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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오늘의 인용-구원으로서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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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함, 그것이 니체의 마지막 사랑이자 최고의 척도였다. 가볍게 하는 것, 건강하게 하는 것은 선한 것이었다. 음식, 정신, 공기, 태양, 경치, 음악에서든 마찬가지였다. 가볍게 떠오르는 것, 삶의 어둠과 둔중함 및 진리의 불순함을 잊도록 돕는 것만이 은총이었다. 이 때문에 "삶의 가능성의 인도자", "삶을 위한 위대한 자극제"로서의 예술을 최종적으로 그는 사랑하게 되었다. 밝고 가볍고, 위안을 주는 음악은 이때부터 격양된 자를 달래주는 가장 훌륭한 청량음료였다. 그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음악이 없는 인생이란 고통일 뿐이고 오류이다." 열병환자 니체가 자신의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뜨거운 입술로 청량음료를 마시려 한 것보다 더 열렬한 갈망은 있을 수 없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이토록 음악에 대한 갈증을 가졌던가?" 이렇게 음악은 그의 최후의 구원, 자기자신으로부터의 구원이었다. 이런 까닭에 마취제와 자극제를 통해 음악의 순수함을 마비시킨 바그너에 대한 묵시록적 증오심이 생겼던 것이며, 이 때문에 "찢겨진 상처처럼 음악의 운명에 대한" 고통이 있었던 것이다. 고독한 자 니체는 모든 신들을 뿌리쳤다. 그는 영혼을 신선하게 하고 영원히 젊게 하는 신들의 음료와 양식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예술, 예술보다 더 한 것은 없다. 우리는 진리라는 것 때문에 파멸하지 않을 그런 예술을 갖고 있다." 그는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삶의 유일한 힘, 예술에 사력을 대해 매달렸다. 예술은 그를 붙잡아 행복한 순간으로 고양시킬 것 같았다.

 

그런데 음악은 그의 주문에 응답하듯 선하게 고개를 숙이고, 그의 쓰러지는 육체를 포옹하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열병환자를 떠난 상태였다. 친구들도 이미 오래전에 떠났다. 그의 사고는 늘 길에서 멀리 떨어져 방황하고 있었다. 오직 음악만이 최후의 고독, 제7의 고독에 이르도록 따라다녔다. 그가 만지는 것을 음악도 함께 만졌다. 그가 말하는 곳에서, 음악도 소리 내어 울려 퍼졌다. 음악은 쓰러지려는 그를 늘 다시 잡아채어 올렸다. 마침내 그가 기력을 다했을 때, 음악은 여전히 그의 끊어지려는 영혼을 지키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그의 방에 유일한 친구 오버베크가 들어왔을 때, 그는 손을 떨며 화음을 찾으려는 듯 피아노에 앉아 있었다. 음악이 넋을 잃은 그를 잠시 일깨웠을 때, 그는 출발을 알리는 힘찬 멜로디로 곤돌라의 노래를 불렀다. 음악은 그의 정신의 어둠 속 깊은 곳까지 뒤따라갔다. 죽음과 삶이 그의 면전에서 광기 어린 모습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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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니체를 쓰다>>(원당희 옮김, 세창미디어, 2013), pp. 12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