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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오늘의 인용-삶은 죽음보다 더한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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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좋습니다. 어쩌면 댁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요. 자, 내 복음은 이런 겁니다, 목사님. 나는 어둠을 갈망합니다. 죽음을 달라고 기도해요. 진짜 죽음을. 죽은 다음에 내가 살아서 알았던 사람들을 또 만나야 하는 거라면 도무지 어째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건 최악의 공포가 되겠지요. 최악의 절망이. 만일 내가 어머니를 다시 만나 그 모든 걸 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게다가 이번에는 고대해 마지않는 죽음이라는 전망도 없는 상태라면? 자, 그건 최악의 악몽이 될 겁니다. 그야말로 카프카지요.

 

흑: 젠장, 교수 선생. 선생을 낳아준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다는 건가?

 

백: 네, 보고 싶지 않습니다. 댁의 속이 뒤집힐 거라고 말했잖아요. 나는 죽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기를 바라요. 영원히. 그리고 나도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바라요. 댁은 물론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없겠지요. 댁이 죽은 자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없는 건 존재가 없으면 공동체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없다.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은 따뜻해집니다. 정적, 암흑, 고독, 평화. 그 모든 것이 심장박동이 한 번만 뛰고 나면 찾아온다니.

 

흑: 젠장, 교수 선생.

 

백: 마저 들어세요. 나는 내 정신 상태가 어떤 염세적 세계관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게 세계 자체라고 생각해요. 진화의 결과, 지능을 가진 생명은 어쩔 수 없이 궁극적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 한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무용성입니다.

 

흑: 음.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 거라면 선생은 지금 멍청해 빠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두 자살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거로구만.

 

백: 네.

 

흑: 농담 따먹기 하는 게 아니고?

 

백: 아니요. 농담 따먹기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진실로 있는 그대로 본다면. 자신의 삶을 진실로 있는 그대로 본다면. 꿈이나 환상 없이 본다면. 나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빨리 죽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를 하나도 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흑: 젠장, 교수 선생.

 

백: (차갑게) 나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걸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봐요. 주위를 좀 둘러봐요. 보이지 않나요? 고통에 찬 사람들이 외치고 악을 쓰는 소리가 하느님의 귀에는 가장 기분좋은 소리일 게 분명합니다. 나는 이런 토론이 혐오스럽습니다. 애초에 존재를 믿지도 않는 것을 끝도 없이 욕하는 것 외에는 아무 낙이 없는 시골 무신론자가 떠드는 것 같잖습니까. 댁이 말하는 유대라는 건 고통의 유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만일 그 고통이 단지 되풀이되는 것일 뿐 아니라 정말로 집단적이기까지 하다면 세상은 순전히 그 고통의 무게 때문이라도 우주의 벽에서 떨어져나와, 앞으로 밤이 몇 번이나 더 찾아올지 몰라도, 그 얼마 남지 않은 밤들을 거치며 우그러들고 불타올라 재조차 남지 않게 될 겁니다. 정의? 우애? 영생? 맙소사. 이보세요. 나한테 죽음에 대비하게 해주는 종교를 보여줘봐요. 허무에 대비하게 해주는 종교를요. 그럼 그 교회에는 내가 나갈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댁의 교회는 더 많은 삶에만 대비하게 합니다. 꿈과 환상과 거짓에만. 사람들 마음에서 죽음의 공포를 몰아내주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하루도 더 살지 않을 겁니다. 다음 악몽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면 누가 이 악몽을 원하겠어요? 모든 기쁨 위에는 도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모든 길은 죽음으로 끝나요. 아니면 더 나쁜 것으로. 모든 우정도 모든 사랑도. 고문, 배반, 상실, 고난, 고통, 노화, 모욕, 무시무시하게 집요한 병. 이 모든 것이 단 하나의 결말에 이릅니다. 댁도 또 댁이 좋아하게 된 모든 사람과 모든 것도 예외가 아니에요. 진정한 우애가 있는 셈이지요. 이게 진정한 유대입니다. 모든 사람이 종신회원이에요. 댁은 나의 형제가 나의 구원이라고 말하는 거지요? 나의 구원? 뭐 그럼 그 형제에게 저주가 있기를. 모든 형태와 형식과 종류의 저주가 있기를. 내가 그 형제에게서 나 자신을 보느냐고요? 네. 보지요. 내 눈에 보이는 그게 역겨운 겁니다. 내 말을 이해하겠습니까?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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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맥 맥카시(Cormac McCarthy), <<선셋 리미티드(The Sunset Limited)>>(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15), pp.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