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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돕슨: 오늘의 인용-범심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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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심론은 실재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이 심적 특성들을 지니고 있으며, 복잡한 유기체들과 모든 의식 있는 생명 형태들을 구성하는 것은 이런 특성들 덕분이라는 견해다.

 

의식은 여전히 현대과학뿐 아니라 철학자들을 오랫동안 당혹스럽게 만든 가장 불가사의한 현상들 가운데 하나다. 의식의 표현을 설명하기 위해 표준적인 과학적 세계관은 전통적으로 물리주의(physicalism)라는 견해를 지지해 왔다.

 

물리주의는, 물질적 복잡성의 어떤 층위에서, 유기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리적인 구성 성분들과 근본적인 특성들이 조합될 때, 자체의 생물학적 체계로부터 의식이 창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리주의가 참이라면, 어디에서, 또는 어떤 층위에서 의식이 발생하는가? 의식에 대해 필요한 특정한 특성과 구성 성분들은 무엇인가? 그 어떤 결정적 대답도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의식은 유기적 체계화 안에서 결코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적 실재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들에서 비롯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에 정초할 것이라는 관념이 나타났다. 우주의 기본적인 물리적 구성 요소들이 심적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는 이 관념이 범심론(panpsychism)이다.

 

범심론은 '범인지주의(pan-cognitivism)', '범기능주의(pan-functionalism)' 또는 인간 뇌의 더 복잡한 역량들과 전적으로 관련되는 그 어떤 다른 심적 능력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범심론이 우리 인간의 의식뿐 아니라 더 넓혀서 물리적 실재의 근본적인 구성적 특징으로 상정하는 것은 경험 자체다.

 

이것은 여러분이 앉는 의자나 탁자들이 의식이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범심론은 유기적 생명 형태들, 즉 살아 있는 것들에게만 의식을 귀속시킨다. 이것의 결과는 단세포 유기체에서 벌레,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에 이르는 모든 것은 다양한 정도의 의식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벌레는 파충류 뇌는 없지만 신경절이라는 신경 중심들이 있으며, 눈은 없더라도 광수용체들을 통해서 빛을 감지한다. 그러므로 범심론은 그런 신경 중심과 광수용체들이 벌레의 생물학적 삶에 필수적인 어떤 원시적 형태의 의식적 경험을 수반하거나 생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벌레의 의식은 인간의 의식과 관련하여 대단히 동떨어져 있지만(그리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벌레는 어느 정도 의식적이다.

 

의식이 실재의 근본적인 특징이라면, 범심론의 기획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설명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의식 형태는 무엇이며, 그리고 그것은 (최소한)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더 복잡한 의식 형태들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가장 유명한 답변들 가운데 하나는 범경험주의(pan-experientialism)라고 불리는 범심론의 한 유형을 제안하는 갈렌 스트로슨(Galen Strawson)에 의해 제시되었다. 스트로슨은 의식이란 일차적으로 경험적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경험이 의식의 필수적인 구성 성분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쓰러져 의식을 잃을 정도로 머리에 타격을 받은 존재자에 관해 생각하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개체가 겪고 있는 경험이 전혀 없다. 내부에서 모든 것은 텅 비고 암흑이다. 우리가 머리에 타격을 받았을 때 이어지는 두통 같은 우리 내부 세계뿐 아니라 주변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할 때에만 우리는 의식이 있게 된다. 스트로슨에 따르면, 의식은 어떤 경험 사례를 반드시 필요로 하고, 그래서 이것이 함축하는 것은 경험(또는 더 구체적으로, 모든 감각적 경험을 포괄하는 현상적 경험)이 실재의 근본적인 특징이라는 점인데, 이것은 우리가 실재에 대해 갖는 경험이 뇌 속의 복잡한 신경학의 어떤 부산물이거나 상상 속의 환영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현상적 경험의 인식적 확실성은 논박하기 어렵다. 우선 우리가 실재를 의심하게 될 수 있는 것도 오로지 의식적 경험 덕분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지독한 회의주의조차도 경험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 성공할 수 없다. 물리적 실재는 환영적일지도 모르지만, 실재라는 환영이 무엇이든 간에,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의 현상성의 견지에서, 즉 우리가 그것을 느끼고 감지하는 방식으로 가장 명시적으로 실재를 경험한다. 스트로슨의 주장은 현상적 경험은 자체적으로 물리적 실재의 선험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물리적 실재에서는 현상적 경험의 존재에 대한 전적인 원인이 되는 더 근본적인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범심론의 다른 한 판본, 즉 범현상주의(pan-phenomenalism)를 낳는다.

