것은 기업 실험주의의 기니피그가 된다. 여기서 사회적 매개는, 예를 들면, 새로운 지식과 창의성의 생성을 자극하는 그런 종류의 관계들을 통한 사회의 개입을 가리킨다. 또한 그 술어는, 연구 창의성이 기술자본주의의 자원으로 응용될 때마다 그것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관계들에 대한 지배를 가리킨다. 실험주의의 연결망들은 연구와 연구를 통해 얻어지는 새로운 지식의 소통에 대단히 집중되어 있다. 창의성은 후자를 위한 기초 자원이다. 이런 연결망들의 사회적 매개는, 그것들이 조사, 수선 또는 시험에 대한 동기와 상상력 그리고 호기심을 재생하는 한에 있어서, 창의성을 자극하는 주요한 힘이다.

 

가치를 추출하는 것―진리를 발견하기보다는―에 있어서의 성공이 실험의 최고 목적이 된다. 그러므로 연구 조사 창의성으로부터 가치를 추출하는 것이 새로운 "진리"가 된다. 기업 실험주의에 봉사하는 과학은 단순하고 자유로운 진리 추구 자체에 관여하지 않는다. 도대체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진리 추구는 더 우선하는 것, 즉 모든 다른 가능한 것들에 군림하는 상업적 가치―더 클수록 더 좋다―의 달성에 종속된다. 생산품이 아니라 오히려 특허 지식을 산출하는 기업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지적(이 경우에는 기술적) 재산 청구권을 설정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것들의 수익은 어떤 생산품이나 용역에서 특허 등록이 된 유전 정보를 사용할 다른 기업체들로부터 특허권 사용료를 수령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기업주의는 주로 창의성의 상품화를 관리하며, 그리고 창의성이라는 자원의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특질 때문에 독자적으로 그것을 재생산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사실상 사회만이 창의성을 재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 상품화(기업 기능)와 재생산(사회적 기능) 사이의 이런 분리가 새로운 시대의 독특한 특징이다.

 

현실을 자체의 진행 중인 의제들에 적합하게 만들기 위한 기업주의에 의한 현실의 사회화와 제조는 실험주의가 점점 더 전체 사회들에 대한 목적들을 설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공학, 생명약제학 그리고 생명의학 사이의 맹아적인 수렴은, 대량 소비 습관의 조작뿐 아니라 기업 권력과 기업의 경영적 우선 순위에 순종하는 개인들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개체의 유전자 구성을 기업 필요에 적합하게 조정할 수 있는 경악할 만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인성과 태도를 기업의 우선 순위에 적합하게 공학적으로 조작하는 "약물 치료"는 생명약제학 산업의 팽창과 함께 확산될 개연성이 높다.

 

교습 실험실과 교실 같은, 기술과 과학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교육적 하부구조의 재조정이 이런 새로운 기업주의의 일부가 되고 있다. 기업과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관들은 새로운 기업주의 문화에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는 대안적인 가짜 교육 프로그램들을 정리하는 동시에 자체 의제들이 기업주의의 요구 사항들을 충족하도록 재조정할 것이다. 더 오래된 자유 학예 프로그램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서서히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더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교습 계획들로 대체될 때 이런 점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순응하지 않는 교육 기관들은 자체의 재원과 조정 장려금들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기업주의에 대한 이런 종류의 공적 보조금은 거의 틀림없이, 세금 감면, 수출 보조금, 그리고 흔히 부패한 규제 완화 같은, 매체에서 흔히 인용되는 모든 다양한 재정적 "장려책"보다 더 중요해졌다. 하부구조적 축적의 효과는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되는 장기적인 것이고, 그래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새로운 시대에는 이윤이 이 새로운 사회적 실험주의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창의성을 추동할 것이다. 둘째, 기업이 수지 맞는 연구를 위한 의제를 설정함에 따라 기술과 과학 사이의 경계는 체계적으로 제거될 것이다. 세째, 창의성 자체로부터 가치의 추출이 이루어진다. 실험주의가 가치를 추출할 수 있는 자체의 능력을 개선함에 따라 체계화는 실험주의를 하나의 사회적 인공물 이상의 것으로 변환시킨다. 가치가 추출되기 위해서는 창의성을 착취해야 한다. 창의성은 고유하게 사회적인 무형의 자질이기 때문에 그것의 착취를 촉진함으로써 체계화는 실험주의를 사회적 관계들에 더 의존하게 만든다.

 

수아레즈-빌라스(Suarez-Villas)가 말하듯이, 실험주의의 진전은 사회를 기술자본주의의 실험실로 변환시킬 우려가 있다. 특히 실험주의와 기업 권력 사이의 연계가 점점 더 강해져서 그것의 세력권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붕괴시키려고 하는 시기에, 실험주의에 여전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인간 실존의 어떤 양태도 이 현상의 세력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막 우리는 이 새로운 자본주의 단계의 개시를 목격하기 시작했을 뿐인데, 이 단계의 자본주의는 이전 판본들보다 더 억압적이고 더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 이십일 세기는 이런 궤적과 그것의 진전에 가까스로 이의를 제기하는 세력들에 관한 이야기를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