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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샤비로-인터뷰: 가속주의에 관하여

 

미친 듯이 소비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종식시킬 최선의 길인가?

Is Consuming Like Crazy the Best Way to End Capitalism?

 

―― 찰리 앰블러(Charlie Ambler)

 

[...]

바이스(VICE): 가속주의(acclerationism)는 저를 당황하게 만들지만,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조금 더 말해 주시겠습니까?

 

스티븐 샤비로(Steven Shaviro): 넓게 규정하면, "가속주의"는 유일한 출구는 통과하는 길이라는 관념입니다. 현재의 사회적 및 경제적 질서를 넘어서서 탈자본주의적 미래에 이르기를 바란다면, 필경 더 오래되고 더 순수한 것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모든 지저분한 합병증을 밀어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가속주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같은, 좌파 진영에서 현재 인기가 있는 어떤 관념들과 신기술에 대한 러다이트적 증오를 거부합니다. 그 대신에 가속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가장 선진적인 모든 기술을 수용하여 용도 변경하라고 촉구합니다.

 

컴퓨터 기술이 수백 만 개의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면, 최선의 대응책은 그 일자리들을 복원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주거비나 신용 카드 청구액의 크기에 관해 항상 걱정하지 않은 채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부를 확산시키는 것―1퍼센트가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 탈취해버린 것을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VICE: 매혹적입니다. 저는 항상 가속주의가 기본적으로 가장 강력한 반자본주의자는 대실업가라고 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계를 더 빠르게 밀어붙이고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것이 그것을 파괴하는 데 월씬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까? 어떻게 부의 재분배가 가속주의적 운동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까?

 

SS: 가속주의의 다양한 변양태들이 존재합니다. 한 극단의 경우에, 가속주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수록 혁명이 모든 것을 전복시킬 전망이 더 좋아진다는 관념을 수용할 것입니다. 제게 이것은 명백히 어리석은 듯 보이고, 그래서 저는 많은 가속주의자들이 실제로 그것을 옹호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훨씬 더 명석하게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괴롭히는 모순들이 결국 노동자와 자본가들 사이의 투쟁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투쟁이 결국 공산주의를 확립할 것이라고 희망했지만, 그것이 "경합하는 당들의 상호 파괴"로도 귀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VICE: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SS: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긴장과 압박 때문에, 자본주의가 아무튼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는 파국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극복이 세계 체계로서의 자본주의의 바로 그 발달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이것은 가속주의적 견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기계주의적이거나 예정된 방식으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의 재분배가 가속주의와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자면,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같은 사람이 부의 재분배를 강제하기 위해 전지구적 과세를 옹호하는 주장을 펼칠 때, 그는 자본주의의 자기파괴적 과잉으로부터 자본주의 체계를 구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슬라보예 지젝이 주장했듯이, 부자들은 결코 그런 세금을 자발적으로 지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세금을 제정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다른 변화들, 사실상 자본주의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급진적인 변화들이 수반될 것입니다.

 

VICE: 대학에서 단순화된 마르크스주의를 많이 받아먹었던 사람에게 이것은 매혹적입니다. 그 주제에 관해 더 읽을거리를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SS: 가속주의에 관한 중요한 에세이들에 대해서는 로빈 맥케이(Robin Mackay)와 아르멘 아바네시언(Armen Avanessian)이 편집한 <<#Accelerate-The Accelerate Reader>>라는 책을 읽어 보시고, 가속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벤자민 노이스(Benjamin Noys)의 <<유해한 속도(Malign Velocities)>>라는 책을 읽어 보십시오. <<속도 제한 없음: 가속주의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No Speed Limit: Three Essays on Accelerationism)>>라는 제가 저술한 그 주제에 관한 얇은 책이 유니버시티 오프 미네소타 프레스에서 막 출판되었습니다.

 

VICE: 좋습니다. <<사물들의 우주(The Universe of Things)>>라는 당신의 다른 책은 무엇에 관한 책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SS: 그 책은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에 관한 책입니다. 사변적 실재론은, 우리와 별도로, 자체적으로 그리고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대로의 우주를 고찰하는 것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할지 고찰하고자 하는 최근의 철학적 운동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세계에 대한 우리 지각이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그것은, 개체적 층위에서도, 그리고 일반적으로 진화적 견지에서도, 우리 자신의 욕구와 이해 관계에 의해 주조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중요한 것을 지각하며, 그리고 흔히 그렇지 않은 것은 지각하지 못합니다.

 

사변적 실재론은 우리가 그것들에 부과하는 의미와 분류들과 별도로 세계 속 사물들에 접근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묻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이것을 행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것인지 묻습니다.

 

VICE: 겸손에 대한 인류 전체의 연습인 듯 들립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것에 열중하게 되었습니까?

 

SS: "사변적 실재론"은 어떤 철학 학술회의가 그런 제목으로 개최된 2007년에 학술적 술어가 되었을 뿐입니다. 이 술어 아래 모인 사상가들은 서로 매우 다르며, 그리고 흔히 분명한 의견 불일치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관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무생물 존재자들도 비롯하여 비인간적 존재자들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이 모든 존재자들이 어떻게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이거나 우리 행위에 대한 걸림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행위소"―프랑스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가 부르듯이―인지 고찰하도록 촉구합니다. 그것들은 독자적인 경향, 욕망 그리고 욕구를 갖추고 있습니다.

 

VICE: 그것은 역사상 이 시점에 특별히 중요합니다.

 

SS: 그렇습니다! 임박한 생태적 파국의 시기에 우리가 우리와 함께 세계를 공유하는 존재자들의 현존을 가능한 한 철저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