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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언트: 오늘의 인용-사변적 실재론과 미학의 관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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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과 사변적 실재론 사이에서 제가 이해하는 관련성은 들뢰즈, 화이트헤드, 그리고 니체라는 제 자신의 배경에서 비롯됩니다. <<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는 자신의 선험적 경험론이 미학의 분리된 두 반쪽을 재통일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한편으로는 첫번째 비판의 칸트에서 비롯되는 감성에 관한 이론으로서의 미학의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 또는 아름다운 것에 관한 이론으로서의 미학의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선험적 경험론이 미학의 두 반쪽을 재통일한다고 주장할 때 들뢰즈가 우리의 반복적 능력들 자체가 예술적 창조의 결과라는 다윈 이후의 감성 이론을 제안하고 있다고 저는 간주합니다. 이것은 그때 이후로 제가 견지해온 것이며, 포더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기능주의적 마음 모형들과 <<순수이성비판>>의 칸트에 대해서 제가 적대적인 이유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약하면, 그들은 마음의 창조적 구성을 제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미학 이론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미학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되었습니다. 한편으로 미학은 예술적 판단에 관한 이론으로 다루어집니다. 이것이, 예를 들면, 칸트가 세번째 비판에서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대상이 있으며, 의문은 그 대상의 미에 대한 취향의 판단들이 어떻게 가능한가입니다. 그것은 관객 예술 이론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적 생산에 관한 이론으로서의 미학이 있습니다. 여기서 방점은 판단 또는 미가 아니라 창조에 있습니다. 이것이 니체와 들뢰즈에게서 얻는 미학 이론인데, 여기서는 항상 무언가의 창조가 강조됩니다. 제가 존재론에서 미학의 역할을 논의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우리를 실재적인 것에 대한 인간중심적 관념으로 복귀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미학이 판단의 견지에서 논의될 때에만 그렇다고 생각한다. 미학이 생산과 창조의 견지에서 논의되는 상황에서는 미학이라는 분야가 엄청나게 확대되어 예술적 생산에서 생물학적 종분화, 태양계의 형성까지 모든 것을 구현하는데, 이것들 모두가 새로운 것이 창조되고 있는 과정들이기 때문입니다. 미학적인 것은 존재 자체의 한 차원이 되고 객체들은 창조물들로 여겨지게 됩니다. 화이트헤드는 미학의 이런 존재론적이고 실재론적인 정향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화이트헤드에게 모든 객체는 자체의 최적의 미학적 형식에 대한 일종의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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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엔니스(Paul J. Ennis)의 인터뷰 모음집 <<탈대륙적 목소리들(Post-Continental Voices)>>에 실린 레비 브라이언트와의 인터뷰 내용에서 옮김(pp. 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