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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장르로서의 과학소설은 정말로 미래를 예측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소설은 우리의 현실 세계의 요소들로부터 외삽함(extrapolating)으로써 작동한다. 과학소설은 우리 주변 세계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는 추세와 경향들을 취하며, 그리고 이런 추세와 경향들이 극도로 발달하여 자체의 잠재력을 최대로 펼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한다. 과학소설은 "실재적이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는" 세계―질 들뢰즈가 잠재태(the virtual)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정의이다―를 제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가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 말하는 것―미래는 항상 우리를 놀래키기 때문에 행할 수 없는 것이다―대신에 과학소설은 현 시점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잠재태(potentiality) 또는 사실상 미래태(futurity)의 요소들을 묘사하고 전개한다. 과학소설은 암묵적인 것을 취하여 그것을 명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과학소설은 불가해한 미발달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을 펼치고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과학소설은 유토피아적이기도 하고 디스토피아적이기도 하다. 이 대안은 배타적인 양자택일이 아니라 둘 다이다. 과학소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및 물리적 조건의 최대 공포를 순전히 모방적인 설명은 행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기입할 수 있다. 그런데 또한 과학소설은 현 시점에도 묻혀 있는 유토피아적 희망의 씨앗들―차이와 변형의 가능성들―을 기입할 수 있다. 과학소설은 이런 씨앗들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그래서 그것들이 성장하여 최대로 활기찬 엄청난 절정으로 개화시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과학소설은 들뢰즈를 좇아서 현 시점의 대항-현실화(counter-actualization)로 불릴 수 있는 것을 제시한다. 가장 부정적인 경우에도 과학소설은 여전히 에른스트 블로흐가 희망의 원리라고 부른 것을 구체화한다.
그것이 미래태―즉, 현재 실재적이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는 것―를 구체화하는 방식 때문에 과학소설은 항상 문자 그대로 간주되기를 요구한다. 성공적인 과학소설 작품은 무엇이든 강력한 실재 효과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과학소설의 묘사를 그저 알레고리 또는 은유로 간주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그 묘사를 우리―또는 소설 세계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불가피하게 주어진 사실적 조건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소여(givenness)에 관해 말할 때 나는 이런 조건이 자체의 우연성 또는 임의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현실성으로 우리를 직접 응시한다는 점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로지 과학소설을 문자 그래도 읽음으로써 우리는 역설적으로 지금 여기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차이와 타자성에 대한 그것의 전망을 밝혀낼 수 있다. 과학소설 서사는 우리가 사실적인 것으로 수용해야 하는 우연적인 것들을 제시하지만, 또한 그것들은 우리 자신의 현실적인 존재 조건과 분명히 다르다. 이것을 행할 때 과학소설은 우리가 당연시하는 모든 것의 순전한 우연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당연시되는 이런 것에 대한 기묘한 대안들을 제시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가능한 대안들을 구상하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의 배태성의 임의적인 정황적―니체와 푸코에 의해 사용된 낱말의 의미에서 계보학적―원천들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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