 

범현상주의는 물질은 본질적으로 현상적이라는 견해인데, 이것은 모든 물질적 실체가 오감을 통해서 얻어진 의식적 경험을 생성하는 원인이 되는 고유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버트란트 러셀은 단호하게 물리학은 물질의 고유한 본성에 대해서, 즉 물질이 관찰될 수 없거나 정량적으로 측정될 수 없는 고유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범현상주의의 배후에 놓인 관념은, 물질이 본질적으로 현상적이라면, 근본적인 현상적 법칙들은 근본적인 물리적 법칙들과 나란히 기능할지도 모른다는 점인데, 이것은 우리가 물리적 실재라고 부르는 것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자연 법칙들의 집합이 두 개가 존재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근본적인 현상적 법칙들이 존재하는 것이 맞다면, 문제는 현상적 법칙들이 물리적 실체들의 변화에 대해 인과적으로 관여하는지 여부다. 현상적 법칙들이 인과적으로 중요한 경우에는, 그리고 의식은 현상적 경험의 견지에서 이해되기 때문에, 의식은 물질에 고유한 특성들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현상적 법칙들의 형식으로 실재의 근본적인 층위에서 작동한다는 논변이 제시된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조합 문제(combination problem)라고 불리는 것―특히 '단순한' 현상적 특성들이 어떻게 조합되어 인간으로서 우리가 향유하는 더 '복잡한' 통일된 현상적 경험을 생성하는지와 관련되어 있는―에 속하는 어려운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현상적 특성들은 자체적으로 의식적인 것들이라고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 즉 현상적 특성들은 인간이 경험의 주체라는 의미에서 경험의 주체들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현상적 특성은 '나 자신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체를 경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요한 의문은 어디서 또는 언제 의식 있는 마음이 생성되는가라는 것이다. 간단한 대답은 우리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경험의 주체' 또는 나는 존재한다의 '나'인 의식 있는 마음의 기원은 임마누엘 칸트도 데카르트도 제대로 서술할 수 없었던 가장 엄청난 철학적 불가사의다. 데카르트는 의식 있는 존재자로서 인간들은 사유하는 실체(res cognitans)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이것은 여타의 의식 있는 존재자가 아니라 인간들의 의식적 생활만을 서술할 뿐이다. 더 심층적인 의문은 이럴 것이다. 의식 있는 존재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이 의문 덕분에 우리는 의식의 본성에 이르고 경험과 현상 둘 다가 의식에 대한 그 어떤 규정에 대해서도 중요하다는 관념에도 이른다.

 

범심론의 주요한 주장은 의식이 그저 뇌의 복잡한 신경학 내에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재의 근본적인 층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돌고래, 대형 영장류 등과 같은 고도로 진화된 다른 동물들도 어느 정도 의식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의식을 인간들에게만 배타적으로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범심론은 논란이 많은 이론이다. 그런데 의식이 모든 유기적 생명 형태들에 존재할 뿐 아니라 물리적 실재의 근본적인 특징이라는 관념은 현대 과학에 대한 저주일 뿐 아니라 형이상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며 철학적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의식이 실재의 심층적인 특징이라는 주장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놀라운 듯 보이더라도, 과학은 실재의 양자적 층위에서 의식이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고려하기 시작하고 있다. 아무튼 양자역학이 의식을 필요로 한다는 제안은 열띤 논쟁의 대상이지만,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은 의식이라는 불가사의하고 당혹스러운 영역에 더 깊이 발을 들여놓고 있는 중일 것이라고 판명될지도 모른다.     

 

―― 헨리 돕슨(Henry Dob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