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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디거 샤크: 인터뷰-양자 베이즈주의에 관하여

 

뤼디거 샤크: 인터뷰-양자 베이즈주의에 관하여

Ruediger Schack on quantum Bayesianism

 

―― 루크 뮐하우저(Luke Muehlhauser)

 

루크: 푹스 등(2013)에서 당신과 공저자들은 당신이 사실상 칼턴 케이브스(Carlton Caves)와 크리스토퍼 푹스(Christopher Fuchs)와 함께 만들어낸 "큐비즘(QBism)"으로도 알려져 있는 양자 베이즈주의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제가 큐비즘에 관해 묻기 전에, <<우아함과 불가사의: 양자 인터뷰(Elegance and Enigma: The Quantum Interviews)>>에서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푹스를 비롯하여)에게 제시한 질문들 가운데 하나를 묻겠습니다. "양자역학의 토대에 관한 관심을 처음으로 자극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뤼디거: 양자 토대에 관한 제 관심의 시작은 "최대 엔트로피에 관하여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Where do we stand on maximum entropy)?"라는 에드 제인스(Ed Jaynes)의 논문 한 편과 <<미시물리학에서 거시물리학까지(Du Microscopique au Macroscopique)>>라는 로제 발리앙(Roger Balian)의 책 한 권을 읽은 것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저는 제인스의 논문을 통해 베이즈의 확률 이론에 입문했으며, 발리앙의 책으로부터 양자 상태를 베이즈의 확률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크: 큐비즘의 메시지를 간략히 요약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세계에 대한 그것의 실제적 함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뤼디거: 두 낱말로 표현하면 큐비즘의 메시지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큐비즘에 따르면, 양자역학은 어떤 행위자라도 자신의 경험을 조직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이론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양자역학 덕분에 어떤 행위자라도 자신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 경험에 대한 확률론적 기대를 수량화할 수 있습니다. 큐비즘은 양자 상태뿐 아니라 측정 결과도 그 이론을 사용하는 행위자에게 사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양자역학은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행위자에 독립적인 서술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초월적인 곳에서의 견해(view from nowhere)"를 배제합니다. 그러므로 양자역학과 과학 일반의 역할을 분명히 함으로써 큐비즘은 일반적으로 양자 토대와 관련된 모든 해석적 난제들을 벗어 납니다. 큐비즘에는 측정 결과 또는 측정 결과에 대한 확률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실재의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양자 측정은 세계에 대한 어떤 행위자의 작용으로서 결과적으로 전적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냅니다. 큐비즘은 이것이 미시적 체계들에 대한 실험실 측정뿐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끌어내기 위해 어떤 행위자가 세계에 가하는 어떤 작용에 대해서도 참이라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행위자―사람들―가 세계 속에서 근본적인 창조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양자역학에 대한 어떤 해석도 양자역학과 동일한 예측을 제시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큐비즘이 세계에 대한 실제적 함의를 품고 있다고 기대합니다. 양자 상태를 실재적인 것으로 여기는 해석들로부터 초점을 옮김으로써 큐비즘은 양자 형식 체계를 설명한 설득력 있는 물리적 원리에 대한 탐색과 새로운 물리학에 대한 탐색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개방합니다.

 

루크: 최소한 푹스는 모든 유한한 힐베르트(Hilbert) 공간 차원에서 SIC-POVMs (symmetric informationally complete positive operator-valued measures)가 존재하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큐비즘을 옹호하는 변론은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들었는데, 그것은 현재 미해결 문제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추리는 어떻게 됩니까?

 

뤼디거: 양자역학에 대한 하나의 해석으로서의 큐비즘은 SIC의 존재와 무관하며 SIC를 거론하지 않은 채 형식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큐비즘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물리학을 발견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 하나의 프로그램입니다. 더 직접적인 목표는 양자 형식 체계의 기반을 이루는 단순하고 설득력 있는 물리적 원리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큐비즘의 중요한 신조들 가운데 하나는 측정이 선재하는 결과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양자 형식 체계에서 이 관념은, 고전적 확률 합계 규칙은 수행되지 않은 실험의 결과들―필연적으로 가정적인―에 적용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단순한 표현을 찾아냅니다. 예를 들면, 이중 슬릿 실험에서 스크린 위의 측정된 입자 위치에 대한 확률 분포는 그 입자가 이쪽 슬릿 또는 저쪽 슬릿을 통과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가중 확률들을 더함으로써 얻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순전히 부정적인 진술이었습니다. 만약에 모든 유한한 힐베르트 공간 차원에서 SIC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강력한 긍정적인 진술로 바뀝니다. 가정적인 측정이 SIC 측정이라면, 보른(Born) 규칙은 확률 합계 규칙을 매우 간단히 수정한 형식을 갖게 됩니다. 게다가, 수정된 확률 합계 규칙으로부터 양자역학 구조의 대부분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확률 합계 규칙이 사용될 수 없다는 순전히 부정적인 진술 대신에, 양자 형식 체계의 실질적인 부분을 함축하는 물리적으로 촉발된 단순한 원리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차원에서의 SIC의 존재는 큐비즘을 옹호하는 변론을 강화시킬 것입니다.

 

루크: 대충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큐비즘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큐비즘에 기여하고 있습니까? 이것의 이론적 본성, 아니면 다른 이유들 때문에 이 작업에 연구비와 인지적 재원을 끌어들이는 것이 특별히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뤼디거: 사실상 큐비즘의 수학적 양상들[SIC의 구조 또는 양자 드 피네티(de Finetti) 정리들 같은]은 여러 해 동안 두드러진 연구비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큐비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큐비즘이 과학은 과학자에 외재적인 세계만큼이나 과학자와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할 때, 그것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신봉하는, 가장 깊이 견지되는 편견들 가운데 하나에 이의를 제기하는 셈입니다. 이 편견은 란다우(Landau)와 리프쉬츠(Lifshitz)로부터 인용한 다음 문장에서 예시됩니다. "양자역학에서 측정이란 어떤 관측자와도 무관하게 별도로 발생하는, 고전적 객체와 양자적 객체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으로 이해된다." 일반적으로 견지되는 또 하나의 편견은 확률-1 할당이 사건을 일으키는 객관적인 메커니즘의 존재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여타의 확률 할당들과 마찬가지로 확률-1 할당도 판단이라는 큐비즘의 원리를 수용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알게 됩니다. 한 가지를 예측함으로써 제 말을 끝맺겠습니다. 25년이 지나서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이 큐비즘의 관념들에 노출될 때 큐비즘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고 양자 토대라는 문제는 사라질 것입니다.

 

루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