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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실재계, 상상계, 상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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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계(the real)의 차원은 존재자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존재로서 환원불가능하게 현존하는 방식일 것이다. 예를 들면, 그것은 박쥐가 매 같은 다른 존재자에 대한 모습이나 또는 우리가 과학적 분류학으로 분류하는 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방식을 특징지을 것이다. 상상계(the imaginary)는 존재자가 다른 존재자들을 파악하거나 지각하거나 또는 그것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일 것이다. 이것은 하만(Harman)이 "감각적 객체(sensual object)"(실재적 객체의 내부에서만 현존하는 객쳬)라고 부르는 것들의 영역일 것이다. 따라서, 예를 들면, 박쥐는 벌레를 있는 그대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초음파 신호, 즉 박쥐에게 특수한 의미를 갖는 초음파 파동으로서 만난다.

 

상상계의 영역은 보고스트(Bogost)가 "에일리언 현상학(alien phenomenology)"이라고 부른 것, 야콥 폰 우엑스퀼(Jacob von Uexkull)이 "동물행동학(ethology)"라고 부른 것, 그리고 내가 "선험적 경험론(transcendental empricism)"이라고 부른 것의 영역이다. 에일리언 현상학은 다른 존재자들 또는 모턴(Morton)이 "기묘한 낯선 것(strange strangers)"이라고 부른 것들의 현상학적 세계들을 탐구한다. 전통적인 현상학과는 대조적으로, 에일리언 현상학은 다른 존재자들에 관한 현상학이 아니라 이런 존재자들이 자체의 주변 세계와 어떻게 만나는지에 관한 현상학이다. 그것은 사물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지―그것 모두가 포함되지만―에 관한 현상학이 아니라 세계가 이런 존재자들에게 어떻게 주어지는지에 관한 현상학이다. 그것은 루만(Luhmann), 마투라나(Maturana), 그리고 바렐라(Varela)가 "이차 관찰(second-order observation)"―한 사물에 대한 관찰이 아니라 그 존재자가 어떻게 관찰하는지에 대한 관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에일리언 현상학은 지금까지 문제되지 않았던, 우리가 세계를 만나는 방식의 총체화 경향을 중지시킨다.

 

아타리(Atari) 게임기, 갯가재, 박쥐, 바위, 나무, 남자, 여자, 다양한 민족과 경제적 계층 출신의 사람들, 매체 체계, 기업, 군대 등은 각각 세계를 만나는 방식이 있다. 소여는 관련된 존재자에 대해 각기 다르다. [...]

위 그림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꽃 들판의 모습을 묘사하는 반면에, 아래 그림은 파리에게 주어질 꽃 들판의 모습을 묘사한다. 우리는 적절한 조직이 없기 때문에 파리가 경험하는 것을 결코 알 수는 없지만, [...] 파리 행동의 관찰 등을 통해 파리에게 세계가 어떻게 주어지는지에 관한 모든 종류의 것들을 알아낼 수 있다.

 

에일리언 현상학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라캉은 "모든 소통은 잘못된 소통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는 부분적인 원인은 자신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을 여타의 존재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총체화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한 여성의 남자친구가 자신의 여자친구의 어린 아이에게 소리치며 때리는데, 그는 그 아이가 이런 행위들의 훈육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부유한 보수주의자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을 전적으로 무시한 채 가난한 사람들과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게으르"며 "품행이 나쁘다"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열심히 일하"고 바른 가치"를 품고 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 정치적 활동가들은, [...] 최고경영자는 더 큰 규모의 존재자인 기업의 한 기관일 뿐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최고경영자가 기업 활동을 관장하는 존재자로 취급하면서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을 목표로 삼는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우리 세상에 거주하는 이런 치명적인 동물들을 다루기 위한 잘못된 종류의 전략들이 만들어진다. [...]

 

에일리언 현상학은 [...] 기업 같은 적대적인 기묘한 낯선 것들과 더 잘 만나고 그것들에 대해 더 잘 반응하기 위한 일련의 기법들을 제공한다. [...] 현상학이 아니라 현상학들이 존재한다.

 

상징계(the symbolic)의 영역은 생태적인 것들의 영역이 된다. 생태적인 것은 물러서 있거나 조작적으로 폐쇄된 존재자들 사이의 구조적 결합들의 장이다. [...] 유클리드적 또는 뉴턴적 공간에서 두 존재자―극락조와 뱀―는 동일한 공간에 거주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매우 다른 영토들에서 현존하고 있다. [...] 이 두 영토들은 서로 신호를 주고받지만, 그 신호들은 각 영토에서 전적으로 다른 의미들을 산출한다. 나는 야생 유인원에게 미소―내 영토에서는 친근함의 기호―를 품고 다가간다. 유인원의 영토에서 미소와 시선 맞추기는 공격성의 기호이다.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이것을 "구조적 결합(structural coupling)"이라고 불렀다[...]. 마투라나와 바렐라에게, 기계는 조작적으로 폐쇄되어 있는 반면에 구조적으로는 개방되어 있다. 구조적 개방성은 기계가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개방되어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조작적 폐쇄성은 기계가 자체의 내부적 조직에 따라 이 자극을 통합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구조적 결합은 두 체계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결과적으로 공진화하거나 발달하는 관계인데, 여기서 자극은 두 존재자 각각의 내부 세계에서 매우 다른 기능적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면,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에서 구조적 결합의 관계를 탁월하게 분석했다. 노동자는 C-M-C의 논리 또는 과정을 따르는 반면에, 자본가는 M-C-M의 논리를 따른다. 노동자의 C-M-C 논리에서, 노동자는 상품(C), 즉 자신의 노동을 팔고, 그 댓가로 화폐 또는 임금(M)을 받고, 그래서 음식, 집, 교통 수단 같은 상품(C)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자본가의 논리에서는 화폐가 순환되어(M), 노동 상품을 구매하고(C), 그래서 더 많은 화폐가 축적될 수 있을 것이다(M). 두 체계가 서로 구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이 두 논리가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만나는 방식과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어긋나는지―자본가는 노동을 구매할 때 비용을 절감하려고 항상 노력하는 반면에,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팔 때 임금과 수당을 올리려고 항상 노력할 것이다―보여줄 수 있었다. 이것들은 이질적인 두 영토, 이질적인 두 우주라고 인식하면서, 마르크스는 이 생태계에는 조화가 없으며―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그런 생태계와 관련된 신자유주의적 환상의 기반을 약화시킨다―오히려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었다. [...]"

――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

 

번역: 김효진