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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차일링거: 어떤 과학적 관념이 퇴출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양자 세계에는 아무 실재도 없다

 

Q: 어떤 과학적 관념이 퇴출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A: 양자 세계에는 아무 실재도 없다[안톤 차일링거(Anton Zeilinger)]

 

폐기되어야 할 관념은 양자 세계에는 아무 실재도 없다는 관념이다. 그 관념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물리적 특성에 항상 정확한 값을 귀속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양자역학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가운데 몇 가지 해석들이 양자 상태는 외부적 실재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성들은 관찰자의 마음 안에서 생겨날 뿐이고, 그래서 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시사하기 때문이다.

 

잠깐 동안 유명한 이중 슬릿 실험을 고려하자. 그런 실험 또는 그것의 등가물들은 오늘날까지 단일한 광자 또는 중성자, 양성자, 전자 등 여타 종류의 단일한 입자들로 수행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버키볼과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매우 큰 거대분자들로도 수행되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버키볼―C-60 또는 C-70 분자―로 실험을 수행한다. 두 개의 슬릿이 있고 실험 조건이 올바르다면, 슬릿 뒤에서 극대와 극소, 즉 간섭 무늬가 나타나는 버키볼들의 분포를 관찰하게 된다. 이것은 두 슬릿 모두를 통과하는 확률 파동들의 간섭 때문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사이에 벌어진 유명한 논쟁에서 아인슈타인을 좇아서, 개별 입자들, 개별 버키볼들을 한 번에 하나씩 실험을 수행하면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개별 버키볼 분자는 어느 슬릿을 통과하는가? 모든 입자가 둘 가운데 하나의 슬릿을 통과해야  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 것인가? 양자물리학은 이것이 유의미한 질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게 하는 실험을 실제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입자에 명확한 위치를 할당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측정을 행하기 전에, 버키볼의 위치―그래서 그것이 통과하는 슬릿―는 아무 의미도 없는 개념이다.

 

이제 우리가 입자의 위치를 측정한다고 가정하자. 그때 우리는 답을 얻게 되어 그것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된다. 그것은 이 슬릿 근처이거나, 아니면 저 슬릿 근처에 있다. 그런 경우에, 위치는 확실히 실재의 한 요소이고, 그래서 우리는 양자물리학이 이 실재를 서술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한 특징, 즉 위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게 되면, 다른 한 종류의 지식, 즉 간섭 무늬 속에 암호화된 지식은 더 이상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식은 어디에 들어올 수 있는가? 양자역학은, 관찰 이전에 입자는 이 슬릿을 통과하는 상태와 저 슬릿을 통과하는 상태의 중첩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이제 각 슬릿 뒤에 한 대씩 두 대의 검출기가 있다면, 각 검출기는 입자를 기록할 것이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측정 장치가 입자의 관찰 가능한 위치와 얽히게 되고, 그래서 최소한 원칙적으로는 그것 자체가 명확한 고전적 특징을 갖지 못한다고 말한다. 헝가리 출신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 유진 위그너을 좇으면, 이것은 어떤 관찰자가 결과를 기록할 때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슬이다. 그래서 그런 추론을 채택하면, 실재가 일어나게 만드는 것은 의식이다.

 

그런데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다. 양자역학은 가능한 측정 결과들에 대한 확률들을 서술할 뿐이라고 가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관찰을 행하는 것은 잠재태를 현실태로 변환하는 것이고, 우리의 경우에는 입자의 위치가 우리가 합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물리량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명확한 위치에 있든지 아니든지 간에, 버키볼은 매우 잘 존재한다. 그것의 위치에 명확한 값을 할당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에도, 이중 슬릿 실험에서 그것은 실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