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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의 제3권에서 스피노자는 감정을 자연 현상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라 감정을 탐구하기로 결심한다. 문화를 생태로 간주할 때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라투르 같은 사상가들은 근대성은 자연과 문화 사이의 분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연은 자체의 법칙 또는 원리들을 갖춘 한 왕국이고, 문화는 자체의 법률과 원칙들을 갖춘 다른 한 왕국이다. 일반적으로 자연은 인과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반면에 문화는 의미, 기호 또는 기표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이런 모형 하에서 자연을 탐구하는 것은 원인들을 탐구하는 것에 해당하는 반면에, 사회를 탐구하는 것은 의미를 탐구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자연과 문화 사이에 벽이 세워진다.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나는 문화를 자연의 한 현상으로 탐구하고 싶다[...]. 약간 다르게 표현하면, 문화를 생태로 생각할 때 나는 자연 속에 놓여 있는 사회를 생각하고 싶다. 이것은 내가 기호, 기표 그리고 의미 같은 사물들을 진화사회학자처럼 어리석게도 [...] 생물학과 신경학으로 환원시키고 싶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미는 의미로서 작동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는데, 의미는 여태까지 생물학에 의존하지만 생물학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의미는 자체의 원리들에 따라 의미의 자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 문화를 자연 속에 놓여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모든 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환원적 설명들을 제시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상이한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연과 문화 사이의 벽을 허무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는 단순히 의미가 아니라, 문화가 지금 모습대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모든 종류의 자연적 요소들도 포함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에 관한 생태적 관념들은 문화의 존재를 위한 어떤 물질적 조건이 존재한다는 테제을 전제하고 있다. [...] 사회에 관한 생태적 관념에서 문화의 물질적 조건은, 최소한 처음에는, 자체적으로 문화에 의해 산출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물질적 조건은 대기의 현존, 모든 종류의 식물과 동물, 영양분 또는 다른 종류들의 형태를 띤 에너지, 어떤 범위 내의 중력, 어떤 범위 내의 온도 등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문화도 더 넓은 물리적 세계와 접하면서 세계에서 물질을 끌어들이고 세계로 물질을 배출하는 물질적 존재자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비판 이론들에서는 흔히 언급되지 않는 이런 물질적 인자들이 사회적 관계들이 취하는 형태에 나름의 힘을 행사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 의미는 문화의 핵심적인 한 요소이다. 의미는 우리의 사회적 및 정치적 사유에서 탐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모든 종류들의 기술, 하부구조, 지리의 특징 그리고 [...] 더 방대한 자연 세계에서 구현되는 더 넓은 차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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