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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오늘의 인용-'집단적 유아론'으로서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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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이란, 특성상 다른 인간들에게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야. 사람들의 몸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 권력의 더 중요한 습성이라네. 어떤 물질에 대해, 또는 자네가 말하는 어떤 외적 현실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네. 이러한 대상들에 대한 당의 통제력은 이미 절대적인 수준에 와 있거든."

 

[윈스턴은] "물질을 어떤 방법으로 통제한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소리쳐 버렸다.

 

"당이 기후나 중력의 법칙을 통제할 수 있나요? 질병, 고통, 죽음 같은 것은 어떻고요?"

 

오브라이언은 손을 들어 윈스턴의 말을 끊었다.

 

"사람의 정신을 통제하기 때문에 물질도 통제할 수 있는 것이지. 현실이라는 것은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한다네. 윈스턴, 자네는 이제 차차 알게 될 거야.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어…. [...]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이 바닥 위를 비눗방울처럼 떠다닐 수 있다네. 하지만 나는 그걸 원하지 않네. 당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 자네는 자연의 법칙 운운하는 19세기적 발상을 버릴 필요가 있어."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당신들은 지구조차도 정복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유라시아와 동아시아 말입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언제든 그들을 정복할 수 있어. 정복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네. 오세아니아는 명실상부한 세계의 주인이지."

 

"하지만 그 세계는 한 점의 먼지에 지나지 않잖아요? 인간은 무력하고 아주 미세한 존재에 불과하죠. 인간들이 언제부터 있었나요? 수백만 년 동안 지구에는 생명체가 없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구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 더 일찍 시작되지 않았어. 지구가 어째서 더 나이가 많을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의식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어."

 

"하지만 멸종한 동물들의 뼈로 가득한 돌들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살았던 매머드, 마스토돈, 그리고 거대한 파충류들의 흔적 말입니다."

 

"그런 뼈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윈스턴? 물론 없겠지. 그것들은 19세기 생물학자들이 꾸며낸 것이라네.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보지만 인간이 다 죽은 후에는 다시 아무것도 없을 걸세. 인간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우주 전체가 우리 바깥에 있지 않습니까? 별을 보세요! 그것들 중 일부는 수백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거리이지요."

 

"별들이 과연 무엇인가?"

[...]

"그것은 몇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불에 불과해. 우리가 원한다면 그곳에 쉽게 도달할 수 있지. 아니면 쉽게 파괴해 버릴 수도 있다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과 별들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지."

[...]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 예컨대 바다를 항해하거나 일식을 예측할 때,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고 별들이 수백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오히려 편한 경우가 생기기도 해.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자네는 두 가지 천문학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능력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필요에 따라서 별들은 가까울 수도 있고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다네. 우리의 수학적 능력으로 이러한 것을 능히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보나? 자네, 혹시 '이중사고'를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윈스턴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의 머리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상을 반박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것이 오류라는 사실은 오래전에 밝혀지지 않았는가? [...]

 

"윈스턴, [...] 자네가 찾고 있는 개념은 '유아론'일 걸세. 그렇지만 어쨌든 틀렸어. 이건 결코 유아론과는 무관하지. 구태여 이 개념을 도입한다면 '집단적 유아론'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맞지 않아. 엄밀하게 말해 정반대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여담에 불과해."

[...]

"우리가 밤낮으로 싸워서 얻어야 할 진정한 권력은 사물에 대한 권력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권력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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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84>>(이기한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4), pp. 3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