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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 가타리: 오늘의 인용-철학은 개념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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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개념의 친구이며, 개념의 가능태이다. [...] 철학은 개념들을 창출(creer)해내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친구란 철학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친구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창조자와 그 이면의 단일성 속에서, 친구의 가능태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바로 개념의 행위라는 말인가? 언제나 새로운 개념들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곧 철학의 목표이다. 왜냐하면 개념은 반드시 그것을 가능태로서 갖고 있는 자, 그 개념의 힘과 권한을 소유하는 자로서의 철학자에게 되돌려지도록 창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본령이 정신적인 실체들을 존재하게 하는 데 있으며, 철학적 개념들 역시 '감수성'(sensibilia)인 만큼, 이러한 창조가 차라리 감각과 예술로서 말해진다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비록 엄밀히 보자면 개념들을 창조할 수 있는 역할은 오직 철학에만 귀속된다 하더라도, 과학, 예술, 철학, 이 모두를 창조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개념들은 천상의 실체처럼, 이미 다 만들어진 채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개념들에게 천상이란 없다. 그것들은 고안되고 만들어지거나 흑은 창조되어야 하는 것으로, 그것들을 창조한 자들의 서명 없이는 그 무엇도 아닌 그런 것들이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철학의 과업을 규정한다: "더 이상 철학은 주어진 대로 개념을 받아들여 그것을 갈고 닦아 윤을 내는 일로 자족할 수는 없다. 철학은 우선 개념들을 만들고, 창조하고, 확고히 세워서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하도록 설득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지금까지는, 마치 경이로운 어떤 세계에서 툭 떨어진 천부의 재능인양 저마다 모두 자신의 개념들을 확신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터무니없는 확신은 불신으로 바뀌어야 하며, 그 스스로 창조한 개념들이 아닌 만큼, 철학자가 가장 의심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개념들이어야 한다[...]. 플라톤은 이데아(Idees)들을 관조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지만, 이보다 앞서 그는 우선 이데아의 개념을 창조해야만 했을 것이다. 아무런 개념도 창조한 바가 없다거나, 자기의 개념들을 스스로 창조하지 않았다고 일컬어지는 철학자란 과연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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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개념들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데카르트의 코기토, 라이프니츠의 단자, 칸트의 조건, 셸링의 힘, 베르그송의 지속 등, 누군가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다. [...] 어느 경우에나, 마치 문체의 요소처럼, 반드시 그러한 단어 혹은 그러한 선택이 아니면 안 된다는 불가피론이 있게 마련이다. 개념의 명명은 철학 고유의 어떤 취향을 요구한다. 폭력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바로 이러한 취향이 어휘 하나 뿐만 아니라 구문까지도 고귀함 혹은 상당한 미의 수준에까지 도달하게 함으로써 언어 체계에 철학언어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념들은 아무리 그 시대가, 만든 사람이, 명명된 이름이 결정적이라 할지라도, 소멸되지 않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지닌 채, 개선, 대체, 변화라는 구속들에 순응하기 마련이다. [...] 개념창조라는 독점적 권한은 철학에 하나의 기능을 확인시켜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우월성이나 특권이 철학에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방식들로도 사유하거나 창조할 수 있으며, 과학적 사고처럼 개념으로는 표출되지 않는, 이데아 창출의 또 다른 양식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개념들을 창조하는 행위가 과학이나 예술의 행위와 다르다 한들, 그것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라는 문제로 되돌아온다. 왜 개념들을 창조해야 하는가? 무슨 필요로, 어떤 효용을 위해 언제나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가? 무엇을 하려고? 철학의 위대함에 걸맞게, 그것은 아무런 곳에도 소용이 닿지 않는 것이라는 식의 답변은 젊은이들에게조차 더 이상 웃음거리가 되지 못할 작위에 불과하다. 어쨌든 우리는 한번도 형이상학의 죽음이나 철학의 초극을 문제삼아 본 적이 없다. 그것들은 부질없거나 듣기 거북한 허튼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오늘날 체계들의 파산을 언급하지만, 사실 변한 거라곤 오로지 체계에 대한 개념들 뿐이다. 개념들을 창조할 시간과 장소가 있는 한, 거기서 행해지는 작업은 언제나 철학이라 불리워질 것이며, 설사 그것에 다른 이름이 부여될지라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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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 들뢰즈(Gille Deleuze) &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 <<철학이란 무엇인가>>(이정임 & 윤정임 옮김, 현대미학사, 1995), pp.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