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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오늘의 인용-감각적 경험의 서사로서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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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작은 관찰로부터 출발하여, 처음에 약속했던 감춰진 진실로, 중심부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관찰을 '감각적인 경험'이라고 합시다. 창문을 열 때, 커피를 홀짝거릴 때, 계단을 올라갈 때, 도시의 인파를 헤치고 들어갈 때, 교통 체증에 걸려 차 안에서 지루해할 때, 손가락을 문에 끼였을 때, 안경을 잃어버렸을 때,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비탈길을 올라갈 때, 여름에 처음으로 바다에 들어갈 때, 아름다운 여자와 만났을 때, 어렸을 때 먹던 비스킷을 다시 먹었을 때, 전혀 알지 못했던 꽃의 향기를 처음 맡았을 때, 키스할 때, 난생처음으로 바다를 보았을 때, 질투심에 휩싸였을 때, 차가운 물 한 잔을 마셨을 때 경험한 고유한 느낌이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경험들과 겹쳐진다는 사실은 소설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 바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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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 있는 부인이 나에게 알려 준 것은, 내가 나의 모든 책에서 나의 모든 캐릭터들에 나도 모르게 전파했던 나의 감각적인 경험들이었습니다. 여름비가 내린 후 흙냄새를 맡을 때, 시끄러운 식당에서 술에 취했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틀니를 만질 때, 사랑에 빠진 자신을 후회할 때, 사소한 거짓말을 둘러댈 때, 관청에서 땀에 젖은 서류를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릴 때, 골목에서 축구 하는 아이들을 볼 때, 이발할 때, 이스탄불에서 청과물 가게에 걸린 파샤의 사진과 과일들을 볼 때, 운전면허 주행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여름이 끝날 무렵 휴양지가 텅 비어 쓸쓸할 때, 어느 집을 방문해 밤이 깊었는데도 도무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할 때, 병원에서 진찰 순서를 기다리다 시끄러운 텔레비전을 끌 때, 옛날에 군 복무를 함께 했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을 때, 즐거운 대화 도중에 침묵이 흐를 때 내가 느꼈던 것을, 나는 나의 등장인물들에게 반영하여 나의 모든 소설에서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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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설가의 작품은 삶에 관한 수많은 작은 관찰들을, 개인적인 감각에 의거한 삶의 경험들을 전시하는 별자리와도 같습니다. 문 하나를 여는 것에서 옛 애인을 기억하는 것까지, 인간적인 온갖 세부 사항을 포괄하는 이 감각적인 순간들은 소설에서 다른 그 어떤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영감의 순간들을, 개인적인 창조성의 지점들을 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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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한 파묵(Orhan Pamuk), <<소설과 소설가>>(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2), p. 4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